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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우물 Apr 26. 2022

드디어 인턴

장편소설

본과 4학년 말, 의사국가고시를 합격한 나영은 이제 인턴으로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뎌야 하는데, 막상 갈 곳이 없었다.      


모교의 부속병원 인턴 시험장에서 시험도 못 쳐보고 쫓겨남을 당하는 그런 사람을 어느 사립병원에서 받아주겠는가? 기초의학 교실에서조차 받아주지 않는 장애인을 어느 병원에서 (의사 중 노동강도가 가장 센) 인턴으로 받아줄까?  부산 시내에서 갈 곳이라고는 시립병원, 그것도 안 되면 철도병원, 그것도 안 되면 마산에 있는 마산결핵병원 정도고 이들의 공통점은 지원자가 적어 의사가 부족한 병원이라는 것이다. 때마침 부산시립병원에서 인턴을 10명이나 뽑는다는 공고가 나왔다. 희망이 있었다. 하지만 응시자가 11명만 되어도 나영 같은 사람은 보나 마나 탈락이다.     


전문의가 되기 위해서는 4-5년의 수련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첫 일 년은 인턴으로서 전과(全科)를 돌며 임상경험을 쌓게 되고, 그 과정을 수료하고 나면 자기가 전공하고자 하는 과를 선택하여 전공의 시험에 응시하게 된다. 그러므로 인턴은 앞으로의 전공과는 상관없이 병원에서 일괄적으로 뽑고, 레지던트는 임상 각 과에서 선발하는 지라 인턴은 병원장 손에, 레지던트는 그 과의 과장이나 주임교수 손에 달려 있다 할 수 있다.     


당시에는 이들 수련의나 전공의 선발 시 필기시험은 그저 요식행위에 불과했기 때문에 나영 같은 사람이 채용되려면 인맥, 돈, 권력, 이 세 가지 중 하나는 있어야 했다. 결국, 나영은 또다시 아버지의 도움이 필요했고 아버지는 병원장을 집으로 찾아가 자식을 부탁하기에 이르렀다. 나영의 아버지가 병원장을 만나 무슨 말로 어떻게 설득했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인턴 선발 시 차별 없이 대해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병원장은 머리가 허연 나이 많은 사람으로 경성제국대학 의학부 출신의 엘리트 의사였고 인품 또한 훌륭했다. 그가 출제한 인턴 시험 문제는 단 하나, 문항은 딱 한 줄, 조선 시대 과거시험 때나 나올 법한 이 멋진 문제는 그 후 전설로 남았다.  

                                           - 의사가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논하라-


나영은 아버지의 읍소와 이러한 원장의 인품 덕분에 인턴 채용시험에 합격하여 의사로서 사회에 첫발을 내디딜 수 있게 되었다.    

당시의 시립병원은 수련병원으로서의 요건은 갖추었지만 부족한 점이 많았다.

각 과에 전문의는 대개 한 명 있었고 제일 많은 과가 세 명이었다. 레지던트는 연차 당 1명 있었는데 그나마 2년차가 제일 고참이었고 아예 없는 과도 있었다. 이런 여건 하에서의 인턴 수련은 대학병원에 비해 보고 배우는 것은 적었지만 직접 하며 배우는 것은 훨씬 많았고, 사람이 모자라는 만큼 일은 고됐다.    


인턴 기간 중 나영에게 가장 힘들었던 업무는 응급실 야간 당직이었다.

당직을 선 다음 날은 근무를 쉬는 게 아니라 정상적으로 근무한다. 그렇다고 해서 당직 수당을 주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그뿐 아니었다. 야간에 응급실로 실려 오는 환자 중에는 자살 기도 환자가 유독 많았는데 그 이유는 사립병원에서는 그런 환자를 잘 받아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살 환자 중에서도 제일 골치 아픈 환자는 농약 먹고 실려 오는 환자로서 이런 환자가 한 명 저녁에 들어오면 그날 밤 잠은 다 잤다. 요즈음 사람들은 '하고 많은 먹을 것 중에 하필이면 농약일까?' 하며 고개를 갸우뚱거릴 일이지만 그때만 해도 텃밭이라도 하나 있는 집이라면 농약은 필수 가정 상비품이었다.


