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2월 2일에 열리는 RGR(Radiological Grand Rounding) 시간에 나영을 'Guest Speaker, 특강 연자'로 모시고 싶다는 것이다.
“오잉? 내가 서울대병원 R.G.R 연자?! 이게 말이 되나? 이거, 믿어도 되냐?”
RGR 시간은 당시 서울대병원 방사선과에서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행사로서 강의를 마치고 나면 방사선의학계의 태두(泰斗)이자 서울대병원 명예교수인 주동운 선생께서 연자의 목에 직접 금메달을 걸어줄 정도로 권위를 부여한 강연회였다.
이 자리에는 주로 외국 유학을 다녀온 선생들(당시에는 외국 유학 가기가 쉽지 않은 시절이었다), 한 분야의 대가들, 그리고 뭔가 획기적인 연구를 한 학자들을 모셔다가 앞서가는 새로운 지식과 아이디어를 듣고 배우는 그런 학술행사였다. 서울대학이 어떤 곳인가? 그 시절 그들의 프라이드는 하늘을 찌를 듯했고 그럴 만도 했다.
그런 그들이, 이런 권위 있는 자리에, 이름도 생소한 신생 지방 사립대학병원에 근무하는 서른두 살짜리 전임강사를 Guest speaker로 초빙해 강의를 듣는다는 사실이 나영은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그뿐 아니다.
중요한 자리에 게스트 스피커로 모시려면 대게 1년에서 6개월 전에 타진하는데 12월 2일이면 강의 준비할 시간이 두 달도 채 안 된다. 나영은 '도대체 어떻게 이런 황당한 일이 일어나게 되었을까?' 하며 그 메커니즘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봤다. 그 결과, 결론은 하나. 그건 바로 서울대병원 방사선과 주임교수인 한만청 교수 때문이리라.
전공의 시절, 나영은 그가 한국 방사선의학회에서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라는 소문을 들은 적도 있어 그분이야말로 격(格)을 깨고 경(境)을 넘나들 수 있는, 그리고 시대를 앞서가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 분이기에 과원들의 자존심을 잠재우고 이런 황당하고도 파격적인 일을 밀어붙였겠지.
그건 고마운데, 교수님은 대체 무슨 배짱으로 이런 일을 벌였을까?
초음파 경험이래야 이제 겨우 십 개월 정도에다 이미 논문에 내 밑천 다 드러냈는데, 뭐가 더 나올 게 있을 거라 믿고 이런 무모한 일을 벌였을까? 내가 무슨 슈퍼맨도 아닌 것이, 과연 그게 가능할까?
그건 아마도, 7분밖에 안 되는 논문 발표 때 못다 한 이야기, 1시간 줄 테니 내 머릿속에 있는 것 다 토해내란 말이겠지.
드디어 그날이 왔다.
나영은 서울대학에서 보내준 항공 티켓을 들고 김해공항으로 갔다.
그는 3개월 전, 기기 도입 관계로 운 좋게 일본 가는 비행기는 한 번 타봤어도 국내선 비행기를 타보기는 처음이었다. 그만큼 비행기 한번 타기도 힘든 시절이었다.
'흠, 게스트 스피커 한번 할 만하네!'
병원에 도착하여 방사선과 사무실로 찾아갔다.
거기에는 초청 연자인 나영을 영접하기 위해 두 사람의 중견 교수가 기다리고 있었다.
나영이 그중 한 사람을 보는 순간, 가슴이 벅차올라왔다.
그는 나영이 전공의 3년차 말, 시립병원에 가기 싫어 서울대병원 임상강사 지원 의사를 밝혔을 때 대부대병원 닥터 한이라면 받겠다고 한 바로 그 박 교수였다.
'그랬던 내가, 2년 만에 Guest speaker로 나타나 이런 분의 영접을 받다니!'
나영은 그저 황송해서 몸 둘 바를 몰라했다.
난처한 것으로 따지자면 교수들이 더했다.
이런 어린 연자를 모시려니 얼마나 당황스러웠겠는가.
