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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 to the World Aug 31. 2023

도서관,  그곳에서 나를 사로잡은 마법

세 번째 이야기

같은 해, 2018년의 어느 날, 우린 도서관으로 향했다. 아빠가 지인분에게서 받아오신 세계 고전 “축약본” 전집에서 <바스커빌 가의 사냥개>를 읽고 셜록 홈즈가 누구인지 궁금해하던 때였다. 도서관에 가 읽을 책을 찾아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셜록 홈즈라는 글씨가 눈에 띄었고 당장에 집어 들어 읽기 시작했다. 이 탐정이 겪는 모든 일은 정말 흥미진진했다. 범인을 찾아낼 때의 그 쾌감이란!     


도서관에서 그 “축약본” 시리즈를 다 읽고 도서관 문을 나서며 나는 셜록 홈즈 전집 “완역본” 시리즈를 사기로 마음먹었다. (그때쯤 축약본과 완역본의 차이를 깨닫게 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횡단보도 앞에서 엄마께 말씀드렸다.     


우리는 보통 세뱃돈이나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 갔다가 용돈을 받으면 그 돈으로 각자 사고 싶은 걸 사거나 저축을 했다. 따로 혼자 나갈 일도 없고, 항상 엄마랑 같이 있었으니 용돈도 받지 않았다. 그래서 난 책을 살 돈이 필요했다. 보통 우리는 우리가 사고 싶은 게 생기면 명절까지 기다려서 사곤 했는데(물론 “우리가 사고 싶은 것”만 말이다.) 난 명절까지 기다리기가 너무 힘들었다.     


아마 내 기억상 인라인스케이트를 사달라고 졸라서 빨래 개기 백일을 하면 인라인스케이트를 사주겠다는 조건으로 계약(?)을 아빠와 맺은 적이 있었다. (흐지부지되긴 했지만) 저녁에 아빠와 그 문제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다 빨래개기 백일을 성공하면 전집을 사주는 걸로 약속했다. 처음에는 하루도 빠짐없이 백일이었지만 (빠지면 다시 시작) 그렇게 되면 너무 힘들어져서 그냥 100일을 채우는 걸로 바꾸었다. 4개월 내에 다 채운 것 같다. (덕분에 난 빨래를 아주 빨리, 또 깔끔하게 배우는 법을 터득했다.)     


셜록 홈즈, 정말 외울 정도로 읽고 또 읽었다. 아마 7회독은 기본으로 했으리라. 셜록 홈즈를 좋아하게 되면서 셜록 홈즈를 닮고 싶어졌다. 그래서 수학과 과학을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했고 논리적으로 생각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사람들의 말, 행동, 단어, 그 모든 것에 주의를 기울이고, 내 주위를 관찰하고 일어난 일이나 현상에 대해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내 사고방식이 더 자라나고 다양한 지식을 습득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으리라고 본다.     


동시에 나는 여름부턴가 반지의 제왕이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다. 정말 재밌었다. 잘생긴 레골라스라는 엘프와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 (나는 외모지상주의자다) 주말마다 끊어가며 영화를 보았던 그 기나긴 기간이 지나고 난 반지의 제왕의 원작이 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 놓칠 수 없었다. 그래서 또 빨래 개기 백일 시작! 생각보다 수월했다. 아니 뭐, 야곱도 사랑하는 라헬을 위해서 일했던 7년이 일주일 같이 느껴졌다고 하지 않는가.     


그렇게 해서 내 서재에 반지의 제왕 완역본 전집이 추가되었다. 할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은 아랑곳하지도 않고 난 마치 책이 풀이라도 된 양, 손에서 뗄 수 없는 책을 붙들고 단숨에 읽어버렸고, 흠, 다래끼가 나버렸다. 7일 만에 읽어버렸으니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부터 나의 책 사랑은 시작되었다. 다시 말하지만, 책을 싫어하지는 않았었다. 그러나 사랑하진 않았었다. 이상하게도, 책을 사랑하기 시작하면서 내 삶과 생활방식, 행동 양상이 변화되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나를 못 만나셨지만 나를 정말 어렸을 때부터 아셔서 내 단점과 흠을 잘 아시는 분들은 그런 모습들이 많이 고쳐지고 좋은 모습이 자리 잡은 나의 모습을 오랜만에 만나 보시곤 매우 놀라신다. 난 그렇게까지 놀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우리 엄마도 내가 책을 좋아할 줄은 몰랐다고 하시며 가끔 놀랍다고 말씀하시니, 대놓고 부인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책을 사랑하게 되고 나서 내 삶은 바뀌었다. 좋은 책을 읽었기에 그랬겠지만, 책 안에 담긴 덕목과 정말 중요한 가치들, 인물들의 말들이 저절로 스며들었던 것일까. 나도 아직은 내가 어떻게 이렇게까지 바뀌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짧게 살았다고도, 길게 살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난 이 17년 인생을 책을 만난 때를 기준으로 Before, After를 나눈다.

(*여기서 책을 만난 때란 내가 진정으로 책의 깊은 맛을 느끼기 시작했을 때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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