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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우물 Oct 06. 2024

가족의 의미(하)

아버지와 아들

딸아이의 편지 낭독이 끝나고 아들 차례가 되었다.


제목한상석 교수님의 칠순을 축하하며부제, 베스트셀러 작가는 도대체 언제? 

오늘 이 자리에 아빠엄마누나며느리 그리고 결이와 봄이 한자리에 모여서 아빠의 칠순 생일을 축하하니 너무나 행복합니다지난 환갑 때 제 모든 아이디어를 짜냈던지라 축사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데 마침 브런치에 올려주신 글을 보고 뒤늦게나마 허겁지겁 편지를 쓰고 있네요.     


영화 기생충이 생각납니다아빠도 생각 못 하셨죠저도 나이 마흔이 다되어 부모님께 손 벌리고 살 게 될 줄은 생각 못 했습니다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어릴 때 좀 더 효도하고 잘해서 더 크게 지원받을 걸후회가 됩니다

(일동 웃음)   

  

그래도 의사라는 직업으로 항상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시고 자식들을 챙겨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전문직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끼게 되네요앞으로 저는 더 열심히 살고 준비해서 결이에게 모든 걸 걸어보려고 합니다.

(다들 웃는 가운데 종종 개그를 다큐로 알아듣는 순진한 내 마눌님이 "부담된다, 결이."라고 말해 또 한 번 웃었다.)     


성격이 보드라운 결이를 보며 아빠의 강인한 카리스마와 화끈한 성격은 어디로 갔나 했는데 얼마 전에 봄이가 어린이집에서 옆 반 친구를 끝까지 쫓아가서 시원하게 밀어버렸다고 하네요아직 한 씨의 피는 살아 있었습니다.

(아빠 웃음)


해운대 바다를 바라보며 인생의 제2막은 베스트셀러 작가라면서 와인 잔으로 건배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5년이 흘렀네요.

(엄마 웃음)    

역시 하나님은 들어주시는 거보다 안 들어주시는 게 더 많은 거 같습니다


우리 집 책장에도 꽂힌 아빠의 역작 '얼굴특강'과 '아무튼 사는 동안 안 아프게'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아빠가 참 보고 싶어지기도 하고집에 보유하신 재고는 몇 권인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멋쩍은 아빠의 웃음)    

 

불의와 타협 없이 살아온 아빠가 스스로 탈모약을 처방받아 약을 보내줄 때 많이 감동받았습니다. 

(일동 웃음)    

 

나이가 들어서 마음이 약해지신 건지아니면 탈모 유전자 때문에 단순히 미안하신 건지는 모르겠지만 의사인 아빠에게서 가장 큰 도움을 받았던 순간이었습니다사실 이제는 작은 거라도 아낌없이 주려는 아버지의 마음이겠지요언제나 강하지만 점점 유해지는 아빠의 모습을 보며 세월 앞에 장사 없다라는 말을 실감하게 됩니다외유내강이 더 맞는 말이겠지요?”     

 

갑자기 녹음기가 고장 난 듯 아들이 말을 잇지 못하고 이를 악물고 있다. 

2분 이상 지속되는 아들의 침묵과 우는 모습에 엄마는 "나는 우리 아들이 우는 모습을 평소에 본 적이 없는데 자가 와저라노? 늙었는갑다." 하고, 누나는 분위기 전환을 위해 손뼉을 쳐가며 "울어라! 울어라!" 하며 웃기려 애쓰고, 며느리는 "요즈음 오빠가 아버님 얘기만 나오면 저렇게 잘 울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아무래도 울 것 같다며 편지를 안 쓰려 하더라고요."라며 우는 모습까지 흉내 내며 설명한다.     

 

이윽고, 감정을 수습한 아들이 말을 이어갔다. 

비록 육체는 쇠약해지지만 강할 때는 강하고 부드러울 때는 부드러워지는 아빠의 모습을 보며 더 많이 배우도록 할게요베스트셀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뭔가 목표를 가지고 또 다른 일을 계속해서 한다는 그 모습이 멋진 것 같습니다그러니 부디 반드시 세 번째 책을 내야겠다는 다짐에서는 조금 벗어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제는 브런치 작가로 데뷔하셔서 오늘 또 건배를 하며 베스트셀러는 다음 팔순 잔치 때를 기약하겠지만 적어주신 내용들 읽어 보고 평생 간직하며 살아야죠자식들이손주들이 항상 아빠 자랑스러워하고 사랑한다는 사실 잊지 마시고 건강하게 오래 봤으면 좋겠습니다. 

