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문만 열린 사람

by 사과이모


다정한 사람이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의 안부를 챙기는 사람. 나도 잊고 있었던, 지나치듯 말했던 고민을 기억해주는 사람. 따뜻함의 빛깔이 진하고 깊은 사람.


그 따뜻한 이가, 좀처럼 자신의 이야기는 내어주지 않는다. 조심스럽고 애쓰는 모습이 안쓰럽다. 다른 한쪽 문도 열어보라고, 슬쩍 안부를 물어도 자신은 '괜찮다'라고 한다. 정말 괜찮은 사람은 괜찮다고 말하지 않는다. 마음의 문을 열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지...


그를 보면 앞문만 열어둔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는 집을 고를 때 앞 뒤로 맞바람 치는 '통풍'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래야 집에 바람이 오가며 생기가 돈다고. 순환이 되지 않으면 어느 순간 그 집은 빛을 잃는다고. 사람의 마음도 그러하지 않을까.


우리가 사는 이 세계는 끊임없는 순환으로 이루어져 있다. 동전의 양면처럼 음과 양, 빛과 어둠 등이 한 몸으로 드러나며 무한대로 생성과 소멸을 반복한다. 소우주라고 불리는 우리의 몸 역시 완벽한 순환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살아있음의 대표인 '숨쉬기'만 보아도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면서 비워지고 채워진다. 자연의 이치가 그럴진대, 사람의 마음이 다를 리 없다.


사람의 마음에 차곡차곡 쌓여있는 '생각과 감정' 역시 적당한 시기에 배출되어야 한다. 우리 몸의 노폐물이 대소변과 땀을 통해 비워지듯이. 비워짐이 늦어지는 만큼 마음 안에 고여있는 것들은 그의 삶을 어지럽게 할 것이다. 그 모습이 안타까워서 내 마음이 조급했던 것일 게다. 어쩌면 그에게서 내 모습을 보았기에 안쓰러웠는지도.


어떤 이야기든 해보라고, 서둘러 달려 나가는 내 마음의 고삐를 잡는다. 더 빨리 준다고, 더 많이 준다고 '사랑'은 아니다. 그 사람이 필요한 때, 그 사람이 들려줄 때, 손을 내밀고 귀를 내어주면 되는 거다. 오래도록 곁에 뭉근하게 있어주면 되는 거다. '마음을 터놓아도 안심되는 존재'가 꼭 내가 아니어도 좋다. 웅크리고 있던 그의 마음이 '살만한 세상이구나, 따뜻한 사람이 많구나, 나를 드러낸다고 또 상처받지는 않겠구나'라고 느낄 수 있도록 내 안의 빛을 비춰주며 그저 있어주는 것. 그것이 지금의 그를 사랑하는 방법일 게다.


앞 뒤 문이 활짝 열린 사람으로 살고 싶다. 어떤 이야기든 분별하지 않고 잘 들어주는 건강한 귀를 지닌 사람, 기쁜 일이 있을 때 빠짐없이 기쁘다 말하고, 슬플 때 막힘없이 슬픔을 쏟아내는 사람. 그리고는 비워진 채로 또 가득하게 채우러 세상으로 나아가는 사람. 모두에게 앞 뒤 문을 활짝 열 수 없다면, 단 한 사람, 당신에게는 그런 나이고 싶다.






keyword
이전 18화사랑을 닮은 자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