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과 숙명

by 한우물

앞에서 한 질문을 다시 한번 해보자.

"운명은 우리의 인생을 어떻게, 얼마나 지배할까? 그리고,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은 과연 어느 정도까지 운명을 바꿀 수 있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는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운명’이라는 단어 속에 담긴 복합적인 속성을 먼저 헤아려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운명’이라 부르는 말 속에는 실로 두 개의 뚜렷한 의미가 공존한다. 그것은 바로 ‘운명(運命, destiny)’과 ‘숙명(宿命, fate)’이다. 움직일 ‘운(運)’ 자와 목숨 ‘명(命)’ 자가 결합한 운명은 그 이름처럼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화하는 인생의 흐름을 나타내고. 그 물길은 때로는 우리의 의지에 따라 바뀌기도 하고, 때로는 예상치 못한 외부의 힘에 의해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반면, ‘묵을 숙(宿)’ 자와 목숨 ‘명(命)’ 자가 어우러진 숙명은 우리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이미 정해져 있는, 마치 단단히 닻을 내린 배처럼 피할 수 없는 삶의 조건들을 의미한다. 우리의 성별, 국적, 부모, 타고난 재능과 기질, 시대적 배경 등은 우리가 선택할 수 없는 숙명적인 요소들이다. 이러한 숙명의 틀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기본적인 배경이 되며, 때로는 우리의 자유로운 의지를 제약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처럼 운명이라는 단어 안에는 신의 영역과 인간의 영역이 오묘하게 공존한다. 우리의 인생은 드넓은 바다를 항해하는 배와 같다. 우리는 스스로 노를 젓고, 불어오는 바람에 맞춰 돛을 조절하며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능동적인 존재다. 하지만 동시에, 예측 불가능한 파도와 거센 조류, 때로는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불어오는 바람의 방향까지 통제할 수는 없다. 그것이 곧 숙명이자 신의 영역이다.


신의 영역이 위에서 언급한 사항들 외 어디까지 미치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신이 써 내려가는 거대한 서사시에 중요한 역할을 맡기기 위해 어머니 태에서부터 점찍어 그가 가는 길을 인도하고 그가 하는 일에 일일이 간섭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하는 짓이 하도 악독하여 심판의 그날까지 제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두는 사람도 있다.


결국, 운명과 숙명은 서로 완전히 분리된 채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삶이라는 하나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하며 얽혀나가는 두 개의 고리라 할 수 있다. 이렇듯, 우리의 삶은 숙명이라는 견고한 씨줄과 우리가 매 순간 선택하고 만들어 나가는 운명이라는 다채로운 날줄로 정교하게 짜여진 한 필의 아름다운 직물과 같은 것이다.




표제사진 출처: istock 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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