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출생의 비밀
나에게는 출생의 비밀이 있다.
난 국민학교 입학 후에 이름이 바뀌어 있었다. 담임이신 고 칠식 선생님께서 출석 부르실 때 ㅅ ㅎ ㄱ 이렇게 부르는 게 충격이었다. 입학 전 내 이름은 ㅅ 순영이었는데 말이다.
난 내 이름이 바뀐 전말을 20살이 넘어서야 알게 되었다.
내가 국민학교 입학 할 때가 되어서도 입학통지서가 안 왔다고 한다. 16살 많은 큰 오빠가 알아보니 내가 출생신고가 안 되어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큰 오빠가 부랴부랴 문경에 와서 출생신고를 했는데, 이름도 바꾸고 나이도 한 살 적게 해서 출생신고를 했다는 것이다. 나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아무리 7남매 막내딸이라고 해도 이건 너무 심하다. 오빠가 놀리면서 말해주었다.
큰오빠가 나의 출생신고를 해 줌으로써 ㅅ ㅎㄱ 이란 이름으로 세상밖으로 나온 것을 알게 되었다.
염을 할 때 수의에는 신분증을 넣을 주머니가 없다. 저승에서는 신분확인이 필요 없는 것일까?
큰 오빠가 죽고 8개월쯤 지났다. 연산동 있는 큰 오빠집에 갔다. 나는 결혼해서 큰 오빠집과 차로 30분 거리에 살고 있었다.
오빠집 안방에는 리바트라고 찍혀 있는 화장대 위에 신분증 2개가 놓여있었다. 눈썹이 짙고 동그란 얼굴의 그는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새 언니는 출근했고 , 조카는 11살 13살인데 학교에 가고 없었다. 난 대학을 오빠집에서 다녔는데 순전히 오빠 덕에 다닐 수 있었다. 그래서 오빠집이 익숙하다.
집은 변한 게 없다. 4명의 가족 중 한 명이 줄었다는 것 빼고는.
창고 안에는 낚싯대가 바다를 그리워하며 먼지가 쌓여있고 집 입구에는 오빠가 모아 둔 몇 개의 수석이 무겁다. 새언니가 전화로 나에게 오빠 사망신고를 해 줄 수 있냐고 했다. 나는 아직도 사망 신고를 못한 새언니 마음이 안타까워 온 것이다. 아마 벌금도 나올 것이라고 했다.
나는 화장대 위에 있는 주민등록증과 운전면허증을 들고 나왔다. 아파트 후문 쪽으로 가면 바로 동사무소가 있다. 그러나 나는 아파트 정문 쪽으로 나와 시장 앞을 지나 삥 둘러 동사무소로 왔다.
사망증명서와 신분증을 담당공무원에게 주었다. 그리고
어릴 적 참빗으로 머리를 빗겨주고, 대학 입학원서를 부산에서 문경까지 가져온 오빠도 같이 주었다.
보통 신분 확인이 끝나면 신분증을 되돌려 주는데 죽은 사람의 신분증은 되돌려 주지 않았다.
공무원은 무거운 표정을 짓고 일을 처리했다.
이상하게도 그날의 느낌이 지워지지 않는다. 남편 잃은 젊은 과부, 어린 조카들이 아파왔다.
아이러니 하게도 큰오빠는 나의 출생신고서를 작성했고 나는 그의 사망 신고서를 작성한다.
ps:난 늘 오빠의 사망신고를 왜 내가 했는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 나는 글을 쓰면서 그 이유를 알았다.
큰 오빠가 나의 출생 신고를 해 주었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