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람 Oct 06. 2024

초라하고 어여쁜 편지

친애하는 당신에게

솔직하게 말하자면요, 실은 나 그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당신 생각을 했어요. 꺼내 보일 수 있는 말이 많지 않아 줄곧 묵음으로 응해왔지만,  인정하기 어렵진 않았어요. 당신이 어느새 내 하루가 되어있던 것을.


눈물 범벅 된 편지 끝엔 내가 무어라 적어 드렸던가 기억이 잘 나질 않아요. 내 사랑.이라 썼던가, 내 사람.이라 썼던가. 어쩌면 점철된 눈물에 그 중간 어느 즈음으로 맺혀있었을까요. 내 뜻을 전하기엔 아무래도 좋았으리라 생각합니다. 내 사람, 내 사랑.


우리 손 편지 주고받은 적 없어 의아하시려나요. 실은 마음으로 적어 내어 드렸던 편지 얘길 했어요. 빼곡한 마음 한 장, 번진 글 너머 간절함은 전달되었으리라 믿어요. 띄어쓰기와 오탈자 하나 없는 모습으로 온전히.


그중 가장 많은 밑줄이 쳐진 부분, 낡게 닳은 부분은 특히 오랜 시간 들여 세심히 마음을 담아냈습니다. 같이 읽어줄래요?


내가 나여서 슬픈 순간이 많았습니다. 조금 덜 구겨진 사람이었더라면 우린 행복한 순간이 조금 더 많았을까. 그런 내게 당신은 첫 순간과 마지막 순간에도 손 꼭 부여잡고 행복을 빌어주었습니다. 당신이 날 바라봐주는 동안이라면 더 탁월하게 용감해질 수 있었다고 고백하고 싶어요. 그럴 때마다 내가 뭐라고 이 사람은 이렇게까지 나보다 날 사랑하는가 슬프고 행복하고 괴로웠습니다. 불안하지만 가볍지 않고, 우울하지만 행복한 내 마음은 당신의 아가페적 사랑과 달라도 한참 다르다고 생각했거든요.


당신 떠나보내고, 아니 내가 도망쳤다는 표현이 더 맞겠네요. 혼자 걷는 시간을 오랫동안 가졌어요. 어두운 구석 어딘가 닫혀있던 창을 열어 환기했습니다. 새어 들어오는 희미하지만 따스한 빛에 그동안 나뒹굴던 마음의 바닥을 마주했습니다. 뽀얗고 얌전히 쌓여있는 고운 먼지를 털어내니 그 안의 것은 의심의 여지없이 사랑이 맞더랍니다. 내겐 당신이 필요하다 외치는 그 초라하고 어여쁜 마음을 나 더 이상 가둘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제야 보이더랍니다. 포옹하는 두 몸도 결국 다른 방향을 향해야 마주 볼 수 있더란 것을요. 맞잡은 손도 왼손과 오른손, 다른 쪽이어야 함께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요.


우리가 저물어버린 여름이 속절없이 망그러진 것이 느껴지는 가을 문턱의 밤이에요. 당신은 오늘도 여전히 내 하루예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