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과이모 Nov 18. 2022

일상 세 컷


특별한 이벤트보다 일상의 소소한 장면이 더 사랑에 가깝다. 일상에서 만나는 색색가지 따듯한 마음 덕분에 우리는 살고 있는지도. 인생 네 컷이 유행인 요즘, 일상에서 내 가슴에 훅 지나가는 작은 사랑의 마음에 대하여...



미용실 컷:


오전부터 시작한 펌이 꽤 오래 걸린다. 점심시간을 지나니 배가 고프다. 언제 끝나냐고 미용사 언니에게 세 번째로 물어보면서.. 약간 무안한 마음에, 언니도 배고프시겠어요, 말했다. 그냥 인사치레 같은. "제가 배고픈 건 괜찮은데요.. 손님들 머리 하는데 배에서 꼬르륵 소리 나는 게 너무 민망해요." 나이 꽤 있는 미용사 언니, 소녀처럼 부끄러운 듯 말한다. 배고픈 게 괜찮지는 않을 텐데... 끼니를 놓치는 건 당연한 듯한 말에 마음이 뭉클. 의자에 앉아있는 손님의 귀와 서 있는 그녀의 위장. 지나치게 가까운 그 거리. 가족이나 연인을 제외하고 그렇게 가까이 누군가의 위장, 아니 심장 근처에 머무른 적이 있는가. 혼자 운영하는 미용실. 끼니를 자주 놓치며 일하는 그녀. 다음번에 갈 땐 붕어빵이라도 사 가야지 생각해본다. 얼마나 환하게 웃을까, 그림 그려보니 내 가슴이 금세 따뜻함으로 물든다. 그녀의 위장까지 채우긴 힘들더라도 심장에 위치한 그녀의 가슴이 따뜻하게 덥혀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올해가 가기 전 따순 붕어빵 사들고 그녀에게 가기로 한다. 그렇게 그녀와 나의 거리를 조금 좁혀보려 한다.



어르신들 여행 컷:


70대 어르신들을 모시고 여행을 했다. 여행이라기보단 예약, 일정, 운전 등 모든걸 책임지는 만능 여행가이드. 그녀들에게 나는 무엇이든 능숙하게 해내는 기특한 젊은이였다. "어머, 너는 참 이런 것도 잘하는구나. 넌 어쩜 그런 것도 다 아니? 너는 젊으니까 좋겠다..." 생각보다 까다로운 그녀들 덕분에 겉으로 웃고 있었지만 마음속으로는 전력질주 중이었다. '꽃보다 남자'의 이서진이 이런 마음이었을까. 가장 큰 문제는 음식이었다. 소개받은 식당이 맛이 별로이거나 음식 간이 안 맞을  환장할 노릇이었다. 음식점 검색을 하면서 잠들기도 했다. 여행 마지막 날 던 식당은 다행히 맛이 괜찮았다. 해산물을 좋아하는 내가... 진심을 다해 내 앞의 음식을 신나게 먹어치우고 있는데, '어리바리하지만 까다롭고 귀여운' 한 어르신이 웃으며 말했다. "너는 먹는 것도 맛있게 잘 먹는구나. 예쁘다." 먹고 싶은 걸 다 먹고살지 못했던, 뭐든 아껴야 하는 시절을 건너온 1950년대 태어난 언니들. 그래서 이 언니들에게는 음식에 진심인 사람이 진국으로 보이는 거겠다. 내가 마음에 든다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들렸다. 진짜 칭찬받은 느낌이 들었다. 뭉클했다. 뭉클하고 감사 한데요... 다음번에 또 부르시면 안돼요 언니들...이라고 생각한 건 비밀이다. ㅎ


작은 사람의 사랑 컷:


지인들 여럿이 모이기로 한 자리. 야외 공원에서 먼저 가서 기다리는데 한가족이 조금 늦게 저 멀리서 온다. 사랑스러운 준이가 보인다. 손을 흔들어주니 웃으며 달려온다. 여덟 살 준이는 전력질주해서 달려오더니 내 앞에서 서서 오른손을 까딱까딱한다. 귓속말하려는가보다. 아이들이란 왜 한 개도 비밀스럽지 않은 말을 귓속에다 하기 좋아하는가. ㅎㅎ 무릎을 꺾으며 몸을 숙이려 하는데, 준이가 주머니에서 목걸이를 꺼낸다. 동네 문방구에서 소중히? 구매했을 것 같은 미미인형 보석이 붙어있는 목걸이다. 이게 뭐냐고 묻기도 전에 목걸이를 걸어주려고 길지 않은 팔로 내 목을 둥글게 감싼다. 목걸이 연결 부분이 잘 맞지 않는지 있는 힘껏 까치발을 세우고 내 목덜미 부근에서 부스럭댄다. 갑작스러운 목걸이 프러포즈에 당황한 나는, 서지도 앉지도 않은 애매한 기마자세로 엉거주춤 그를 기다린다. 그녀에게 목걸이를 잘 걸어준 그는 말도 없이 훽- 돌아서 가버린다. 준아, 이거 이모 주는 거야? 물었더니 뒤도 안 돌아보고 씩씩하게 네~~~ 하고는 아이들 있는 쪽으로 신나게 뛰어간다. 준아, 좋아하는 사람한테 목걸이 걸어주는 거 어디서 배웠니? ㅎ 잘 배웠어. 이모 설렜거든 ㅋㅋ 계 탄 날이었다. 내 마음처럼 하늘도 화창한 가을날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바다를 찍으려다 사랑을 찍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