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운다”라는 단어는 얼마나 많은 반복의 노동을 품고 있는가.
“끊다”라는 단어에는 얼마나 많은 '붙잡음'이 숨어 있는 건지.
끝내기 위해서 얼마나 많이 되뇌어야 했지?
이건 아닌 것 같아, 아니야, 아니라고.
그러다 끝내 “그래, 여기까지야”라는 한 문장을 꺼낼 때 그건 정말로 붙잡을 마지막 줄을, 내 손으로 잘라낸 행위였다.
한때 너는 누군가의 온 세상이었다.
그리고 한순간, 나는 다시 걸어 들어간 다른 세계의 ‘과거’가 되었다.
버려지는 건 찰나였다.
그러나 그 찰나는 내 안에서 아주 길게 울었다.
“믿다”라는 단어는 어쩌면 '의심'을 꼭 품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 사람을 향해 쏟아낸 신뢰는,
사실 믿고 싶은 바람의 집합체였다.
그러니 그가 나를 속일 때
나는 그를 미워하기보다
그동안 믿고 싶어 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래서 나는 말을 줄였고,
울음을 숨겼고,
진실을 서랍에 넣었다.
감정은 정리됐지만,
기억은 여전히 방 안을 어슬렁거린다.
“지운다”라는 단어는 얼마나 많은 반복의 노동을 품고 있는가.
지운다는 건 한 번의 클릭이 아니라
눈 감고, 잊고, 되새기고, 다시 덮는 수백 번의 되뇜이었다.
때론 지우는 것보다
그 자리에 다시 무언가를 덧칠하는 일이
더 쉽다는 걸 안다.
그래서 웃는 얼굴 위에
가끔 멍한 눈빛이 엎드려 있는 걸,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길 바랄 뿐이다.
나는 이제 울지 않는다.
하지만 한 단어, 한 문장에 걸려
마음이 덜컥, 무너질 때가 있다.
사람들은 내게 괜찮냐고 묻는다.
나는 ‘응’ 하고 말한다.
사실 그 말에는
“지금은, 겨우 괜찮은 척을 하고 있는 중이야”
라는 침묵이 붙어 있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하나의 단어를 다시 배운다.
그 속에 숨어 있는 오래된 나를,
조금씩 들춰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