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영상의학 발달사에 있어서 가장 큰 변환점을 들라면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전반기라 할 수 있다. 이때부터 전국적으로 초음파, CT, 및 자동 카세트 체인져(Automatic Cassette Changer for Angiography)를 장착한 디지털감산조영술(Digital Subtraction Angiography)이 보급되면서 영상의학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2차원의 평면 세계에서 3차원의 공간 세계로 전환되었고 여기에 더하여 중재적 초음파(Interventional Ultrasound)라는 신학문의 출현은 현대의학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나영이 전공의 1년차였던 1980년까지만 하더라도 대부대병원에 환자의 뱃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방사선 장비는 단순X선촬영기와 동위원소촬영기(R.I. scanner)가 전부였다. 당시 최신 의료장비라는 동위원소촬영기도 간의 각 부분을 점으로 찍어서 개략적 그림으로 그려내는 도트 스캐너(Dot scanner)라 아주 큼지막한 간암 정도만 간 내에 점이 찍히지 않은 빈 공간으로 남아 간 안에 혹이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정도였다.
영상진단 장비의 성능이 이 정도인지라 간암을 의심하여 배를 열고 들어가 보면 암은 이미 퍼질 대로 퍼져 잘라낼 엄두도 못 내고 겨우 암 조직 하나 때 내고 나와 보호자에게 사망선고를 내리는 경우가 아주 흔했다.
이럴 때 집도의가 차트에 적는 수술명은 ‘O & C'다. 이는 Open & Close의 약자로서 그냥 '열고 닫았다'라는 뜻이다. 간암의 사정이 이럴 진데, 뱃속 제일 깊숙이 들어앉은 췌장에 생긴 암이야 오죽했을까?
그런 시절에, 연세대학 진단방사선과의 이종태 교수가 1983년에 발표한 「초음파 유도하 조직생검 및 치료(Ultrasound guided aspiration biopsy &therapy)」라고 하는 신학문은 현대의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배를 째지 않고, 몸 밖에서 초음파로 환자의 뱃속을 들여다보며 그 속으로 바늘 하나 찔러 넣어 배 안에 생긴 혹이 죽을병인지 살 병인지 감별하고, 뱃속에 든 고름집이나 핏덩어리를 굵은 바늘 하나로 쪽 빨아들여 치료를 하다니!
이렇게 되면 그동안 불치의 병으로 치부되었던 간암이나 췌장암의 조기 치료가 가능해지고, 당시 심심찮게 보았던 간농양(liver abscess) 환자는 수술할 필요가 없어지고, 수술 후 출혈이나 감염으로 생긴 배 안의 핏덩어리나 고름 덩어리는 다시 배 째고 들어갈 필요 없이 초음파를 보면서 몸 밖에서 빼내면 된다.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신세계가 눈앞에 펼쳐졌다.
이것이 가능하다면 이야말로 의료의 대혁명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나영은 전문의 1년차 때 이 교수의 논문 발표와 강의를 한 번 듣고 무한한 호기심과 투지가 발동했다.
테크닉은 그렇게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저 정도면 나 혼자서도 한번 도전해 볼 만하다 싶어, 초음파를 전담하게 된 1984년 초부터 이 분야에 달려들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생각지도 못한 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먼저, 간암의 조직검사부터 도전해 보기로 하고 병리과 책임교수를 찾아가 그 시술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 후 협조를 부탁하였다. 그런데, 안 된단다. 이유가 뭐냐고 물었더니 우리 병원 병리과에는 cytology(세포학)를 전공한 사람이 없어 세포를 뽑아줘도 진단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나영의 실망은 컸다.
"에이, 김샜네, 김샜어. 포기해? 그럴 순 없지. 안 된다면 되게 하면 될 것 아닌가?"
그는 며칠 동안 이 난관을 돌파할 방법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 보았다.
"세포가 문제라…. 세포, 세포, 세포."
그러다 머릿속에서 번쩍 하고 부싯돌이 켜졌다.
"그래, 세포가 문제라면 조직을 뽑아주면 되겠네!"
나영은 다시 병리과 교수를 찾아갔다.
