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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이모 Nov 10. 2022

바다를 찍으려다 사랑을 찍다


바다를 찍으려는데 사진 앵글 속으로 연인이 걸어 들어왔다. 걸어 오는 것까지는 괜찮았는데 갑자기 키스를 다. 두 사람의 1,021번째 키스였을까? 바다를 찍으려다 사랑을 찍어버렸다.


이렇게 아름다운 사진을 저 두 사람에게 전해야 할까, 나 혼자 간직해야 할까. 이것 참 난감하다. 이걸 전한다면, 저들에게는 인생 사진이 될 것만 같은데... 용기를 내볼까? 저기요.. 제가 어쩌다 보니 댁들의 인생 사진을 찍었는데 말이지요...로 말을 걸면 어떤 표정일까? 아니지 아니지.. 이건 약간 도촬 같은 느낌도 들잖아... 전하면 안 되지.. 그러다 욕먹지. 아, 그래도 이 사진을 보면 자신들의 사랑스러운 모습에 취해 욕하는 걸 잊을지도 모르는데... 이 아름다운 사진이 찰칵, 내 수중에 들어온 순간부터 나는 이런 고민에 빠져버린다. 이런 쓸데라곤 하나 없는 걱정을 하는 것이 나란 사람이니 어쩌겠는가. 이런 내 마음의 종종거림을, 좋은 것을 나누려는 따뜻함으로 봐주었다면, 만일 당신이 그리 봐주었다면, 당신은 내 마음에 두 걸음쯤 더 걸어 들어온 셈이다. 당신 하고는 아주 금방 친구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의미이겠다.


여행을 하며 찍은 풍경사진에는 여러 명의 연인들이 콩알만 하게 등장한다. 사진 속 연인들은 사랑을 한다. 키스하는 연인들만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바닷길을 나란히 함께 걷는 것도 사랑이다. 한 사람이 앞장서고 조용히 그 뒤를 따라가는 오래된 사람들의 산책 사랑이다. 반려견과 연결된 선을 잡고 그의 행동을 가만히 바라보는 시선도 사랑이다. 바다를 연인 삼아 바다 앞에 의초롭게 서 있는 한 사람의 뒷모습 역시 사랑이다.


한겨레에서 사진기자를 하던 분과 인연이 되어 여럿이 함께 길게 자주 산으로 들로 꽃으로 나무로 사진을 찍으러 다녔다. 그에게서 사진을 대하는 두 가지 태도를 배웠다. 


아름다운 시선과 기다림.


아름다운 것보다 당장에 멋이 좋았던 시절,  사랑은 얼마나 작고 작았을까. 내 앞에 풍경을 아름답게 바라보는 시선은 세월이 필요하고 연습이 필요하다. 예전에는 아름답다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사진 앵글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온다. 시간이 흐르니 알게 된다. 아름다운 것을 담아내는 내 품이 커졌구나.. 사랑이 커졌구나..


그리고 기다림. 자연스러운 것이 가장 아름다운 법.

공간을 두고 기다리다보면 명장면이 걸어와준다.

좋은 사진은 기다림이지, 라는 말은

사랑은 기다림이지, 라는 말이었을까.


아름다운 시선과 기다림.

사진을 찍는 것과 사랑을 하는 것은 어딘지 닮아있다. 

사랑이 사진 속으로 걸어 들어온 날,

오래 기다린 마음이 들썩인다. 사랑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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