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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이모 Sep 08. 2022

시를 쓰게 만드는 시


아침 일찍 기차를 탔다. 어떤 작가는 글이 안 풀릴 때 일부러 서울-부산행 기차표를 끊는다고 들었다. 왕복 기차값이 만만치 않으니 오고 가는 기차 안에서 글을 쓰겠다는 심산이다. 기차는 글쓰기에 좋은 환경이다. 적당한 소음과 적당한 멍 때리기와 적당한 흔들림은 글쓰기를 부추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시를 조금 끄적여보았다.


이문재 시인은 '시를 쓰게 만드는 시를 쓰는 시인'이 좋은 시인이라 말하며 시 쓰기를 권한다. 그의 시가 나로 하여금 시를 쓰게 만든다는 것을 시인은 알까.  얼마나 더 하게 아파야 그리움이 닿을까, 시의 말미 농담 던지듯 슬쩍 내 보이는 그의 심연을 헤아려보며... 나는 외로운 사람도 강한 사람도 아닌, 그리운 사람이구나 한다.


자작시다. 부끄럽다.



어떤 이름



드라마를 보는데

그리운 이름이 성별이 바뀌어있다

이름이 바뀌어도 얼굴이 바뀌어도 성별이 바뀌어도

그 사람은 그 사람이니 그 사람을

계속 그리워하면 되지 않겠나 생각하다가


작가한테 전화해서 따져 물었다

그렇게 성별을 바꿀 거면

내 마음도 바꿔달라고

이 그리움도 데려가라고


어떤 이름은

보는 것만으로,

듣는 것만으로

머금는 것만으로


눈물 연기하는 배우


후드득

후다닥

그대에게

그때에게


밀쳐낸 만큼

외면한 만큼

그리운만큼

큰 울음소리로 바다같이 우는 이름




_

그리운 이름 하나씩은 품고 살고 있을게다. 대한민국에 사는 이상, 그 이름 만나는 순간이 있을게다. 시에서는 작가에게 전화해서 따져 물었다고 했지만 현실의 소심한 나는, 채널을 슬며시 돌린다. 오늘도 그리움의 세포는 열일중. 세포 하나하나에 스며들어있으니  언제 어느 순간 어떤 세포가 그리움으로 불쑥 얼굴을 내밀지 알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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