"교수님, 제가 조직 한 쪼가리라도 가지고 오면 진단해 주시겠습니까?"
병리과 교수는 놀라 물었다.
"22 게이지(G. gauge) needle(바늘)로 tissue(조직)를 뽑는다고요? 그것도 aspiration(흡입) 방식으로?
그게 과연 가능하겠능교?"
"물론, 저도 처음인지라 일단 해 봐야 알겠습니다. 그래서 미리 판독 가능성에 대해 여쭈어보는 것이고요."
홍 교수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병리과 교수가 조직 크기가 작아서 조직진단을 못 하겠다면 체면이 말이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흔쾌히 ‘O.K.’라 하기엔 자신이 없고....
홍 교수는 '아이고 무슨 놈의 이런 골치 아픈 후배가 다 있노?' 하며 속을 끓였다.
뜸이 돌만큼의 시간이 흐른 후 그녀가 말했다.
"그거야~ 해야~ 되겠지요?. 하지만 22 게이지밖에 안 되는 니들에서 나온 조직 가지고 진단할라카믄 우리도 지금부터 새로 공부해야겠네요. 그라이 마~ 한 달만 시간을 주이소."
"잘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2G 바늘이라면 외경이 0.7mm에 내경이 0.4mm다.
즉 간을 뚫고 들어가는 구멍의 직경이 0.7mm이고 조직을 빨아들일 구멍의 직경이 0.4mm란 말이다.
나영의 고민이 시작되었다.
이렇게 좁은 구멍 속으로 세포도 아니고 조직을 빨아들인다? 무슨 수로?
그게 가능했다면 이 방법을 개발한 서양 의사들이 뭐 한다고 세포만 뽑아냈겠나?
큰소리는 빵 쳐놨는데 안되면 이 무슨 창피냐!
하지만 나에게는 아직 한 달이란 시간이 남아있다.
그때부터 그는 골머리를 싸맸다.
"세포, 흡입, 조직, 세포, 흡입, 조직, 세포, 흡입, 조직……."
머릿속에서는 이 세 단어가 뺑뺑이를 돌았다. 하지만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한 달이 다 되어가던 어느 날, 구원의 단어 하나가 떠올랐다.
’Cutting'
그래, 그냥 빨아들일 게 아니라 잘라서 꺼내오자.
그때부터 방법은 머릿속에서 팽팽 돌아갔다.
나영은 내과 주임교수를 찾아가 빌다시피 설득하여 어렵사리 첫 케이스 예약을 잡았다.
이 교수처럼 덴마크에 가서 배워온 것도 아니고, 하다못해 다른 사람이 시술하는 것 한 번 본 것도 아니고, 오로지 남의 강의 두 번 듣고 한다. 그것도 이 시술을 개발한 사람보다 더 무지막지한 방법으로.
어디 그뿐인가?
간에는 굵다란 정맥과 동맥, 그리고 담관이 거미줄처럼 얽혀있고 간의 중간에는 쓸개가 떡 하니 자리 잡고 있다. 종양이 간 깊은 곳에 있으면 표적을 정확히 맞추기가 힘들고, 큰 혈관이나 담낭과 붙어있으면 바늘이 자칫 이들을 찌를 수 있다. 이들을 잘못 건드려 동맥혈이나 담즙이 복강 안으로 터져 나오기라도 하면 환자는 바로 응급상태에 빠지게 된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무모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자신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내가 미쳐도 단단히 미쳤네.'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이 있었다. 비교적 쉬운 케이스를 골랐으니까.
드디어 D-day,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담당 주치의를 옆에 대기시켰다.
나영은 가운을 벗은 후 수술복으로 갈아입었다.
바늘로 찔러 들어갈 곳을 깨끗이 소독하고, 주변을 소독포로 덮고 난 후 바늘을 찌르기 전, 눈을 감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하나님 아버지, 주의 손이 제 손을 붙들어 처음부터 끝까지 인도하여 주옵소서."
기도를 마친 후 나영이 선언했다.
"자, 시작합니다."
생전 처음 찔러보는 간. 그 간을 바늘로 찔러 들어가는 동안, 나영은 자신의 간이 덜덜 떨리는 것 같았다.
