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면 왼손을 들라고 해서 들었더니 원래 좀 아파요라고 하시네?
치아가 좀 누렇기는 해도 건치였다.
태어나서 초중고를 다 졸업할 때까지 치과를 단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사탕이나 과자같이 단 군것질을 딱히 좋아하지 않는 것도 있고 어렸을 때부터 이빨 썩으면 돈 많이 들어간다고 세뇌에 가까운 양치교육을 받아서 세수를 건너뛸지언정 양치질은 무슨 일이 있어도 빼먹지 않았다. 나와는 반대로 밥은 안 먹어도 군것질을 하던 동생은 양치질을 해도 하는 둥 마는 둥 빼먹고 안 할 때도 많다 보니 툭하면 이가 썩어서 치과로 끌려가 치료받고 한참 혼이 나곤 했다. 40년을 훌쩍 넘는 시간 동안 충치 한번 나지 않았던 정성으로 머리카락도 관리했으면 지금처럼 빈약한 머리숱을 가지지 않았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스무 살이 조금 지났을 무렵 사랑니가 생기고 참고 참다가 처음으로 치과에 갔다. 엑스레이 사진 속에서 양쪽 어금니 밑으로 비스듬하게 자리 잡고 자라난 사랑니는 치과의사의 도전정신에 불을 지핀 듯했다. 한 번에 하나씩 시술을 해야 하지만 비용이 걱정되면 조금 아프더라도 한 번에 둘 다 처리해 보자는 의사의 말에 겁도 없이 흔쾌히 수락했다. 입속에 마취를 하고 시술이 시작됐는데 마취가 충분히 되지 않았던 듯했다. 잇몸을 째고 사랑니를 조각내서 끄집어내는 동안 정신이 나갈 정도로 아팠다. 너무 아프면 왼팔을 들으라고 해서 몇 번을 들었는데 '원래 마취돼도 좀 아파요'라고 말하면서 시술을 멈추지 않았다. 내가 만약 일본군에게 잡힌 독립군이었다면, 민주화 운동을 하다 남영동에 끌려온 민주 투사였다면, 이 정도 고통이라면 바로 변절했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시술이 끝나고 나서야 마취약이 퍼져 고통이 사그라들었지만 집으로 돌아와 마취가 풀렸을 때 기절할 것 같은 고통에 주먹으로 벽을 치며 울었다. 내 통곡소리에 놀라 진통제를 챙겨줬던 동생이 몇 년 후 이야기 하기를 평생 본 형의 모습 중 가장 불쌍한 장면이었다고 한다.
사랑니 사건 이후로는 다시는 치과에 가지 않겠다 다짐하며 더더욱 양치질에 박차를 가했다. 아무리 피곤해도, 술에 취해 잠이 든다 해도 양치질은 잊지 않았다. 친구들과 방을 잡고 술을 먹다 필름이 끊겨도 좀비처럼 일어나 양치를 하고 쓰러졌다는 목격담까지 있을 정도였다. 그렇게 서른 중반까지 술담배에 치아 색이 누렇게 뜨기는 했어도 한 번도 아프지 않았다. 반대로 쏭은 치아 관리를 소홀히 해서 탈이 많았다. 결혼 전까지는 몰랐다가 결혼 후 여기저기 썩어서 탈이 나버린 치아 치료는 빠듯했던 살림살이에 어퍼컷을 날리곤 했다. 그런 와중에도 양치를 게을리하는 모습을 보고 장인어른께 농담으로 반품 요청을 했지만 이미 유효기한이 지나 반품 불가라는 답을 진지한 얼굴로 대답을 하셔서 당황했던 기억이다.
엄마를 닮아 군것질을 좋아하는 호은도 치과의 단골손님이다. 서울에서 살던 시기에 처음 이가 썩었을 때 갔던 어린이 치과는 정말 대충격이었다. 병원 전체가 키즈카페 같은 분위기였고 치과 의자 위 천정에서는 뽀로로가 나오고 있었다. 귀엽고 아기자기한 분위기와는 다르게 호은의 입에는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하는 기구가 있었고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벨트를 채우고 난 후 치료 내내 간호사가 호은의 어깨를 누르고 있었다. 아이가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지르고 울부짖어도 다물지 못하는 입안을 쑤시며 한 번도 멈추지 않았던 치료를 끝낸 후 집으로 온 호은은 며칠을 앓아누웠다. 제주에 와서 갔던 몇 군데 치과에서도 입구에서부터 경기를 일으키는 탓에 고생을 많이 했다. 그렇게 헤매다 지금까지 가고 있는 치과 선생님을 만나 이제는 스스로 치과 의자에 앉아서 '오늘은 빨리 끝내주세요'라며 농담 따먹기를 하는 호은의 모습에 감탄하곤 한다.
호은의 치아 검진을 하다가 문득 의사 선생님이 '아버님도 정기 검진 하세요?'라고 물어보셨다. 당연히 안 한다고 했더니 한번 의자에 앉아 보라고 해서 앉았다. 내 입안을 본 선생님이 이건 50대 중반의 치아라 하며 일단 스케일링부터 하라고 혼을 내셨다. 그렇게 4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스케일링을 했는데 '제가 여태껏 했던 스케일링 중 가장 보람 있는 일이었어요'라는 담당 치위생사님의 크게 혼내는 듯한 감탄을 들었다. 그 이후로 호은의 정기 검진날에 맞춰 나도 치아 관리를 받고 있다. 검진을 받을 때마다 그동안 관리가 안돼서 잇몸이 약해졌다고 조심해야 한다는 말을 듣곤 하지만 이가 썩거나 그런 건 아니어서 듣는 둥 마는 둥 양치질만 잘하면 되겠지 라는 생각으로 넘어갔다. 지난달 받았던 검진에서 가장 안쪽 어금니가 흔들려 곧 빠질 것 같으니 각오하라는 말을 들었지만 역시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지난주부터 점점 흔들리는 이를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 열흘을 참았던 흔들리는 어금니의 불쾌함을 도저히 이기지 못하고 치과로 향했다. 핀셋으로 어금니를 흔들어 보며 살펴본 선생님이 때가 되었다며 마취주사를 놓았다. 엑스레이 사진을 보며 임플란트를 당장 안 해도 되지만 나중에라도 늦지 않게 하라는 설명을 끝으로 발치가 시작되었다. 스무 살 때처럼 잇몸을 자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마취가 돼도 아프긴 합니다'라는 주의는 똑같아서 소름이 돋았다. 이를 뽑는데 3초도 안 걸린 듯하고 '윽!' 하는 아픔이 있기는 했지만 마취가 충분히 되어있어서 괜찮았다. 이가 있던 자리에 약솜을 물고 나와 수납을 하면서 말해주길 마취가 풀리면 좀 많이 아플 것이라고 하는데 이 글을 쓰는 지금 슬슬 마취가 풀리고 아릿한 고통이 몰려오고 있어서 과거의 아픈 기억이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고통에 못 이겨 털어놓을 비밀이 없음을 감사하게 여겨야 하겠다.
치과는 정말 가기 싫다.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