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당신에게
내 16년 지기. 우린 인생의 사계절과 마음의 사계절을 함께 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사계절은 크게 다른 속도로 흐르진 않았네요. 중간 기말고사와 두발규정, 복장검사일을 신경 쓰던 우리. 시험이 끝나면 노래방에 갔고, 지금은 어렴풋이 남아있는 짝사랑에 대한 기억이 그 시절엔 참 아팠고 즐거웠지요. 대입 시험의 두렵고 떨리는 순간도 함께했고, 대학생 시절엔 첫 배낭여행을 함께 하기도 했습니다.
마음의 계절은 각자 고유한 가락으로 흘러갑니다. 내가 한 겨울에 시린 숨을 내뱉을 때 당신은 싱그러운 초여름에 닿아있기도 했고, 우리 둘 다 풍요로운 가을에 만나기도 했습니다. 각자의 순간을 쌓아가며, 가족보다 오랜 시간 보던 우리는 가끔 안부를 묻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상대가 장마 기간을 지나고 있다면 우산을 내어주려 하고, 한파에 몸과 마음 떨고 있을 땐 핫팩을 내어주려는 우리였습니다. 때문에 얼마 만에 만나더라도 서로 마음에 평온한 온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당신은 요즘 겨울을 걷고 있다는 이야길 했습니다. 우리가 함께 목격해 온 겨울들 중 꽤나 길고 독한 추위를요. 그럼에도 날 보자마자 내 글을 티 내지 않았을 뿐 잘 읽고 있었다고 얘기하는 당신이었습니다. 16년 전 내가 가장 아팠던 시기 바로 옆에 있었음에도 아픈 줄 몰랐다며. 아픔을 딛고 지금처럼 밝고 건강히, 단단히 살아주어 대견하고 고맙다는 말을 해줬습니다. 언제나 조용히 응원한다고요.
얘기했던가요, 당신을 보면 녹음진 버드나무가 떠오른다고. 한 아름 가득 껴안아도 다 안지 못할 만큼 마음 넓은 사람. 힘든 마음이 들 때면 적당한 바람에 잎사귀 스치는 소리로 날 위로해 주던 사람. 생명력을 가진 사람. 단단한 내면의 뿌리를 가진 당신. 언제나 힘을 나눠주면 당신이었습니다. 나를 포함한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요. 곁에서 보자면 마음이 아릴 정도로 사려 깊은 아름다운 사람.
언제나 쉼터가 돼주던 버드나무 당신에게 나도 그루터기가 되어드리고 싶습니다. “힘내. 응원해.”라는 말에도 부서지기 쉬운 마음의 계절이 있기에, 그저 당신 뒤 가장 가까이 서서 묵음으로 응원을 보내고 있겠습니다. 힘들 땐 충분히 온몸 힘 뺀 채 푹 쉬고, 걷고 싶어 질 때쯤. 함께 걸을 사람을 찾으려 뒤 돌아보았을 그때까지도 당신 뒤 가장 가까이에 서있겠습니다.
그때가 되면 나랑 하루를 걸어요. 제법 휘휘 거리는 바람이 찾아올 때면 당신 뒤에서 바람의 입을 막아줄게. 당신이 뒤돌아 불렀느냐 물으면, 휘휘 휘파람 불며 당신 손 잡아들고 하늘을 바라보자 얘기할게. 그렇게 서로에게 숲이 되어주고 공기가 되어주며. 쉬고, 웃고, 안아주며 삶을 걸어요.
서로의 삶의 목격자이자, 동반자 J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