조심스레 찔러 들어간 바늘은 종양이라는 과녁의 센터를 정확히 관통했다.
이제부터 나영의 묘기를 보여줄 차례.
기존의 방식은 바늘이 종양 내에 도달하면 속 바늘(stylet)을 뽑아내고 수동 흡입기를 장착한 주사기를 겉 바늘에 연결하여 흡입기의 핸들을 잡아당긴 채 아래위로 서너 번 움직인 후 바늘을 뽑아내어 주사기 속에 빨려온 내용물을 슬라이드에 도말한다. 그리고는 위의 과정을 두세 번 반복한다.
이에 반해, 나영이 개발한 방법은 바늘에 주사기와 흡입기를 부착하기 전 바늘을 손으로 잡고 아래위로 10여 회 쑤셔댄 후 흡입기를 부착하여 강하게 당기면서 뽑아내는 방식으로 한 번만 하면 된다.
나영이 주목한 것은 겉 바늘 끝의 모양이었다.
당시 사용하던 '지바니들, Chiba needle'의 끝은 날카롭게 각이 져 있는 데다 삼사십 도 정도로 비스듬히 누웠다. '이런 겉 바늘로 열 번 정도 쑤셔대면 암덩어리 살점 한 점 못 잘라내겠나? 그리고 흡입기로 잡아당기면서 서서히 빼내면 잘린 쪼가리 하나 못 빨아들이겠나? ' 이게, 나영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론과 실제는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
나영은 시술을 끝낸 후, 왼 손에 들린 겉 바늘에서 주사기를 떼내어 주사기 속에든 핏물을 대여섯 장의 슬라이드에 스메어(smear) 하게 한 후 오른손으로 속 바늘을 들고 겉 바늘구멍 속으로 서서히 바늘을 밀어 넣었다.
모두의 눈이 바늘 끝에 쏠린 순간, 바늘 끝에서 1 cm 정도 길이의 머리카락같이 가는 조직이 밀려 나왔다.
"성공이다!"
가슴 졸이며 보고 있던 모두의 입에서 기쁨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환자를 올려 보내면서 나영은 주치의에게 말했다.
"지금부터 세 시간 동안은 환자를 베개 위에 배를 대고 엎드려 꼼짝 못 하게 하고 내일 아침까지는 침대에서 못 내려오게 하소. 바이탈(vital sign)은 첫 세 시간 동안 30분마다 체크하고, 밤에는 2시간마다 체크하다가 조금이라도 이상 있으면 나한테 연락하셔. 어차피 오늘 밤에는 자네나 나나 다리 뻗고 잘 생각은 안 하는 게 좋겠지."
다음 날 아침, 환자는 아무 이상 없었다.
이제 남은 것은 병리 판독이었다.
결과가 나오기까지 불안, 초조, 기대가 뒤엉켰다.
며칠 후, 기다리던 결과가 드디어 나왔다.
Diagnosis(진단명): ’Hepatocellular carcinoma, 간세포암'
역사의 한 페이지가 기록되는 순간이었다.
세포진 검사에서 나오는 진단은 '양성이냐 악성이냐‘ 하는 것에 대한 소견만 나온다.
그것도 보통 ‘0’에서 ‘5’까지 점수를 매겨 3점 이상이면 악성종양의 가능성을 강력히 시사한다는 정도다.
이에 반해, 나영의 방법으로 나온 결과물에 대해서는 ‘(전이성이 아닌) 원발성 간암’이라는 조직학적 진단까지 똑 부러지게 나온 것이다.
이것이, 훗날 개발된 18G의 두꺼운 ‘Tssue cutting biopsy needle, 조직 절단 바늘’이 나오기 전, 다용도로 쓰이던 22G 굵기의 가는 Chiba needle로 원발성 간암을 진단한 최초의 일이다.
나영은 그의 연구 결과를 그해 10월, 초음파학회가 있은지 1주일 후에 열린 대한방사선의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발표하여 또 한 번 의사들을 놀라게 했다.
초음파의학회에 이어 방사선의학회까지, 양대 산맥을 석권한 나영은 이제 명실상부한 '떠오르는 태양'으로 등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