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 · 적응에서 선택으로
밴쿠버 미용실에 오면
거울 속의 나는
아직 사스카툰에 머물러 있다.
길게 기른 머리
묶으면 편하고
핀 하나 꽂으면 그만인 삶.
나는 머리를 실용으로 산다.
편해서 좋다.
바람은 세고, 겨울은 길다.
그래서 결국
“묶으면 되지.”
실용은 생활의 철학이 된다.
그런데 어디론가 간다 하면
가위가 먼저 들어온다.
싹둑.
짧은 단발.
남편이 웃으며 말했다.
“서울내기 됐네.”
서울내기라니.
방금 전까지
반머리에 핀 꽂고 다니던 사람인데.
머리는 참 솔직하다.
몸보다 먼저
방향을 눈치챈다.
조금 길면 핀으로 타협하고,
더 길면 묶어서 정리한다.
완전 시골 할머니로 살다가
밴쿠버에 오면 미용실에 들른다.
그러면 시골 할머니에서
시골 아줌마 정도는 된다.
이번에는 서울내기까지 승급했다.
출세다.
돌이켜 보니
내가 산 시간도 이랬다.
적응은 생각보다 빠르고,
정리는 늘 조금 늦다.
살다 보면
환경에 맞게 묶여 간다.
편하다는 이유로
그 모양에 익숙해진다.
그러다 변화가 오면
비로소 알게 된다.
아, 묶여 있었구나.
그때 다시 고쳐 맨다.
적응에서 선택으로.
가위는
과거를 자르는 도구가 아니다.
다음 장면을 또렷하게 만드는 도구다.
나는
머리카락 몇 센티를 내려놓고
조금 가벼워졌다.
싹둑,
하는 소리 뒤에 남은 것은
단발이 아니라
결심이었다.
나는 이제,
적응이 아니라 선택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