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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우물 May 30. 2022

환자 물 먹이는 의사

장편소설

1983년 3월, 나영은 제세대학교 부속 한백병원 진단방사선과 ‘전임강사’로 들어갔다. 

나영과 함께 입사한 사람은 나영의 졸업 동기이자, 한백병원 방사선과 트레이닝 1기 출신 여선생이었다.     

나영의 위로는 나영보다 전문의 3기 위인 채 교수와 의국 5기 선배이자 과장인 배 교수가 있었다.

그러다가, 나영이 입사한 지 2개월 만인 5월, 배 교수가 개업하러 나가는 바람에  세 사람만 남았다.     

배 교수가 병원을 그만두자 그의 방에 있던 리얼타임 초음파기는 방사선과 촬영실 내 컴파운드 스캐너 옆으로 옮겨졌다. 


나영은 이 리얼타임 초음파기를 처음 접했을 때 우습게 봤다.

레지던트 시절, 거대한 컴파운드 스캐너만 다루다가 바퀴 달린 자그마한 리얼타임 기기를 보니 마치 장난감을 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낭창낭창한 케이블을 목에 걸고 그 줄에 연결된 탐촉자를 환자 배에 갖다 대는 순간 눈앞에 펼쳐지는 실시간 영상과 화질은 나영에게 신세계를 체험하게 했다.     

"와~ 작다고 우습게 볼 게 아니네. 실시간 스캔 기능에다 이 정도의 해상력 정도면 CT 와도 충분히 경쟁할 수 있겠구나. 역시, 초음파에 인생을 걸겠다 했던 나의 선택은 탁월했어."

    

그동안 배 교수가 혼자 독점하던 리얼타임 초음파가 방 밖으로 나오자 앞으로 초음파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두고 스태프 회의가 열렸다. 나영은 레지던트 때 결심한 대로 "이제부터 나는 초음파 하나만 하겠습니다."라고 하자 나머지 두 사람은 펄쩍 뛰었다. 자신들은 지금껏 초음파에 손도 못 대봤으니 서로 돌아가며 하자 했다. 어쩌면 그들의 입장에선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앞으로 초음파뿐 아니라 모든 파트를 4개월씩 돌아가며 하자는 말에 이번에는 나영이 그만 뒤집어졌다.     

"아니, 로테이션이란 건 레지던트나 할 일이지 교수가 할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교수는 각자 자신의 전문분야를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자 분위기가 싸~ 해졌고 언성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한 교수는 정년퇴임 때까지 이 기관에만 근무한다는 보장이 있어요? 사람이 살다 보면 얼마든지 자리를 옮길 수도 있는데 그럴 때를 대비해서라도 이것저것 다 할 줄 알아야지, 한 교수처럼 한 분야만 하겠다는 사람 어디서 받아주겠어요?"


현실은 그랬다. 80년대 초라면 방사선학에서 영상의학으로 넘어가는 초창기의 일이라 영상의학 분야 중 어느 하나만 전공하는 사람은 찾기 힘든 시절이었고 각 병원 형편도 마찬가지였다.

안 그래도 영상의학 전문의가 모자라서 난리인데 초음파 하나만 할 줄 아는 사람 누가 고용하겠나?     

나영 역시 그런 사정 모르는 것 아니었지만 그에게 더 중요한 것은 본질이었다.

대학병원의 본질이 무언가? 세 가지다. 진료, 교육, 연구. 

이 중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 뺑뺑이를 돌아가면서 이것저것 다하다 보면 연구가 제대로 되겠나? 그리고 전문분야도 옳게 없는 교수가 어떻게 레지던트나 학생들에게 깊이 있는 지식을 전수해 줄 수 있겠는가?     


화가 난 나영이 받아쳤다.

"그런 생각이라면 애초에 대학교수가 될 생각을 말아야지요."      

말을 내뱉고 난 나영은 곧바로 후회했다. ‘아, 내가 너무 심한 말을 했네.’

그리고 그 한마디 말은 두고두고 마음속에 짐으로 남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세 사람은 다음과 같이 타협을 보았다. 

'일 년 동안은 세 사람이 4개월씩 돌아가면서 초음파를 하고, 그 이후부터 초음파는 한 교수가 전담한다.'      


1984년 11월, 앞서 세 사람이 합의한 대로 성 교수와 최 교수가 먼저 4개월씩 초음파를 돌고 나자 드디어 나영의 차례가 되었고 이때부터 나영은 단절 없이 초음파에만 매달릴 수 있었다.           

그때부터 나영의 머릿속은 온통 초음파로 가득 찼고 모든 사물을 초음파와 연계하여 바라보는 버릇도 생겼다.

여행 가서 경치를 감상하다가도 '저 산과 골짜기를 뱃속에 집어넣고 초음파를 하면 어떻게 보일까?' '저 분화구를 초음파로 잡으면 궤양성 위암처럼 보이겠네!' 하는 식이었다.

한 번은, 가족과 함께 독립기념관에 갔다가 건물 입구에 서 있는 조형물을 보는 순간, 복부 초음파에서 가장 이해하기 힘든 췌장 주변의 아나토미를 떠올리고는 평생토록 그 분야 강의 때마다 유용하게 써먹기도 했다.


나영이 본격적으로 초음파 연구에 뛰어들면서 그가 해결해야 할 가장 넘기 힘든 장벽은 공기였다.

