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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람 Oct 21. 2024

내 살길

마음 기록 시

잘. 지내시는지요

저요 글쎄요

잘은 무엇이고, 지내는 것은 또 무엇인지 나는 도통 모르겠습니다

밥 먹고 일은 잘 다니는 것인지 묻는다면 예에

밤에 잘 자는지 물으시면 아니요


넷이 셋이 된 모습에 퍽이나 좋아 보이더랍니다

어째 애초 내 자리가 아니었던 듯

어찌 시리지 않겠습니까,

마음이 이리도 이리도


다솜

순우리말로 사랑을 뜻한답니다

그래서 사랑을 편애하고, 집착하는 것이었을지

이렇게 외롭고 괴로운 것인지


그런 생각이 들더랍니다

길 가다 어느 영험한 노인 하나 날 붙잡고

어떻게 살고 있대, 엄청 괴로울 것인데

그럼 난 그 자리에 고꾸라져버릴 것 이라고요

이마 땅에 짚으며 제발 살려달라 빌겠나이다


마르고 굽은 등을 쓸어내리며

사람인(人)은 사람 둘이 기대어 있는 모습들 본 따 만든 것이래요

그러니 사람은 결국 서로에게 의지해 살아가야 하는 거예요


예에. 실은 나도 절실히 필요한 말인데,

꼭 나한테 만큼은 참으로 모질더이다


늙은 여자가 얘기하더랍니다

애들은 태어날 때 먹고살 것 하나씩 쥐고 태어난다고

젊은 여자는 픽 웃었습니다

늬들 미술 시키느라 깨진 돈이 얼만데 쥐고 태어나길 무얼. 그거 다 돈이지

어린 여자는 그치?하며 웃었습니다

그렇지. 내가 살 길은 그림이지


어린 여자의 운동화 끈을 묶는 속도가 빨라질 즈음

그러니까, 어린 여자가 젊은 여자의 나이가 되었을 때

딱 죽고 싶더랍니다

길을 건널 때면 차에 치이고 싶었고,

잠들때면 이대로 깨어나고 싶지 않았더랍니다

쥐고 태어난 살 길, 미술을 하고 있는데도요


그러던 중

발이 귀만 하던, 어느새 날 내려다보는

더 어린 여자가 와서 말을 걸더랍니다


내가 네 편이 되어줄게

세상에 누가 뭐라 해도 무조건적인 네 편 하나쯤은 있어야지


그제야 알겠더랍니다

내가 쥐고 태어난 살길은 그림이 아니라 이 여자였다는 것을


다영

많을 다(多) 헤엄칠 영(泳)

사주에 물이 없어 헤엄칠 영

맑고 현명한 아이, 내가 사랑하는 아이

내 가족, 내 사람, 내 사랑


내 사주에도 물이 없다는데,

내 이름도 물의 이름을 썼더라면 팔자가 좀 나아졌을까요

개명할 용기는 없어 필명을 가람으로 했습니다

그럼에도 충분히 행복하더랍니다


내 곁에 있어서요

물의 아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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