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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람 Jan 19. 2024

딱지 위에 그은 선처럼

너를 쓰지 않고는 살 수 없어서

당신과 날 생각하면 꼬깃하게 접은 딱지가 생각납니다. 정확히는, 그것 위에 펜으로 그은 선이 우리와 같습니다. 딱지로 접혀있을 땐 선이 이어지지만 종이를 펴면 선은 산산조각 나 끊어집니다. 삶을 쌓아오며 상황에 맞춰 스스로를 여러 모양으로 접음을 반복한 서로겠습니다. 그  순간들 중 우리가 만나 잠시동안 함께 접은 모양만이 우리가 이어질 수 있는 조건이겠습니다만. 각자의 삶을 살며 또 다른 모양으로 스스로를 접게 되며 우린 헤어졌습니다.


틀림없는 것 하나는, 아무리 산산조각 났더라도 함께 그은 선이 언제나 존재할 것이란 점입니다. 종종 우린 언젠가 다시 연결될 준비를 하고 있다고 상상합니다. 당신과 영 동 떨어져 있는 삶을 살아가는 듯해도, 알고 보면 가장 빠른 방법으로 당신에게 다가가는 중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아주 먼 훗날에라도. 다시 만나 함께 딱지를 접어 빛바랜 선을 들여다보며 그간의 이야기를 나눌 날 올 것이라고.


한 가지 더 고백하자면 우린 술래잡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당신이 날 떠났으니, 내가 술래겠습니다. 너무나 꽁꽁 멀리 숨어 버린 탓에 이번 판은 오랜 시간이 걸려 끝날 것 같습니다. 어쩌면 끝이 나질 않아 언젠가 나 "못 찾겠다 꾀꼬리. 나와라 꾀꼬리"를 외치게 될까요. 그때가 되면 당신은 내 앞에 웃으며 나타나줄까요. 어찌 됐던 술래잡기가 끝이 나면 참가자 모두가 다시 모이는 것이 마음에 듭니다. 당신과 나 다시 만난다는 기약을 받은 것만으로도 벅찹니다.


종이 책을 손에서 떼어놓은 날이 드문 만큼 sns상으로도 글을 읽습니다. 그중 하나는 '잡은 물고기보다 놓친 물고기가 더 크게 기억된다.'는 것입니다. 뒤엉켜있는 기억들 속 어렵지 않게 당신을 찾아냈습니다. 스스로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말만 남긴 채 서둘러 떠나버린 사람. 차라리 내게 미운 모습만 잔뜩 보인 뒤 떠났더라면 지금처럼 구척 돔 정도의 존재가 되진 않았을지 모릅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신기한 경험을 했습니다. 언제나 내 머릿속 한편에 존재하던 당신이었는데. 어느 날  당신을 떠올리며 생각에 잠겨있을 즈음, 뒤늦게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당신의 이름이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당혹스러웠어요. 정말 몇 분을 가만히 앉아 이름 석자를 떠올리려 애썼는데 생각이 나질 않아 메신저 친구 목록 전체를 훑어본 뒤에야 기억해 낼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이젠 당신이란 존재는 습관이 된 것일까.


습관들을 통해 정교히 조작된 당신의 모습은 나의 이샹향과 꼭 맞았습니다. 그렇게 무턱대고 정해버린 당신의 의미에 넌, 부담스러웠던 것인지 모릅니다. 때문에 요즘도 당신 생각을 참 많이도 했다만, 언제나 깊게 빠지지 않도록 날 건져 올립니다. 당신을 가장한 나와의 대화를 멈추기 위해. 당신과 나 모두를 위해. 그리고, 그립다는 생각을 넘어 '혹시'로 시작되는 생각들은 날 파국에 이르게 할 것이 분명합니다. 위의 딱지 얘기나, 술래잡기 얘기 또한 그렇습니다.


집 정리를 하다 언젠가 당신에게 받은 엽서를 발견했습니다. 본인도 누군가에게 선물 받은 엽서지만, 그다지 엽서를 좋아하지 않는다며 내게 준 것이었지요. 그때 당신과 나 누구도 몰랐습니다. 이 엽서를 내 한평생 간직하게 될 줄은. 어쩌면 당시 인쇄 된 엽서 중 운 좋게 내 손에 들어와 가장 오랜 시간 동안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될 엽서일지 모릅니다. 엽서를 보고 가장 마지막에 생각했던 '혹시'를 떠올렸습니다.


익숙한 거리에 익숙하지만 어딘가 조금 낯선 당신이 날 바라보고 있습니다. 표정은 미묘합니다. 미안한 표정과 반가운 표정이 적당히 섞여있습니다. 어느 때처럼 포옹으로 인사를 하지만 그 의미는 이전과 사뭇 다르게 느껴집니다. 그간 각자 살아온 순간을 위로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덜 익숙한 당신과 익숙한 거리를 함께 걷습니다. 그러던 중 당신은 눈물을 터뜨립니다. 그 눈물이 반가워 나 또한 눈물을 흘립니다. 함께 웃습니다. 익숙한 장소 앞에서 낯선 이별을 합니다. 이전과 달리, 내일 또 보자는 이야기를 나누는 이별입니다. 당신과 낯선 이별을 하는 것이 평생 이루지 못할 소원이겠습니다.


마음 아프게도. 아직 당신을 덜어내지 못했습니다. 글이 쌓여 출간을 해도 세상에서 단 한 사람에게만은 보여줄 수가 없습니다. 당신은 책을 좋아하니 서점에 자주 가겠지요. 그곳에서 일부러 내 책을 피할 것을 알기에 미리 마음이 미어집니다. 그런 당신에 대한 글을 쓸 수밖에 없는 나의 마음이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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