동석한 연 교수가 물었다.
"몇 연도에 전문의 땄지요?"
"작년입니다."
"그럼, 우리 제자 중 00와 board(전문의) 동기쯤 되겠네요."
이 한마디는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었고 그 교수들의 현재 심경을 대변하기도 했다.
나영은 연신 고개를 숙이며 겸손한 태도를 보였다.
두 교수와 차 한 잔 마시며 환담하는 중에 한만청 교수가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등장했다.
"한 선생, 왔어?"
"예, 교수님."
"비행기 처음 타 봤지?"
여기서 그냥 "예" 하며 황공하다는 듯 고개만 조아리면 될 일을, 틀린 말 그냥 못 넘어가는 나영의 그 꼬장꼬장한 성질머리 때문에 나영은 자기도 모르게 한마디 내뱉고 말았다.
"예. 일본 가는 비행기는 타 봤어도 서울 오는 비행기는 처음입니다."
졸지에 한 교수의 입장이 머쓱해졌다.
강연 시간이 되어 다 같이 강연장으로 향했다.
복도를 걸어가는 동안 나영은 다들 뭔가 자신을 낮춰보는 듯한 분위기에 살짝 기분이 상하면서 또다시 속에서 오기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흐흐, 교수님들, 강의 마치고 난 후에도 나를 이처럼 대할는지 어디 한번 두고 봅시다.'
나영에게는 아직 비장의 한 칼이 남아있었고 그래서 자신이 있었다.
강연장에 들어서니 방사선과 스태프들과 전공의들, 그리고 관심 있는 타과 선생들로 가득 찼다.
대한민국 최고의 엘리트 의사 집단이 모인 자리다.
그 최고의 무대에 섰다.
원내(院內) 콘퍼런스가 아닌 곳에서, 그것도 영상의학 전문가 집단 앞에서 뭔가 발표를 해본 경험이라고는 학회에서 행한 7분짜리 구연 발표 세 번밖에 없었다.
이제 한 시간짜리 강연 무대에 서서, 나에게로 쏠린 모든 시선을 한 몸에 받아내고 그들과 강의 주제에 관해 토론도 해야 한다. 논문 발표와는 차원이 다른 일이다.
게다가, 강의 제목은「US of GI tract, 위와 장의 초음파」.
이때만 하더라도 한국에 내시경 초음파가 도입되기 전인지라 내시경 없이 몸 밖에서 위와 장을 초음파로 진단하겠다는 발상 자체를 못할 때였다.
연단에 서서 청중석을 바라보자 나영이 학회 때나 연수 교육 때 강의를 듣던 내로라하는 교수들의 위엄 있는 시선과 한국에서 제일 똑똑한 레지던트들의 호기심 가득한 초롱초롱한 눈빛이 레이저빔처럼 나영에게로 날아왔다. 연단에 올라오기 전부터 콩닥거리던 가슴은 이제 쿵쾅거리기 시작했고 입은 바싹 말라왔다.
인사말을 할 때는 목소리가 떨리며 약간 더듬거리기까지 했다. 하지만 타고난 무대 체질에다, 학생 때 오랫동안 콘서트 무대를 주름잡던 나영의 경력이 그의 중심을 재빨리 바로 잡아주었다.
나영은 강연의 도입부를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장식했다.
"상복부 초음파에서 가장 성가신 존재는 뭐니 뭐니 해도 공기를 듬뿍 함유한 위장입니다. 저는 이를 해결할 방법을 찾기 위해 고심했습니다. 그러던 중, 산부인과 환자에서 골반강 초음파 검사를 시행할 때 환자에게 소변을 보지 말고 오라는 주의 문구를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나영은 논문 발표 때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다 아시다시피 방광을 소변으로 가득 채워서 자궁과 난소를 덮고 있는 장을 밀쳐내기 위함이지요. 즉 방광을 물주머니로 사용하는 겁니다. 그러자 바로 위장이 생각났습니다. 아랫배에 방광이라는 물주머니가 있다면 윗배에는 위장이라는 더 좋은 물주머니가 있지 않겠습니까. 위장은 방광에 비해 용량도 더 큽니다.
