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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최대한 간단하게 정리해 드립니다(23).

제2차 세계 대전

열심히 달리고 달려 제2차 세계 대전까지 왔네요. 2차 대전은 지금까지 인류가 벌였던 가장 큰 전쟁입니다. 이보다 더 큰 규모의 전쟁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으니 지금까지는 가장 비극적인 전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2차 대전은 연구도 워낙 많이 되어 있고, 사람들의 관심도 지대합니다. 게다가 워낙에 규모가 크다 보니 전 세계에 끼친 영향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관련 연구 성가도 어마어마합니다. 따라서 이 짧은 글에서 그 연구 성과를 모두 반영하여 글을 쓰기란 무리입니다. 대신에 이 글에서는 주요 전장과 흐름 위주로 전쟁을 정리해 볼까 합니다. 세부적인 사항을 원하시면, 브런치에도 좋은 글이 많으니 찾아보시면 유익할 듯합니다.


제2차 세계 대전은 히틀러의 야욕에서 시작되었다고 설명합니다. 이는 어느 정도까지만 맞는 설명입니다. 물론 히틀러가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킨 장본인은 맞지만, 이미 세계는 전쟁의 기운이 감돌고 있었습니다. 추축국의 등장에 이어 전 세계는 공산주의 또는 사회주의와의 투쟁으로 몸살을 겪고 있었습니다. 에스파냐 내전이 그렇습니다. 1936년에 사회주의 계열의 정당이 집권하면서 에스파냐의 보수파는 국민파를 결성하여 내전을 시작합니다. 내전 초기에는 국민파와 공화파(사회주의 계열의 집권당)가 비등비등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탈리아와 독일이 국민파를 지원하면서부터 전세는 점점 국민파에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소련이 이를 지원하긴 했지만, 자체 분열과 이념 갈등으로 인해 결국 국민파에게 에스파냐를 내주게 됩니다.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히틀러를 중심으로 한 독일의 나치 정권은 자국 발전을 위해 끊임없이 팽창주의 정책을 추구했습니다. 오스트리아를 강제로 합병하고 체코의 수데텐 지역에 독일인들이 많이 거주한다는 이유로 체코 전체를 독일 영토로 편입해 버렸습니다. 점점 확대되는 독일의 영토 정책에 당시 영국과 프랑스는 회유 전략으로 갑니다. 어떻게든 전쟁을 막아야 했었기에 이들은 독일의 편을 슬그머니 들어주면서 독일의 체코 점령을 묵인해 주었습니다. 이런 영국과 프랑스의 행위에 히틀러는 이제 폴란드를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에는 갈라져있던 독일 영토 사이에 있는 폴란드 영토를 요구하기 시작한 것이죠.


전쟁의 고조는 유럽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아시아 전선은 이미 1937년부터 전쟁에 돌입했습니다. 일본은 덩치만 크고 힘이 약한 중국을 본격적으로 침략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당시 일본 군부는 더 이상 정치권의 통제에 있지 않았습니다. 중일 전쟁 발발 과정을 보면 그렇습니다. 전쟁의 시작점이었던 루거우차오 사건을 보면 더욱 확실해집니다. 중국군과의 작은 마찰을 핑계로 일본군은 전면 침공을 단행하였고 일본 정부에 전쟁을 승인해 달라고 합니다. 일본 정부도 이를 승인했고요. 중국 전면을 침공함과 동시에 일본은 난징을 점령하고 대학살을 저지릅니다. 1달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중국 추산 30만 명의 민간인이 학살을 당하면서 중국은 결사항전을 부르짖습니다. 2차 대전을 유럽 전선에서 시작되었다고 하지만 사실 그 전쟁은 아시아에서 미리 시작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폴란드 침공을 앞두고 히틀러는 고심에 빠집니다. 1차 대전처럼 폴란드를 침공하는 순간 소련과 프랑스, 영국을 적으로 돌리면 양면에서 공격받게 되는 상황이었죠. 히틀러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기상천외하면서도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리는 외교적 해결책을 마련합니다. 바로 독일과 소련의 불가침 조약이었습니다. 2차 대전 직전에 체결된 독일과 소련의 불가침 조약은 전 세계의 사회주의자들에게 큰 충격을 선사합니다. 대놓고 반공을 부르짖는 나치 정권과 소련의 불가침 조약은 정말 아무도 생각지 못한 사건이었으니까요.


1939년 9월 1일, 독일은 폴란드를 전면 침공하면서 제2차 세계 대전은 공식적으로 시작됩니다. 독일의 기갑전력과 항공전력의 협공(번개와 같이 몰아친다고 하여 전격전)에 폴란드 군은 여지없이 무너집니다. 심지어 후방에서 소련군도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폴란드는 저항다운 저항도 해보지 못하고 무너지게 됩니다. 이런 행동에 영국과 프랑스는 바로 독일에 선전 포고를 하지만, 독일의 침략을 방어하지는 못했습니다. 프랑스와 영국 연합군은 네덜란드와 벨기에 그리고 독일과의 국경지대에 걸쳐 방어전선을 구축합니다. 특히 1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구축해 놓았던 마지노 방어선에 크게 기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독일은 이를 알고 아르덴 숲을 돌파하여 국경지대에 집결해 있던 프랑스와 영국 동맹군을 포위합니다. 그리고 덩케르크에 몰아넣어서 궤멸직전까지 몰아붙이죠. 결국 프랑스와 영국은 패배를 인정하고 덩케르크에서 철수하고 무방비 상태가 된 프랑스는 독일에 항복하게 됩니다. 1940년의 일이었습니다.