음파는 몸 안에 있는 공기만 만나면 다 되돌아와 버려 그 뒤에 가려진 장기는 볼 수가 없다.     

그 이유는 음파의 물리적 특성 때문이다.

음파는 빛과 달리 매질(매개체)이 있어야 전달될 수 있고, 매질에 따라 전파 속도도 달라진다.     

음파의 반사는 음파에 대한 특성이 다른 두 매질의 경계면에서 일어나게 되고 두 매질의 음향계수(음파에 대한 매질의 특성을 수치로 나타낸 것) 차이가 크면 클수록 반사가 많이 일어난다.      

초음파를 할 때 공기가 골칫거리가 되는 이유는 공기와 인체 조직과의 음향계수 차이가 너무 크다 보니 몸속을 지나가던 음파가 공기에 부딪히는 순간 거의 다 되돌아와 버리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공기가 들어있는 위와 장은 말할 것도 없고 그 뒤에 위치하는 췌장이나 담도도 잘 안 보이고, 때로는 장과 붙어있는 담낭의 병변도 헷갈리게 만들어 있는 돌(stone) 없다 하고 없는 돌 만들어 내기도 한다.
 

'어떡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고심 끝에 다다른 나영의 결론은 다음과 같았다.

공기가 문제 된다면 공기를 피하든지 없애주면 될 것 아닌가!

답은 빤~ 한데. 문제는 방법이다. 무슨 수로?

공기를 피하는 방법은 환자의 체위를 변화시키거나 환자의 몸에 갖다 대는 탐촉자를 누르는 강도(强度)를 달리해 보니 어느 정도 효과는 있었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해결책이라 할 수도 없었다.

결국 공기를 없애거나 공기를 대체하는 방법뿐인데, 남의 뱃속에 든 공기를 무슨 수로 없앤단 말인가? 

진공청소기 같은 걸로 빨아낼 수도 없고…….     


아무리 팽이 돌리듯 머리를 굴려 봐도 별 뾰족 수가 떠오르지 않았는데, 어느 날 우연히 산부인과 초음파 예약장에 쓰여 있는 다음과 같은 주의사항 문구를 보게 되었다.

‘아침에 소변보지 말고 참고 오세요.’      

그 순간 나영은 "그래, 바로 이거야! 답 나왔네. 답 나왔어." 하고 소리 질렀다. 


산부인과 영역의 초음파 검사를 할 때 가장 문제가 되는 것도 자궁과 난소 위에 덮여있는 장이다.

그 때문에 산부인과에서 초음파를 할 때는 질 속으로 탐촉자를 집어넣어 검사한다.

그들이야 밥 먹고 하는 일이 남의 치부 들여다보는 것이라 그렇게 초음파를 하더라도 아무렇지도 않겠지만, 영상의학과 의사가 그러기에는 의사나 환자나 심적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영상의학괴에서는 소변을 참고 오게 하여, 질 속 대신 배 위에서 배 안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소변을 참으면 어떤 효과가 있을까? 

방광이 소변으로 팽창하게 되면 자궁과 난소 위를 덮고 있는 장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여 음파가 잘 통과하는 물주머니를 얹어놓는 효과가 있다.     

'배 안에 물주머니로 쓸 장기가 어디 이뿐인가?' 나영의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곧이어 아랫동네에 방광이 있다면 윗동네엔 위장이 있지 않나!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방광을 소변으로 채울 생각은 하면서 위장을 물로 채울 생각은 왜 못했을까?

물을 양껏 먹이고 환자의 왼쪽을 들게 하면 장 내에 있던 공기 중 상당량은 물과 함께 씻겨 내려가고, 나머지는 위의 왼쪽 끝으로 뜨게 되고, 그 보기 힘든 췌장과 담관 말단부 앞에는 커다란 물주머니가 떡 하니 놓이게 되니 그야말로 일타삼피라!


그때부터 초음파실 직원들의 고난이 시작되었다.

시장에 가서 한국에서 만드는 주전자 중 제일 큰 놈을 하나 사다가 출근하자마자 보리차를 끓여대야 했고, 각 촬영실마다 작은 주전자에 보리차를 대령해 놓고 물이 떨어질 때마다 새로 끓여야 했다.

나영이 맹물 대신 끓인 보리차를 선택한 이유는 일단 물을 끓이면 물속에 있는 기포가 증발하여 초음파를 보는데 보다 용이하고, 맹물보다는 보리차가 더 마시기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영이 물을 먹여보니 물의 양은 600~900cc면 적당했고, 배불뚝이 환자는 1200 cc까지도 먹였다.


물의 효과는 엄청났다.

아무것도 안 보이던 데서도 뭔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도 그냥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림을 그린 듯 깨끗이 나타났다. 

마치 죽은 자가 살아난 것 같았다. 그래서 나영은 물 먹인 효과를 ‘강시효과(殭屍效果)’라 불렀다.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포기한 것을 가능한 것으로 만든 나영은 그의 연구결과를 그해 10월에 열린 대한초음파의학회 학술대회에서 발표했다.

* 논문 제목:    -상복부 초음파 검사 시 물 마시기 효과의 중요성에 관하여-

나영의 논문은 학회 참가자들로부터 극찬을 받으며 그해 최고의 화제작이 되었고, 그는 ‘물 먹이는 의사’란 별명과 함께 혜성처럼 나타난 샛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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