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기차를 탔다. 어떤 작가는 글이 안 풀릴 때 일부러 서울-부산행 기차표를 끊는다고 들었다. 왕복 기차값이 만만치 않으니 오고 가는 기차 안에서 글을 쓰겠다는 심산이다. 기차는 글쓰기에 좋은 환경이다. 적당한 소음과 적당한 멍 때리기와 적당한 흔들림은 글쓰기를 부추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시를 조금 끄적여보았다.
이문재 시인은 '시를 쓰게 만드는 시를 쓰는 시인'이 좋은 시인이라 말하며 시 쓰기를 권한다. 그의 시가 나로 하여금 시를 쓰게 만든다는 것을 시인은 알까. 얼마나 더 진하게 아파야 그리움이 닿을까, 시의 말미 농담 던지듯 슬쩍 내 보이는 그의 심연을 헤아려보며... 나는 외로운 사람도 강한 사람도 아닌, 그리운 사람이구나 한다.
자작시다. 부끄럽다.
어떤 이름
드라마를 보는데
그리운 이름이 성별이 바뀌어있다
이름이 바뀌어도 얼굴이 바뀌어도 성별이 바뀌어도
그 사람은 그 사람이니 그 사람을
계속 그리워하면 되지 않겠나 생각하다가
작가한테 전화해서 따져 물었다
그렇게 성별을 바꿀 거면
내 마음도 바꿔달라고
이 그리움도 데려가라고
어떤 이름은
보는 것만으로,
듣는 것만으로
머금는 것만으로
눈물 연기하는 배우
후드득
후다닥
그대에게
그때에게
밀쳐낸 만큼
외면한 만큼
그리운만큼
큰 울음소리로 바다같이 우는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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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이름 하나씩은 품고 살고 있을게다.대한민국에 사는 이상, 그 이름 만나는 순간이 있을게다.시에서는 작가에게 전화해서 따져 물었다고 했지만현실의 소심한 나는, 채널을 슬며시 돌린다. 오늘도 그리움의 세포는 열일중. 세포 하나하나에 스며들어있으니 언제 어느 순간 어떤 세포가 그리움으로 불쑥 얼굴을 내밀지 알 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