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와 할아버지
2022년 6월 4일, 가족이 모두 경주에 모였다. 명목은 ’칠순 기념 가족여행‘.
이날 행사를 위해 아이들은 경주에 있는 ’누아르 블랑(NoirBlanc)‘이라는 풀빌라를 한 채 잡아놓았다.
빌라 안에 차를 대니 옥외 풀장에서는 아이들 물놀이가 한창이고 며느리와 딸은 식탁을 중심으로 생일 축하 데코레이션에 여념이 없었다. 아내와 나는 빌라의 1층 제일 안쪽에 있는 트윈베드룸에 짐을 풀고 난 후 방안에 비치된 안마의자에 앉아 쉬면서 마주 보이는 풀장에서 아이들이 신나게 노는 광경을 느긋이 즐겼다.
오후 6시쯤 되자 식사 준비가 끝났다고 알려와 거실로 나갔더니 거실 벽에는 장식용 풍선들과 커다란 플래카드가 걸렸고, 플래카드 위, 내 사진 실루엣 옆에 쓰인 문구는 나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우리의 영웅 아버지
쉼 없이 달려오신 세월을 존경합니다.
청춘을 바쳐 가족이라는 꽃을 피우셨으니
그 꽃들이 남은 인생 꽃길 만들어드릴게요.
항상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식탁에 앉아 상차림을 보니 그야말로 진수성찬이다.
콩나물무침과 함께 나온 아귀수육에, 부추무침을 곁들인 소꼬리찜에, 부추천, 대구전, 오색꼬치전에, 파절이를 곁들인 육전에, 고추장 보리굴비까지. 아들이 우쭐거리며 자랑스레 말한다.
“아빠, 이거 다 윤정이가 직접 만든 거예요. 밀키트 제품도 사용 안 하고 오늘 새벽 3시까지 만들었어요.”
참 대단하다. 저걸 혼자서 다 했다니! 맛이라면 내가 또 한 입맛 하는 사람인데, 한 점씩 맛을 보니 맛없는 게 하나도 없다. 어쩌면 저 나이에 이렇게까지 맛을 낼 수 있을까? 대장금은 가고 최장금의 시대가 온 것 같다.
식사가 끝나고 칠순 세리머니 순서가 되자 식탁 위에 멋진 케이크와 함께 정체불명의 종이 꽃바구니와 애드벌룬 장식물이 놓였다. 전등을 끄고 촛불에 불을 붙인 후, 가족들의 생일 축하 노래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내가 입김으로 촛불을 불어 끄자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탁자 위에 놓여있던 애드벌룬 형 장식물을 바닥으로 내린 아들이 나더러 그 꼭대기에 있는 리본을 풀라 해서 풀었더니 갑자기 애드벌룬이 위로 떠오르면서 5만 원 권 지폐가 줄줄이사탕처럼 매달려 천정으로 치솟아 오른다. 그리고, 옆에 있는 꽃상자의 뚜껑을 잡아당겨 보라 해서 당기니 그 속에서도 돈이 줄줄이 딸려 나왔다. 곧이어 아들이 축하 인사와 함께 줄줄이 돈사탕을 내 목에 걸어주고 모두가 박수를 쳤다.
이벤트가 끝나고 자리에 앉자 아들은 준비해 온 스파클링와인을 따고, 며느리는 그에 맞는 안주를 만들어 상에 올린다. 안주 또한 범상치 않은 솜씨다. 다들 잔을 채우고 건배와 함께 나의 감사 인사가 있은 후, 나의 첫 손주 '한결'이 마이크를 잡고 축사를 낭독했다.
"할아버지 일흔 번째 생일 축하드려요. 다리 아프지 말고 오래오래 걸었으면 좋겠어요. 할머니랑 싸우지 말고 사세요. 할아버지 계셔서 저희도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어요. 할아버지 항상 건강하세요. 그런데 봄이는 할아버지 성격 닮은 것 같아요. I love you."
여성성이 강하고 유순한 손자 결이가 여장부 같은 기질의 동생 봄이를 버거워하더니 끝내 축사 말미에 <그런데 봄이는 할아버지 성격 닮은 것 같아요>라는 말로 할애비에게 한 방 날려 다들 배를 잡고 넘어갔다.
한 씨 가문 사람들의 머리에서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그래서 지금껏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멋진 세리머니에, 맛있는 음식에, 달콤한 와인에, 함박웃음이 피어나는 즐거운 대화에, 손주들의 재롱을 보며 그렇게 그 밤은 흘러갔다. 내 생애 최고의 생일이 되어.
아버지와 딸
다음날.