게다가 방광은 일정량 이상 차면 소변이 마려워 참을 수 없게 되는 데 반해 위장은 들어온 물이 흘러 내려가기 때문에 계속 더 채울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좋은 물주머니를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그때부터 물을 먹이기 시작하여 큰 효과를 보았고, 저는 그것을 지난 초음파학회에서 발표했습니다.
처음 물을 먹일 때는 다른 장기를 더 잘 보기 위함이었는데 막상 물을 먹이다 보니 다른 어떤 것보다 잘 보이는 장기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바로 위장 자체입니다. 물로 가득 찬 위장은 그야말로 거울처럼 깨끗이 보였습니다. 이제부터 위와 장을 물로 채웠을 때 초음파가 무얼 할 수 있는지에 대해 그동안의 경험을 토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어서 나영은 물 먹이는 방법과 용량 등에 관해 설명한 후 물로 가득 찬 정상 위장의 초음파 사진 한 장을 비추었다.
"보시다시피 물을 충분히 먹이고 나면, 이 정도로 위가 잘 보입니다. 위내시경이나 위장촬영은 위장의 진단에 지대한 공헌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보여주는 것은 위의 내강(內腔)뿐입니다. 비유하자면 동굴탐사 같은 것이지요. 그래서 이들 검사는 위의 점막에 생긴 병변은 아주 세세한 것까지 잘 보여주지만, 점막 너머의 위벽 상태에 대해서는 알 수 없습니다.
C.T로 위벽을 관찰할 수 있긴 하지만 그 조직학적 층까지 세세히 감별해내진 못합니다. 하지만 초음파 검사는 보시는 바와 같이 위벽의 각 조직층까지 하나하나 감별해 낼 수 있습니다. 위를 잘라내지 않고 생체에서, 산 채로, 움직이는 위벽의 조직층을 눈으로 확인한다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지요."
서론을 마친 후 본론으로 들어간 나영은 여러 형태의 위암, 악성 궤양과 양성 궤양의 차이, 만성 비후성위염과 위임파종(gastric lymphoma)의 감별, 침윤성 위암과 위임파종의 감별 등에 관해 설명해 나갔다.
각 케이스의 사진이 비칠 때마다 청중석에서는 난생처음 보는 영상에 감탄사가 흘러나왔고 그들의 시선은 점점 뜨거워졌으며 나영의 목소리에는 더욱 힘이 들어갔다.
언제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40분이 지나가 버리고 열띤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강의가 끝나자 주동운 선생이 나와 나영의 목에 금 칠갑을 한 영광의 메달을 걸어주었다.
큼직한 황금빛 메달의 앞면에는 서울대학교의 마크가, 뒷면에는 제 몇 회 RGR이라는 이름 아래 강의 제목과 연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모든 순서가 끝나고 다들 퇴장하는 중에도 향학열에 불타는 전공의 두 사람은 복도까지 따라오며 질문을 해댔다. 역시 그들은 달랐다. 사무실에 돌아와 음료수를 대접받으며 교수들과 환담을 할 때 나영은 강의 전과는 확연히 차이나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부산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좌석에 앉으니 긴장 끝에 오는 기분 좋은 피곤함에 스르르 눈이 감겼다.
그러면서 이 위치에 올라오기까지 겪었던 많은 일들이 하나하나 지나가다 갑자기 필름이 멈추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는 아버지 얼굴이 보였다.
나영은 아버지께 나직이 말했다.
"아버지, '넌 결코 남과 다르지 않아!'라던 아버지 말씀이 맞았네요. 역시 전 남보다 못한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전 여기에 머물지 않겠습니다. 이제 그들을 뛰어넘을 겁니다."
그리고 자신을 향해 말했다.
"한나영. 대한민국은 너무 좁다. 앞으로 우리 이 비행기만큼 높이 솟아올라 저 넓은 세계를 향해 훨훨 날아가자꾸나.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