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화우 Jul 15. 2024

겨울 뱀을 찾아서(2)     

문경소녀  에세이  1

겨울 뱀을 찾아서(2)     


난 갈골 산에 봄, 여름에는 잘 가지 않는다. 늦가을이 되어 밤이 익을 때가 되면 산을 찾는다.

산은 냇가를 지나면 바로 나오는 곳이 아니다.

냇가의  징검다리를  건너  산  하나를 지나  좁은 길을 한참 걸어가야 우리 산이 나온다.


갈골 산이 있는 마을의 하늘은 한우물보다 훨씬 좁아서 몹시 춥고,

해가  뜨자마자 지는 곳이기도 하다. 오빠랑 나는 우리 산에서 오리나무를 주로 베었는데 오빠 말로는 딱히 오리나무는 필요 없어서 베 버리는 게 좋다고 했다. 어린 내 생각에 오리나무는 장작으로 만들 때 잘 갈라져서 그 나무를 땔감으로 만드는데 별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어린 두 남매가 나무만 하기에는 너무 심심했던 것 같다. 눈이 쌓여 있는 곳에  구멍이 나 있고 눈을 헤치면   깊이까지 구멍이  나 있었다. 이 구멍은  오누이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틀림없이 뱀이 들어가고 남은 자국 같았다.

여름에도 보지 못한 뱀을 겨울에 찾는  것은 어리석은 짓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 구멍 저편에 뱀들이 알을 놓고, 형제들끼리 옹기종기 모여서 자고 있는 모습을 상상했다.

만약 봄이 되어 이런 모습을 보게 된다면 얼마나 징그러운 일인가. 그렇지만 눈이 하얗게 쌓인 산 그 밑에 또라이를 틀고 자고 있는 뱀과 새끼들을 상상하면 얼마나 신비롭고 성스러운가.   흰눈밑에 또아리를 틀고 있는 뱀들은 왠지 흰색일 것만 같았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그래야지 이 갈골의 설산과 어울리지 않겠는가. 산 아래에는 조그마한 도랑에 민물가재가 살얼음밑을 기어다니고 버들강아지가 돋아나는 그곳의 뱀. 그 생각은  어린 나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오빠와 나는 눈을 헤치고 구멍을 따라 땅을 파헤쳐 나갈 수 없었다. 어리석게도 나무하러 올 때는 톱과 낫만 가지고 왔기 때문에 깊게 팔 연장도 없었다.


그래도 우리는 나무를 하다가 그 구멍을 발견하면 낫을 이용해서 파 보았다.

깡깡 언 산을 파 들어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 했다.

 나무를 하러 올 때 뱀을 찾기 위해 괭이를 가져 오는 생각은 아예 하지 못했다. 그냥 나는 그 구멍을 발견하면 내 상상의 나래 속 뱀을 찾아, 얼고 나무뿌리만 있는 구멍을 조금 파다가 말았다.     

내가 정말 뱀을 찾는 일에 열중해서 파 내려 갔으면 정말 뱀을 찾을 수 있었을까?

그랬다면 겨울의 뱀은 흰 뱀이였을까.

어린 우리한테 뱀이 발견 되지도 않았을 뿐더러, 찾아다 한들 서로에게 좋을 것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난 그 성스러운 상상력을 잃어버리고, 뱀은 추위로 생명의 위협을 느꼈 을 수도 있다.


우리 삶에도 그 겨울 뱀처럼 파헤치지 말고 그냥 두어야 하는 것들이 있을 때도 있다. 그리하면 자연적으로 봄을 이기고 나오는 생명들이 살얼음 사이로 나오는  버들강아지처럼 봄의 생명력을 얻을 것이다.     


지금 장마의 끈적끈적함과 무더위 속에서 이 글을 쓰면서 갈골 겨울 산의 차가운 바람사이로 불어오는 애잔함을 느껴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