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by 한우물


우리가 삶의 여정 속에서 끊임없이 마주했던 물음, 즉 우연, 필연, 운명에 대한 탐색은 이제 그 마지막 종착지에 다다랐다. 앞선 논의들을 통해 우리는 인생이라는 복잡한 태피스트리(tapestry) 안에 이 세 가지 요소가 어떻게 얽혀 있는지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이제, 이 모든 실타래의 궁극적인 지향점인 운명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고, 또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숙명

우리는 각자 다른 조건 속에서 태어난다. 부모와 환경, 타고난 기질과 재능, 시대적 배경과 시운(時運), 그리고 하늘로부터 받은 소명 등은 우리의 의지로 선택할 수 없는 숙명적인 요소들로서 이는 연극 무대에 오르기 전 내게 할당된 배역과 대본 같은 것이자 카드 게임에서 내가 받아 든 패와 같다.


숙명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패배주의적인 체념이 아니라 내가 어떤 땅에 발을 딛고 서 있는지, 내 손에 어떤 도구들이 쥐어져 있는지를 명확히 인식하는 것으로, 삶이라는 집을 지을 때 먼저 주어진 집터의 특성을 이해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와 같이 주어진 조건들을 냉철히 파악하고 인정할 때, 비로소 우리는 그 안에서 우리가 가진 강점과 가능성을 발견하고 무엇을 어떻게 가꾸어 나갈지에 대한 현실적인 계획을 세울 수 있는 것이다.


자유의지와 운명

숙명이 우리 삶의 기본적인 틀과 배경을 제공한다고 할지라도, 그 안에서 어떤 그림을 그리고 어떤 이야기를 써 내려갈지는 우리의 자유의지에 달려 있다. 같은 설계도를 받았더라도 건축가의 식견이나 의지나 노력에 따라 전혀 다른 집이 탄생하듯,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 놓이며, 그 작은 선택들이 모여 결국 운명의 물줄기를 이루어간다. 따라서 우리는 주어진 숙명의 조건 안에서 최선을 다해 자신의 소임을 수행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드라마 연출가도 시나리오 작가도 아닌, 연기하는 배우라는 사실을 명심하자. 연출가가 배역을 고를 때는 그 시나리오의 캐릭터에 가장 적합한 배우를 떠올리며 낙점한다. 그러기에 배우는 연기를 하기에 앞서 먼저 자신이 맡은 캐릭터의 특성을 잘 파악한 후 연출자가 원하는 연기를 해내야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자유의지란 것도 내 마음대로 하라고 준 것이 아니다. 그것을 발동하려면 먼저 하늘의 뜻을 살펴야 한다. 하늘이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줄 때는 그것으로 하늘의 영광을 드러내라고 준 것인 만큼 그 뜻에 맞추어 사용할 때 그것은 보석처럼 빛날 것이나 그러지 않을 땐 재앙의 화살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우연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우연과 만난다. 대부분 그냥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지만 때로는 항해 중 만나는 예상치 못한 심한 바람과 파도의 형태로도 나타난다. 이렇듯 인생은 피할 수 없는 숙명과, 우리의 자유의지로 만들어가는 운명과, 예측불가능한 우연이란 변수로 이루어져 있다.


이로 인해 우리의 계획과 노력과는 전혀 무관하게 예상치 못한 사건이나 기회가 찾아오기도 하고, 예기치 않은 시련이 닥치기도 한다. 따라서 우리는 예측 불가능한 변화에 대해 지나치게 두려워하거나 저항하기보다는, 유연하고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아무리 두드려도 열리지 않는 문 앞에 주저앉아 좌절하기보다는, 예기치 않게 빼꼼히 열린 조그만 다른 문으로 시선을 돌릴 수 있는 여유와, 낯선 문을 열고 들어가 새로운 길에서 또 다른 가능성에 도전해 보고자 하는 용기도 필요하다. 그러다 보면 나의 운명은 오래전부터 문을 열어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동안 내가 눈이 멀어 엉뚱한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예기치 않은 우연과의 만남.

그것이 만들어내는 세찬 비바람과 높은 파도가 내 인생을 위협해도 풍향에 따라 돛의 방향을 바꾸고, 키를 바로 잡고, 열심히 노를 젓다 보면 인생이란 나의 배는 나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어느듯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고 있을 것이다.


삶의 의미

인생이란 마라톤은 각자 출발점부터가 다르고 중간에 널려 있는 장애물의 종류도 천차만별이다. 그래서 인생은 앞에서 보면 참으로 불공평한 게임으로 여겨지지만, 종점에 다다라 뒤 돌아보면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네' 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종점을 지나고 보면 인생은 참 공평한 게임이란 생각을 갖게 될 것임이 틀림없다.우리에게 주어지는 인생 문제의 난이도는 사람마다 다 다르다. 어떤 사람에게는 쉬운 문제를, 어떤 사람에게는 몹시 어려운 문제를. 그래서 얼핏 인생이 불공평하게 보일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출제자가 어떻게 고수와 하수에게 같은 수준의 문제를 내겠는가? 내게 주어진 문제가 난해하면 할수록 그가 나를 그만큼 높이 쳐주었다는 말 아니겠는가! 그걸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미소가 피어오른다.


또한, 인생이란 경주는 마라톤과 달리 골인 지점을 통과했다고 모든 게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 끝에는 우리의 레이스를 엄정하게 평가하고 상벌을 내릴 심판관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기에 인생은 누구에게나 공평한 것이다.


인생은 내게 주어진 길 자체가 아니고, 그 길 위에 남기고 간 나의 발자국이다.

운명이 나의 인생이 아니라 그것을 헤쳐 나온 과정이 나의 인생이다.
운명이 우리에게 어떤 길을 제시하든, 그 길 위에서 어떤 가치를 추구하고 어떤 꽃을 피울지는 전적으로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다.

그러므로 운명을 두려워하거나 원망하기보다는 그것을 내 삶의 동반자로 받아들이고 함께 아름다운 인생 여정을 만들어가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 표제사진 출처: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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