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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이모 Dec 17. 2022

제가 더 사랑하겠습니다


어른이 되면서 점점 못하는 말들이 있다.

어른들 모두에게 주어진 미션 같은 걸까,

이런 말을 하면 벌금이라도 내는 걸까.

가끔 이런 말을 하는 어른이들이 출몰할 때,

우리는 왜 놀라는가. 이게 뭐 대단한 말이라고.

유치원 때 다 배운 말인데.


제가 하겠습니다.   ( 저요 저요 제가 할게요!)

제가 그랬습니다.    ( 그거 제가 그랬어요 )

제가 미안합니다.    ( 미안해 친구야 )

제가 (더) 사랑하겠습니다. (엄마! 내가 더 사랑해!)



회사에서 내 이름 불리는 게 싫어졌다면 꼰대로 가는 시작의 문을 밀어젖힌 거다. '오늘도 무사히'라는 문장을 가슴에 품고 우리는 얼마나 눈에 띄지 않으려 하는가. 제가 하겠습니다, 고 말하는 신입사원들이 가끔 부럽기도 하지만 너도 좀 지나 봐라... 아직 내딛지도 않은 신입들의 사기 충만한 한걸음을 내 마음속으로 꺾는다. 제가 안하고 싶습니다만. 이렇게 되뇌이면서 내 마음은 왜 이리 씁쓸한가 말이다.


제가 그랬습니다. 이 짧은 문장은 왜 우리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가. 내가 그랬을 때, 내가 그랬다고 하는 거. A를 A라고 말하는 것. 너무 단순해서 싱거운 이 말.

'정직하게 말하기'는, 유치원 중에서도 병아리반 정도에서 배운다. 5세 반 정도 되겠다. 내가 그랬으면서 왜 쟤가 그랬다고 말하는가. A를 왜 B 라고 말하는가. 어디서 배웠는가.


제가 미안합니다. 먼저 말한다고 지는 것도 아닌데 미안하다고 말하기는 왜 이리 싫은 말이다. 미안하면서도 속으로만 미안해하고 겉으로는 그냥 지나치거나 퉁쳐버리는 건 나를 속이고 상대를 속이는 행위이다.  미안함이 은근슬쩍 증발되기 시작하면 상대와 나를 잇는 신뢰의 다리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미안하면 내가 먼저 미안하다고 하자. 거기서 작은 마법이 시작되더라.


제가 더 사랑하겠습니다, 보다 더 사랑에 가까운 표현이 있을까. 나를 사랑하는지 아닌지 상대를 살피고 내가 더 사랑하는 것 같으면 사랑을 거두기도 한다. 언제부터 사랑을 셈 했던가. 더 사랑했다면 더 사랑이 많은 사람이 되었을 것인데 왜 우리는 사랑이 많은 사람이 된 것을 숨기려 하는가.



모든 것을 당신에게 양보합니다.

당신이 먼저입니다.

다만, 사랑만큼은 당신을 이기겠습니다.

당신이 늘 나중입니다.

제가 먼저, 제가 더 사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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