1940년에서 1941년까지는 추축국의 해였습니다. 프랑스는 물론 덴마크, 노르웨이 등은 모두 독일의 손에 떨어집니다. 심지어 동유럽도 안전하지 않았습니다. 이탈리아 군과 독일군의 연합으로 그리스를 포함한 동유럽 전체가 추축군의 군홧발에 짓밟힙니다. 크레타 섬도 독일군이 점령하면서 지중해의 제해권도 장악하게 됩니다. 게다가 이집트의 영국군을 격파하고 서아시아로 넘어가는 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해 독일과 이탈리아 연합군은 이집트를 향해 연전연승을 거두며 진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동유럽에서 소련을 제외한 모든 영토는 독일의 손아귀에 들어갔습니다. 일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반도로 군대를 보내면서 일본 역시 동남아시아에 영역을 확대하고 있었습니다. 프랑스는 본국 정부가 사라진 마당에 저항을 할 순 없었고 영국은 독일 공군의 맹렬한 폭격과 압박을 견디느라 아시아에서 제대로 된 저항을 하기 어려웠습니다.


1941년 히틀러는 전면적인 소련 침공을 단행합니다. 영국을 점령하지 못한 상태에서 소련이 갑자기 독일을 기습한다면 곤란해질 것이라는 예상과 소련의 군사력을 경시한 덕택에 히틀러는 소련 침공이라는 오판을 하게 됩니다. 처음 1년 동안은 독일군의 진격은 엄청났습니다. 소련 전력의 절반 이상이 파괴되었고 수도인 모스크바와 주요 도시인 레닌그라드(상트페테르부르크, 페트로그라드)는 독일군의 기나긴 포위 공격을 견뎌야 했습니다. 게다가 12월에는 일본이 미국의 태평양 주요 기지인 하와이의 진주만을 기습공격하고 동남아시아를 석권하면서 추축국의 승리는 머지않아 보였습니다.


그러나 연합국은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중국 전선에서 당시 중화민국의 장제스 정권은 결사항전을 부르짖으며, 일본군을 내지로 유인하였고 일본군은 넓어진 전선으로 인해 많은 병력을 투입하였지만 전과를 올리지 못하는 말 그대로 늪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소련 전선에서 히틀러는 모스크바에서 생각보다 빨리 찾아온 겨울, 그리고 기나긴 보급선이 문제와 스탈린그라드 공방전에서 무리한 포위공격을 고집하다가 결국 많은 부대가 포로로 잡히는 패배를 겪으면서 점차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은 모든 역량을 총동원하여 일본을 물리치려고 하였습니다. 미국의 압도적인 경제력과 생산량은 연합국에게 큰 도움이 되었고 '민주주의의 무기로'라는 별명답게 미국은 소련과 영국 그리고 중국에 든든한 창고 역할을 했습니다. 그 결과로 1943년 이후의 전황은 추축국이 밀리고 연합국이 거점을 다시 하나하나 점령하는 형태로 변경되었습니다.


이탈리아는 1943년에 진작 항복했습니다. 남은 것은 독일과 일본이었고 독일의 패배는 시간문제였습니다. 그러나 소련도 커다란 희생을 치렀고 이는 독일을 양쪽에서 압박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낳았습니다. 이것이 1944년 지상 최대의 작전이라 불리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배경입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후, 독일은 그렇게나 싫어하던 양면 공격에 노출되게 되었고 1년이 안되어 항복하게 됩니다. 히틀러는 결국 자살을 택했고, 뒷수습을 위해 구성된 정부가 소련과 미국에 항복함으로써 유럽전선은 평화를 맞이합니다. 반면 태평양 전선은 바다라는 특징으로 인해 지지부진했습니다. 특히 1943년 이후 일본이 옥쇄라는 생명을 담보로 한 버티기 작전으로 들어가면서 연합군의 희생은 점점 커져만 갔습니다. 심지어 일본이 조직한 자살 특공대인, 카미카제의 공격은 연합국의 사기를 저하시키는 주요 요인이었습니다.


결국 1945년 미국은 독일의 항복으로 인해 소련과 함께 연합하기로 함과 동시에 일본에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무기를 투입합니다. 바로 원자폭탄입니다. 두 차례의 원자폭탄과 소련의 일본 선전포고와 참전은 결국 일본이 더 이상 협상을 주도할 자격이 없음을 알려주었습니다. 결국 8월 15일 일본은 무조건 항복을 요구한 포츠담 선언을 수락한다는 말과 함께 연합국에 항복을 합니다. 6년간의 비극적인 전쟁이 끝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제2차세계대전 지도.png 2차 대전 당시 추축국의 최대 점령 지역(검은색은 추축국, 파란색은 연합국, 빨간색은 소련)


전쟁의 흐름은 이 정도지만, 2차 세계 대전이 주는 가장 큰 의미는 인간성의 상실이었습니다.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적국의 민간인을 죽이는 것은 평범한 일상이 되었습니다. 폴란드에서의 카틴 숲 학살, 난징 대학살, 소련 점령 지역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 학살은 연합국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도쿄 대공습과 드레스덴 대공습, 베를린을 점령하면서 소련군이 가했던 독일 여성들의 인권 유린은 이전까지 전쟁에서 보기 어려웠을 정도로 대규모로 잔인하게 이루어졌습니다. 홀로코스트라 불리는 유대인 대학살은 심지어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사건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2차 세계 대전 이후 인간성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게 되었고 이는 한나 아렌트가 말했던 악의 평범성이라는 말을 만들어내게 됩니다. 아마 다시 전쟁이 벌어진다면, 이런 일들이 더 많이 벌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듭니다.


이로써 근대사는 부분은 끝입니다. 1945년부터는 현대사네요. 다음 글에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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