(또 울먹인다.)

사랑합니다.”
 

              며느리와 시어머니             

아들의 낭독이 끝나자 이번엔 며느리가 편지를 들고나와 낭독을 시작했다. 

오늘은 아버님의 칠순 생일이지만 저는 아버님이 아닌 어머님께 이 편지를 올립니다어머님미우나 고우나 하나뿐인 며느리 윤정입니다어머님이 있으셨기에 아버님 칠순에 온 가족이 웃으면서 이 자리에 앉아있습니다(여기서부터 벌써 며느리의 목이 메기 시작한다.)      

    

20대 중반에 결혼을 해서 첫째를 출산하고또 둘째를 출산하고 나니 저도 어느덧 30대 중반이 되었고이제서야 어머님의 살아온 인생이어머님의 살아온 삶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가 아닌 같은 여자로서아내로서엄마로서의 어머님이 이해가 되었습니다언제나 헌신적이고 희생적으로 아버님 곁에서 묵묵히 내조하셨고악으로 깡으로 두 아이를 홀로 키우셨을 어머님이 한편으로는 얼마나 외롭고 고단하고 힘드셨을지..... 마음이 아프기도 합니다

(이를 악문다.)    

     

저는 좋은 세상에 태어나 어머님 아버님의 도움으로 두 아이를 편하게 좋은 환경에서 키우고 있지만그래도 살다가 가끔힘들다는 생각이 들 때 어머님을 생각합니다어머님을 생각하며 다시 또 힘을 내서 내조를 하고 육아를 하며 지냅니다앞으로도 김 00이라는 여자로 어머님을 이해하며 더 잘 지내고 싶습니다.     

부족한 저를 믿고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기서부터 더더욱 목이 메고 목소리가 갈라져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고, 그 모습에 그만 아내도 눈물을 훔친다.)         

이 자리에 있기까지 묵묵히 뒤에서 헌신하신 어머님외롭지 않으시게 저희가 더 잘하겠습니다아버님의 진짜 보조기 김 00.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다들 박수를 치며 "~~" 하고 탄성을 지르는데

"아이고우리 며느리 우짜겠노!" 하며 아내가 눈물을 흘리며 앞으로 나가 며느리를 껴안는다아내는 "응응그래고마워~" 하며 흐느끼고며느리도 같이 울고보고 있는 우리도 눈시울을 붉히며 연신 눈물 닦기 바빴다


그러고는 곧 함박웃음 바다가 되었다.     

곧이어 나의 간단한 인사가 있은 후아내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번에 너희들 행사 준비한다고 수고많았다이제 그에 대한 답례를 하고자 하니 앞으로 나오너라."

아이들이 앞으로 나오자 아내는 어제 아이들로부터 받은 돈목걸이를 하나씩 목에 걸어준다.     


후두둑 반주단의 가락에 맞춰 개굴 합창단의 노래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울다가 웃다가웃다가 울다가 모두가 한마음이 되었고그 화목의 기운이 어우러져 춤추며 우리 모두를 방탄유리처럼 에워쌌다.

그렇게 그 밤은 흘러갔다.       

  

가족(家族)의 의미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서로 다른 가치가 존재하지만가족의 일원이 된 사람에게 있어 서로 사랑하고 화목하게 지내는 것보다 더 큰 가치는 없을 것이다


꼬박 9년이 걸렸다.

미움과 분노와 원망과 한탄과 눈물을 믿음과 소망과 사랑과 오래 참음으로 발효시켜 훈훈한 화목과 따뜻한 화평의 장맛을 내는데 9년이란 숙성 기간을 필요로 했다.    


그 인고의 세월 동안 우리 모두는 심한 가슴앓이를 해야 했다하지만 이제우리는 모두 승리자가 되었다상대를 굴복시켜 승자가 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이겨내어 진정한 승리자가 된 것이다그 상급으로 하나님께서는 각자의 머리 크기에 맞는 영광의 면류관을 씌워주셨고나는 내 생애 최고의 잊지 못할 생일 선물을 받았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여정이 끝나고 본향(本鄕)으로 돌아가면 내 아버지 곁에 앉아 추억의 사진첩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지구별 여행기를 들려드리겠지.

그때 나는 2022년 6월 4·5일 편에 와서 가장 들떠서 자랑할 것이다.     


"아버지, 이 장면 어때요? 참 멋지지 않아요?"


"그래! 바로 이런 거야. 내가 가장 보고 싶어 하는 장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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