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도복숭아가 문제였다. 늦여름이었다. 부모님 댁에 가기 전, 모임에서 천도복숭아를 먹었는데 그게 그렇게 맛있는 거다. 집에 가는 길에 사 들고 갔다. 요즘 천도복숭아 정말 맛있다고 말하면서 꺼내는데, 어르신들 표정이 영 별로다. 맛있는 거 사 들고 갔는데 반응이 시원찮으니 마음이 상해서 애꿎은 천도복숭아만 째려보았다. 그런 나를 보고 엄마가 말씀하셨다.
"나이 들면 이가 안 좋아서 천도복숭아 먹고 싶어도 못 먹어. 딱딱해서..."
" 헐.......'
그러면서 어른들한테 뭐가 필요한지 관심을 좀 가져야 되지 않겠냐고 하신다. '아니 그럼 갈아먹으면 되잖아!' 무안하고 당황해서 이런저런 말을 둘러대는데.. 마음이... 마음이 그랬다. '그랬다'는 게 어떤 건지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미안한데 짜증 나는 고약한 마음 정도 되겠다.
부모님에 대한 나의 사랑이 그 정도였던 거다. 나에게 좋은 것을 상대에게 주고 싶은 마음. 그 마음은 훌륭하지만 그보다는 좀 더 섬세함이 더해졌어야 했다. 내 마음이 진심으로 닿으려면 상대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무엇이 필요치 않은지를 살피는 마음이 선행되어야 한다. 내가 좋으니까 너도 좋지, 는 운 좋으면 괜찮지만 운 나쁘면 대참사가 될 수도 있다. '네가 나한테 관심이나 있어?'같은 말을 듣고 '전쟁'이 시작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아는 어르신의 말씀이 문득 떠올랐다. 얼마 전, 손주가 과일 한 박스를 사 왔는데 먹느라고 혼났다고 하셨다. 왜 '혼났다'라고 말씀하시지? 그 말을 듣고 의아했다. 왜 혼이 나셨을까. 젊은이가 설마 노인들 혼내려고 과일 한 박스를 사 드리지는 않았을 껀데. 이제는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7-80대 어르신들은 생각보다 너무 조금 드신다. 이도 안 좋지만 소화가 잘 안 된다고 하신다. 아침에는 사과 한 알을 두 분이 나누어 먹는데 그조차 남는다고 하신다. 그렇게 좋아하던 과일이었건만! 그러니 과일이 한 박스나 들어오면 이걸 언제 다 먹나 싶은 거다. 옆집에 조금, 경비 아저씨에게 조금, 집에 놀러 온 손주들에게 싸들려 보내고는 그제야 마음이 놓이는 것이다. 어르신들을 혼내고 싶지 않다면, 맛있고 부드러운 것을 조금씩 자주 사 드려야겠구나.. 이렇게 또 하나 알아간다.
노인들은 쉽게 행복해지고 쉽게 서운해한다. 쉽다는 것이 1+1=2와 같이 Easy(쉬운)의 의미는 아니다. Fragile(깨어지기 쉬운)의 의미이다. Fragile은 '깨어지기 쉬운'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섬세한'이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 사전에는 이렇게 표시되어있다. '섬세한(흔히 아름다움을 동반함)'. 어쩌다 보니 그들은 작고 연약하고 깨어지기 쉬운 아름다운 존재가 되어버렸다. 우리가 작고 작았을 때, 그들이 우리에게 해 주었던 것처럼 이제는 우리가 그들에게 섬세하게 귀 기울이고 나지막이 노래 불러주어야 할 때이다. 그럴 때, 그들이 방긋 웃을 것이다. 금세 행복해질 것이다.
오가다 보니 요즘은 홍옥이 제철이다. 천도복숭아를 닮아서인지 홍옥마저 얄밉게 느껴진다. 나도 쉬운 사람이다. 쉽게 미안하고 쉽게 속상하고 쉽게 후회하고. '시인은 자두를 보고도 감동한다'는 앙드레 지드의 말이 떠오른다. 에잇 자두를 살 껄. 당분간 천도복숭아는 안 먹을 거 같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