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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가람 Feb 10. 2024

붉은 실 이야기

너를 쓰지 않고는 살 수 없어서

언젠가 붉은 실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하늘에서 맺어준 인연을 땅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붉은 실을 두 사람의 새끼손가락에 묶었다는 이야기.


당신을 알게 된 이후론 이와 반대의 생각을 한다.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람보단, 사랑하지 않는 방법을 모르겠는 사람. 이름을 내뱉는 속도보다 애틋함이 앞서게 될 때. 나의 사람이 되어주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 담아 새끼손가락을 내건다. 그 모습은 결연한 동시에 불안하다. 언제 흩어질지 모르는 불안감이 들 때마다 끊임없이 서로의 눈을 맞춘다. 조금 울고 많이 웃는 순간을 쌓아간다. 서로를 원하는 만큼 새끼손가락도 강렬히 끌어안는다. 설익은 풋사과처럼 서툴다 어느 순간 푹 익고 깊이 스며들었을 때, 비로소 새끼손가락에 붉은 자국이 새겨지는 것이다.


때문에 오늘도 가장 짧고 가는 새끼손가락으로 서로를 감싸 안는다. 그 모습은 서툴고 애절한 우리의 사랑을 닮았다. 이토록 그대를 온몸 가득 끌어안고 시간을 멈춰 여생을 보내고 싶다. 서로의 새끼손가락에 붉은 실을 새기는 여정을 함께하고 싶다.


바쁘게 땅만 보며 걷던 내게 자꾸만 하늘을 보라던 사람. 함께 경관을 구경하자며 멀리 돌아가는 경로의 버스를 타자던 당신. 눈은 창밖을 바라볼 뿐, 머릿속은 복잡한 생각들로 가득 차 있던 내 시선을 멋진 폭포가 지나간다며 끌어당기는 사람.


갑작스레 손을 꼭 쥐며 함께하는 이 순간이 행복하다 말하는 사람아,


그러한 당신의 눈을 마주칠 때마다 놀란다. 무엇을 좇느라 함께 걷는 이 사람을 잊을 정도로 치열하게 살고 있는지. 당신의 음성으로 인해 그제야 내 존재를 인식하듯 가벼운 날숨을 뱉는다. 비로소 내 눈빛으로 돌아와 웃음을 짓는다. 그럴 때면 당신 하나 있으면 나 어떠한 것도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두서없이 날 예뻐하는 사람.


어색함 없이 사랑한다 고백하는 내 사람아,

나 또한 당신에게 사랑 고백 어색하지 않은 것이 행복하다.




온몸 어떠한 구석까지 아름다운 당신. 부드럽고 얌전한 머리카락. 그 사이로 보이는 맨질 하게 빛나는 이마. 적당한 각도의 눈썹 산.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나있지만 유려한 곡선을 그리는 눈썹. 고요하고 깊은 눈. 섬세한 속눈썹. 웃을 때면 나타나는 애교 살. 언제나 단정한 손톱. 정갈하고 따듯한 손. 여린 듯 다부진 손목을 보며 넋이 나간 채 얘기한 적 여럿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워? 비현실적이게. 대체 누가 디자인한 거야."


당신을 꼭 껴안는다. 나보다 더 큰 당신을 조금도 놓치기 싫다는 듯. 발을 동동 구르며 조금이라도 더 밀착될 자세를 찾는다. 당신 또한, 본인보다 작은 나를 조금은 손쉽게 가득 껴안는다.


비현실적인 당신을 바라보면 초등학생시절 꿨던 자각몽이 생각난다. 난생처음 보는 한 친구가 꿈에 나왔다. 놀이터에서 놀다가 집에서도 찰흙놀이를 하며 신나게 놀던 중 이것이 꿈임을 알아챘다. 마음 맞는 친구를 사귀었는데 곧 헤어져야 한다는 것이 너무나 아쉬웠다. 그 친구의 손을 꼭 잡고 얘기했다.


"이건 꿈이야. 우린 곧 헤어져. 꿈에서 깨어나도 우리 꼭 다시 만나자. 난 ㅇㅇ에 사는 강다솜이야. 넌 어디 살아? 우리 꼭 다시 만나. 꼭이야. 진짜 꼭!"


수차례 굳게 다짐한 후 꿈에서 깨어났고, 애석하게도 그 친구가 알려준 주소, 이름은 기억이 나질 않았다. 이름과 얼굴도 기억나질 않았다. 그 황망함은 아직까지도 생생하다. 당신을 보면 그러한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 비현실적으로 행복한 순간이 쌓일수록 한순간 사라져 버릴까 불안도 커진다. 자꾸만 꿈속 그 친구처럼 사라져 버릴까 두렵다.


그럴수록 서로에게 달려가 안기고 싶은 마음을 숨기지 않는다. 가장 소중하게 끌어안는다. 서툰 새끼손가락의 포옹도 잊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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