응급실에 독극물을 삼킨 환자가 실려 오면 맨 먼저 인턴에게 '디아이'* 환자 왔다는 콜이 온다.

그러면 내려가서 환자를 살펴본 후 환자의 혈관에 수액을 달게 하고, 입을 벌려 마우스피스를 물린 후 그 속으로 굵다란 호스를 위장까지 집어넣는다.

그리고는 침대 채로 세면대로 끌고 가서 자갈치 아지매가 입는 것 같은 기다란 고무 앞치마를 두르고 고무장화를 신고 고무장갑을 끼고 물로 위장을 씻어낸다.


이때, 환자가 농약을 먹은 환자라면 무려 1만~2만 cc나 되는 물을 집어넣어 완전히 맑은 물이 되돌아 나올 때까지 씻어내야 한다. 농약이란 놈이 그만큼 독하다는 의미다. 이렇게 진땀을 빼며 위세척을 마치고 나면 아트로핀이란 주사제를 한 번에 4 앰플* 씩, 5분 간격으로 주사하라는 오더를 내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응급실 간호사 한 명은 밤새도록 환자 한 사람에게 매달려 앰플 까고 주사 놓다가 볼일 다 본다.


이렇게 치료하여 혈압, 호흡, 맥박 등 환자의 생명 지표가 정상으로 돌아오고 일정 시간 관찰 후 그대로 잘 유지되면 다음 날 근무를 위해 눈을 좀 붙이게 되는데, 이때는 자도 자는 게 아니다. 왜냐하면, 이런 환자는 한동안 멀쩡하게 잘 지내다가도 돌아서면 '꼴까닥' 하고 숨 넘어가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벌떡 일어나 즉시 심폐소생술을 시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응급실 당직 다음으로 햄든 일은 행려병동(行旅病棟) 업무다.

행려병자란 길거리나 지하도에 병으로 쓰러져 있는 사람을 행인이 신고하거나 지나가던 경찰관이나 방범대원이 발견하여 데리고 온 무연고(無緣故) 환자를 말하고 그들이 입원해 있는 병동을 행려병동이라 불렀다.

이들은 가족이 아예 없거나, 있어도 인연을 끊고 사는 사람들이라 죽게되어도 연락할 곳이 없다.


그러니 이런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아파 누워있으면 데려갈 곳은 오로지 시립병원뿐이었고 이들이 입원해 있는 행려병동은 마치 난민 수용소 같았다. 크고 작은 몇 개의 방 안에는 간이침대가 빼곡히 들어서 있고, 입원환자 수는 많은 경우 50명까지 된 적도 있다. 환자는 대부분 갈 곳 없는 중늙은이나 노인네로서 오랜 노숙 생활 끝에 병까지 들어 옷부터 시작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온몸에서 악취가 진동하였다.     

샤워는 스스로 할 수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었고, 못 하는 사람 씻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니 그 병동에 들어가면 악취가 오죽했겠는가?   

 

이들의 환부에 대한 드레싱은 주로 인턴 몫이었다.

보통 환자도 한 자리에 오래 누워있으면 욕창*이 생기기 쉬운데 잘 먹지 못해 뼈와 가죽밖에 남지 않은 이런 환자야 말로 튀어나온 뼈 때문에 욕창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병원에는 이들을 매일 돌려눞혀 줄 인력이 없어 움직일 수 있는 환자들의 자비심에 의지하는 것 외에는 달리 방도가 없었다.


인턴 역시, 이런 환자들을 매일 돌려 눕혀가며 확인할 만큼 기운이 세거나 한가하지 않은 사람들인지라 환자가 아프다고 호소하지 않는 한 그런 상처가 생긴 줄도 모르고 그냥 지나쳤다. 또한, 사오십 명이나 되는 환자를 상대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의료 인력으로는 상처 부위의 드레싱도 매일 해줄 수 없어 이삼일에 한 번씩 해 주었는데 어느 날 나영은 그 상처 부위를 열어보고는 그만 까무러칠 뻔했다.


나영이 환부의 거즈를 떼 낸 순간, 그 속에 구더기 몇 마리가 꿈틀거리고 있는 것 아닌가!

그것을 보는 순간 '욱!' 하고 속에서 뭔가 올라와 곧바로 화장실로 달려가 변기에 머리를 박고 토하며 눈물을 흘렸다.

