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당신에게
자리에 두고 가시면 저희가 정리하겠습니다.
조금 전 밤 산책을 다녀왔는데 왜인지 모르게 이 말이 떠오르더라고요. 카페와 식당에서 종종 안내받는 내용이었습니다. 마치 인연의 끝에도 어울리는 말 같았습니다.
소중히 내어드렸던 내 마음. 거기 두고 가시면 제가 정리할게요. 따뜻하고 맑은 물로 품어내어 또 다른 마음을 소담히 담아내 드릴 수 있도록. 당신도 가벼운 마음으로 좋은 기억만 가지고 떠날 수 있도록. 그 발걸음에 든든한 힘이 되어드렸다면 제 역할은 단단히 한 것 같아 만족합니다.
아직 이별에 유능한 사람은 아닙니다만, 가족, 연인, 친구, 직장동료 등 모든 인연엔 끝이 있으니까요. 한창 사랑하는 순간만 지속되길 바랄수록 슬플 일이 많아진다는 것을, 때문에 좋은 안녕까지도 이뤄내야 한다는 것을. 미지근하게 익어가는 나이가 되며 알아갑니다.
어렸을 땐 이를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관계에서 죄인은 분명 존재했기에 어그러졌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그 사람과 내가 갈 길이 일정 부분 겹쳤기에 그동안 함께 걸을 수 있었다고요. 어느 순간 간극은 조금씩 벌어졌고, 더 이상 긴 팔을 뻗어도 손가락 하나 겨우 닿을 때. 서로의 무운을 빌며 각자의 삶을 걸어간다고요. 누구 하나 잘못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간의 약속들은 지난 여름날 새벽 언저리 기억처럼 아름답게만 묘사되어도. 조금 아프더라도 서운해하지 않을게요. 그때의 우린 진심이었으니까. 그저 함께한 시간이 감사하고 덕분에 행복했다고 웃으며 보내주면 되는 일인걸요.
나와 삶을 잠시 함께 살다 간 모든 이들이 함께 쌓은 기억에 한 번쯤 미소 짓는다면 그것으로 되었습니다. 서로에게 쏟았던 사랑으로 앞으로 나아갈 추진력을 얻었다면 충분합니다. 오늘의 우리는 서로가 쌓은 순간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니까요.
그런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내가 당신을, 당신들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길을 걷지 못했겠다고요. 당신들 또한 그럴 것이라 생각을 했습니다. 서로가 순간을 공명하며 쌓은 순간 덕에 길의 방향이 미세하게 조정되었으리라고요. 그것은 흡사 활시위를 조절하는 것과 같습니다. 0.1mm 정도로 미세한 차이만으로도 활이 꽂히는 위치가 달라지는 것처럼. 우리는 조정을 나눈 사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맙습니다. 내 삶에 살다가 줘서요. 감사합니다. 오늘도 함께 삶을 걸어주어서요. 앞으로도 잘 나아가길 바랄게요. 당신이 걸어갈 길 어느 방향이라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