저녁 식사 시간이 되자 다들 본채 바로밖에 세워진 바베큐장으로 이동했다.
편리하고 안전한 가스용 구이기에, 기다란 식탁에, 추울 때를 대비한 스탠드형 온열기를 갖춘 멋진 바베큐장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바깥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유리 벽이 있어 더 좋았다.
식탁 위에는 아내와 며느리가 집에서 준비해 온 밑반찬과 낮에 장 보러 가서 사 온 상추, 깻잎, 파절이, 쌈장 등이 차려지고 고기 굽는 일은 아들과 딸이 맡았다. 즉석에서 굽고 자르고 까고 발라서 내주는 돼지고기, 소고기, 곱창, 버섯, 새우, 관자는 얼마나 맛이 있던지.
창밖은 어둑해져 운치를 더하고, 빗줄기는 굵어져 천정을 소리 나게 두드리고, 개구리들은 빗소리 장단에 맞춰 “개굴개굴” 축하 송을 불러댄다. 이 얼마 만에 듣는 개구리울음소린가! 맥주로 다시 한번 생일 축하 건배를 하며 즐겁게 먹고 마신 후, 드디어 이 행사의 클라이맥스인 ‘편지 낭독’ 시간이 돌아왔다.
맨 먼저 장녀인 딸이 앞으로 나와 밝은 음성으로 이야기하듯 편지를 낭독했다.
“아빠,
먹을 것으로 가득 찬 봉지를 들고 집에 돌아오실 때마다 제가 신나서 뛰어나가던 날이 몇 년 전 같은데, 세월이 이렇게 흘러 며느리 조카를 맞이한 할아버지가 되셨네요. 이 만만치 않은 세상에서 아픈 왼발로 세상살이하신다고 얼마나 수고가 많으셨나요? 가끔은 불편한 다리 때문에 하소연하실 법도 한데 아무 불평하지 않는 아빠를 보면서 '저건 성격인 건가? 경상도 남자라서 그러신 건가?' 라며 의아해했던 기억이 있어요.
징징대지 않는 아빠 곁에서 자란 딸이라서 그럴까요? 남자가 징징대면 남자처럼 안 보여서 지금까지 싱글이네요. 한번 갔다 와야 했나요? 다행히 승윤이가 윤정이와 결혼해서 이쁜 조카를 안겨드렸으니 손자 손녀에 대한 부담은 덜었네. 아빠 덕분에 부자는 아니더라도 안정적으로 잘 자랄 수 있었어요. 어떤 사람들은 집안 사정으로 인해, 가고 싶어도 못 가는 미국 유학도 갈 수 있었고요.
그러나 항상 아끼고 미래를 위해 허리띠 졸라맨 엄마가 아니면 못 갔을 거예요. 아빠도 친목을 위해 자신을 위한 돈 좀 쓰신 거 아시죠? (다들 웃음)
미국 유학 시절 외국인 신분으로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없고, 사건이 터져도 부모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부모님의 울타리가 얼마나 중요한 건지 깨달았어요. 대신 그 공백의 자리를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시간으로 채웠어요.
아빠,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떠올릴 때 아빠에게 받은 상처로 인해 하나님에 대한 이미지를 재정립해야 하는 경우도 있더라고요. 물론 어릴 때 아빠랑 한 번씩 세게 부딪혀서 울고불고하고, 승윤이가 그 와중에 혹시나 자기에게 불똥 튈까 몸 사리는 상황들도 있었어요. 그치만 전 아빠를 생각하면 뭔가 든든하고 멋지고 남자다운 분이라고 생각했어요.
아빠,
어느 때부터인가 아빠 머리에 더 이상 검은색 머리카락을 찾아볼 수 없고, 걸어 다닐 수 있는 시간이 점차 짧아진 것을 보면서 ‘아 벌써 내가 40살이 넘었고 아빠가 칠순이시구나.’ 하며 강물처럼 흘러간 여러 세대의 인생 역사가 느껴집니다. 인생 후반부에 글쓰기에 도전하고 여기에 푹 빠져서 매진하는 아빠를 보면서 '아빤 좋겠다. 좋아하는 분야를 또 찾으셔서'라며 부러워하기도 하고, '아빠가 진짜 대박을 터뜨리면 어쩌지? 드뎌 40대에 샤넬 매장 한 번 가보나?' 하는 기대도 해 봅니다. ㅋㅋㅋ
뭐든 한 번 하면 끝장을 보는 아빠. 아빠 글을 통해 많은 사람이 상처를 위로받고 힘든 세상살이 이겨나갈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되길 응원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빠 글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길 기대합니다. 사랑합니다. 그리고 존경합니다, 우리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