"어떻게 산 사람에게서 이런 일이?"      


행려병동의 참상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병동 야간 당직을 설 때면 일반병실에서는 밤 12시 이후 인턴을 찾는 '닥터 콜'이 거의 없는 반면, 행려병동에서는 눈 좀 붙일 만하면 콜이 온다. 한밤중에 의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환자는 대부분 심한 호흡곤란을 호소하는 기관지 천식 환자다.     


이 병이 심해지면 숨을 들이쉴 때마다 넓어져야 할 기관지가 오히려 좁아져서 그 속을 힘겹게 통과하는 공기가 "휘 휘, 삐이삐이" 하며 풀피리 부는 듯한 소리를 내고, 공기가 폐로 잘 들어오질 못하다 보니 산소공급이 부족하여 얼굴은 푸르죽죽하게 변해가고, 환자는 숨 못 쉬는 고통으로 죽을 듯이 괴로워한다.

    

이럴 때 환자 혈관에다 '에이엠피'*라는 주사약을 주입하면 주사액이 한두 방울 들어가기 무섭게 숨소리가 달라지고 낯빛이 돌아오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지옥에서 천당으로 돌아온 얼굴로 바뀐다.

하지만, 이  주사를 놓는 의사는 죽을 맛이다.


이 약물은 빨리 주사할 경우, 자칫 환자가 쇼크로 급사할 위험이 있으므로 주사기 중 제일 큰 50cc짜리 주사기 안에 증류수나 포도당을 가득 섞어 10분 이상 천천히 주사해야 한다. 말이 10분이지, 잔뜩 긴장한 채 무거운 주사기를 팔에 꽂아놓고 손목시계를 봐가며 들어가는 둥 마는 둥 한 속도로 10분 동안 들고 있다 보면 팔도 아프고 정신도 지친다.


이런 환자가 한 명만 있는 것이 아니라 거의 항상 두세 명 정도 있는 데다 각 환자는 이삼일에 한 번은 이 주사를 맞아야 하니 당직 인턴은 제대로 잠잘 날이 없다.


낮에는 구더기가 나오는 상처에다, 밤에는 숨이 컥컥 막히면서  푸르죽죽하게 변해가는 그 고통스러운 얼굴을 보며 나영은 생지옥(生地獄)이라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살 떨리게 실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저 사람들은 인생을 어떻게 살았길래 말년에 저런 신세가 되었을까?'라는 생각에 앞으로 살아갈 자신의 인생에 대해 깊은 사유를 하게 되었다.


나영은 인턴기간 동안 다른 인턴들과 똑같이 일했다. 그리고 맡은 바 업무는 다 해냈다.

갑자기 발생한 호흡정지나 심정지 환자에게 기관삽관도 해봤고, 척추에 바늘을 꽂아 척수액도 뽑아봤고, 한 밤중에 산부인과 의사가 도착하기도 전에 세상에 불쑥 얼굴을 내미는 성질 급한 아기도 받아봤다.     

      

나영이 인턴 1년 동안 얻었던 가장 큰 수확은 자신감이었다.     

"내가 장애인이라고 해서 의사로서 못한 일이 뭐 있노? 그러니 앞으로는 나더러 의사 대신 기초의학 하란 조언일랑 하지 말고, 출장을 많이 다녀야 하기 때문에 못 받아준단 헛소리는 더더욱 하지 마라. 그런 말이야말로  '편견'과 '오만'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용어 해설

* 디아이(D.I) -  Drug Intoxication의 약자로서 '약물중독'이란 뜻

* 앰플(ample)  -  일 회 분 용량의 주사액이 든 유리 용기

* 욕창(褥瘡, bedsore)  - 오래 누위 있을 시 뼈와 침상이 닿아 지속된 압박으로 피부가 헐어 궤양처럼 된 상태로서 엄청 아프고 염증이 잘 생긴다.

* 에이엠피(A.M.P. aminophylline의 약자) - 기관지 확장제

* 기관삽관(tracheal intubation) - 기관이란 폐를 들락거리는 공기의 가장 큰 통로로서 이것이 내려가 양쪽 기관지로 갈라지는데, 이 속으로 관을 집어넣는 행위를 기관삽관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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