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 가는 거야~~~~~
11월부터 매주 토요일에 출발해 2박 3일 동안 시골에 가서 집을 짓기 시작했다.
물론 자금이 아주 넉넉하다면야 거창하게 사람들을 많~~~ 이 채용해서 넓은 집을 짓겠지만 집 사정에 맞춰 우리 세 식구의 ㅋ 노가다 인력으로 한번 도전해 보기로 했다.
요즘엔 컨테이너 하우스가 꽤 멋지게 나와서 약 5만 불 정도면 깨끗하고 예쁜 12~15m를 살 수 있기 때문에 여기저기 많이 알아보고 중고 판매점도 가보고 했지만 썩 내키지 않았다. 또 컨테이너 비용뿐만 아니라 땅 개간부터 거리에 따른 배송도 만만치 않았고 기타 들어가는 비용도 상당했다.
시드니와 시골 두 집 살림으로 들어가는 생활비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컨테이너에 올인할 수는 없어 1년이 걸리든 3년이 걸리든 천천히 한번 즐기는 마음으로 그야말로 무한도전으로~~~ 집을 지어보기로 했다.
우리는 정말 집짓기 관련 아무 경험도 지식도 없었지만 유튜브 선생님에 따라 하나씩 준비해 갔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가 딱 맞는 표현이다.
먼저 철물 체인점인 '버닝스 웨어하우스'에서 나무 자재와 지붕을 만들 강판 등 기본적인 자재 4천 달러가량을 구매해서 딜리버리를 요청했다.
유튜브 선생님의 가르침에 따라 나름 물 수평도 맞추며 땅을 고르고 디딤돌도 넣고 시멘트 작업도 하며 마루를 깔기 시작했다
열심히 수평을 맞췄지만 사실 정확히 맞진 않았다. ㅎㅎ 처음엔 딱 맞추려 노력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우리가 딱 맞추면 프로지... 안 맞는 게 당연하다 문제가 생기면 해결할 방법을 찾자"는 방향으로 마음을 바꿨다.
처음엔 3m x 3m x 높이 2m의 쉐드를 기초로 집을 지으려고 쉐드를 마루 위에 놓았는데 천장이 낮다 보니 답답한 마음이 들어 또다시 뜯어내는 수고로움도 마다하지 않았다. 시멘트와 실리콘으로 바닥을 단단하게 고정했었는데 이거 떼느라고 또 한참을 고생했다. 반드시 지켜야 되는 시간도 스타일도 없기 때문에 우리 세 가족이 모두 마음에 들도록 조금 쉬어가고 돌아가더라도 천천히 만들어 갔다.
우리는 11월부터 집을 짓기 시작했다. 호주는 한국과 계절이 반대로 한여름 퇴양 볕에서 작업을 진행했다.
땀으로 목욕을 하며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가면서 조금씩 집은 그 형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가장 큰 고민거리는 집의 골격을 만드는 일이었다.
나무를 하나씩 세워서 골격을 만들기에는 작업할 수 있는 사다리가 달랑 한 개 있는 상황에서 너무 어려울 것 같았다. 한참을 고민 끝에 우리는 한 면씩 골격을 만들어 놓고 들어서 세우기로 했다.
사람을 부를까 기계를 대여할까 고민하다가 한번 해보고 안되면 도움을 청하기로 하고 도전해 보기로 했다.
우리는 생각보다 힘이 셌다.
한 면씩 만든 골격을 세우고 나무로 지지대를 만들면서 4면이 완성됐다.
라떼는 말이야 ~~ <무한도전>이 가장 인기 있는 국민 방송이었다
예능프로그램으로 그 어떤 방송보다 많은 사랑을 받았던 <무한도전>은 '무모한 도전'이란 이름으로 시작됐다.
전철 vs 인간 100m 달리기, 탈수기 vs 인간 빨래 짜기, 황소 vs 인간 줄다리기 등 생고생 담을 담았다. 처음 시청자들의 반응은 비아냥의 가까웠지만 그들의 도전에는 재미를 넘어서 때론 실패로 좌절하기도 하고, 또 승리의 기쁨이 찾아오기도 하는 그 과정 속에서 진한 감동을 주며 2000년대 가장 성공한 예능 프로그램이 됐다.
시골에 땅을 살 때도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시드니에서 3시간 반은 너무 멀다, 제대로 알아보는 거냐, 땅의 가치는 있냐'
집을 짓겠다고 했을 때도 역시나 '말이 되는 소리냐, 뭘 알고 하려고 하는 거냐 등' 수 없이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인생은 도전의 연속이다.
우리 세 식구의 도전은 누가 봐도 '무모한 도전' 같아 보였다. 절대 올라가지 않을 것 같았던 네 면이 섰을 때 우리의 도전은 <무한도전>이 될 것이라 확신했다.
당시 가장 좋아했던 노홍철의 말처럼 "좋아 가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