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쓰지 않고는 살 수 없어서
어릴 적부터 딸기를 참 좋아했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살던 시절엔 딸기가 비싼 줄 몰랐습니다. 성인이 되고 독립을 하고서야 집에 항상 있던 과일들이 귀했음을 깨달았어요.
스스로를 위해 장을 보는 과정에 비싼 딸기는 쉽게 손이 가지 않는 존재였습니다. 흠집 없이 잘 익고 탐스러운 딸기를 못 먹은 지 꽤 됐어요. 언제나 알뜰코너에 있는 여기저기 무른 딸기를 골랐습니다. 이마저도 꽤나 주저하면서요. 장을 봐온 딸기를 깨끗이 세척하여 꼭지를 잘라 다회용 용기에 담았어요. 그렇게 담고 보면 제 딸기는 하얀 부분이 많았어요. 빨간 과육들 중 무른 부분을 칼로 도려냈거든요. 그마저도 이미 덜 싱싱한 상태인지라 하루 이틀이면 더욱 물러졌고, 혼자 먹는 속도는 더뎌 언제나 무른 딸기를 먹어야 했어요.
언젠가 많이 아팠던 날을 기억해요. 열이 났고 온몸이 아팠어요. 그날 밤 당신이 사다준 상처 하나 없이 새빨간 딸기를 잊지 못해요. 평소 딸기를 좋아한다고 말했던 것을 기억해 사다 준 것이었지요. 정말 예쁜 딸기였어요. 전 당신 손에 들린 딸기를 보고 울고 말았어요. 당신은 몰랐겠지만 마음속으론 더 많이, 참 많이 울었어요. 눈물의 이유는 복잡했어요. 당신의 사랑에 행복해서도 있었고, 독립한 뒤 누군가의 사랑을 체감한 것이 생소해서도 있었고, 스스로에게 좋아하는 과일 하나사치 부릴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게 미안하고 슬프기도 했고요. 딸기를 받아 들곤 눈물을 흘리는 제 모습에 당황한 당신. 덕분에 정말 오랜만에 싱싱하고 맛있는 딸기를 먹었어요. 지금까지도 그 맛을 잊지 못해요. 아주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같아요.
딸기 하니 또 하나 떠오르는 일화가 있어요. 가까운 친구의 부친상으로 장례식장에 갔을 때였어요. 상주였던 친구는 자리를 비울 수 없어 다른 친구에게 필요한 물품 구입을 부탁했어요. 그중엔 딸기도 있었어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버지께서 딸기를 참 좋아하셨대요. 어쩌면 저와 비슷한 마음에 그러셨을까요. 선뜻 딸기를 구매하신 경우가 없으셨대요. 그러던 중 손주가 태어났고, 입맛도 닮는 것인지 손주도 딸기를 참 좋아했대요. 아버지께선 당신께서 드실 딸기는 쉽게 구매하지 않으셨던 것과 달리 손주를 위한 딸기를 언제나 냉장고에 든든하게 채워두셨대요. 때문에 친구는 아버지께서 좋아하시는 딸기를 마음껏 드셨으면 하는 마음에 딸기를 준비하는 것이었어요. 그 얘기를 듣고 참 오랫동안 마음이 미어졌습니다. 동시에 따듯하기도 했어요. 서로를 위하는 마음, 사랑이 느껴졌습니다.
사랑이 무엇인지 정의하긴 어려운데, 살면서 발견되는 사랑의 조각들은 곳곳에 있는 것 같아요.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도 다양하구나 느껴요. 제게 아픔을 준 것이 확실한 엄마였지만, 그 안엔 사랑도 있었음을 아는 것처럼. 가족들에겐 사랑한다는 말하기가 어려웠는데, 조만간 본가에 들를 때는 딸기를 사가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