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또 올게 (완결)

by 김미현


눈을 떠보니 창 밖으로 안개가 자욱했다.


잠이 덜 깬 눈으로 아저씨를 봤다.


”에헤이. 오늘 날씨 또 와이카노?

우리 커피나 마시러 갈래? “


“그래. 좋지.

근데 잠깐만.

내 머리 쫌 감꼬. “


”엥? 뭔 머리를 깜아? 그냥 모자 쓰고 가믄 되지. 아무도 안 봐여. “


아저씨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니 생각이고.

나는 니가 아니라.

내는 니랑 다르게 청결한 사람이라. ”


그의 말을 듣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청결한 사람? 뭐라카노.

맨날 지 몸만 매매 씻고, 집은 내 몰라라 하믄서 여기저기 쏘댕 기는 여자 만나서 살아 봐야, ’아! 옛날 그 여자가 낫구나. ‘ 하제. ”


아저씨는 피식 웃기 시작했다.


“와? 다음 레퍼토리는 빨간 립스틱이가? ”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잘 아네. 빨간 립스틱 바르고, 백화점 일층 이층을 고마 지박령매로 돌고 도는 여자를 만나서 빨간 차압 딱지가 집에 떡! 붙어봐야 정신 차리제. “


말이 끝나자 아저씨는 이미 배꼽을 잡고 쓰러져 있었다.


“니는 와 그래 극단적인데? 와 맨날 중간은 없는데?

몸만 매매 씻는 여자가 집도 매매 씻으면 안 되는 거가? “


“없어. 세상은 딱 두 부류라. 골라. 퍼뜩.

니랑 둘이 세트로 몸만 매매 씻고,

집은 더러버도 내 몰라라 하고,

맨날 여행만 댕기다가 빚만 한가득 지든가, 지 몸은 안 씻어도 집은 잘 닦는 여자랑 살든가. “


“오야. 오야. 차라리 집을 더 치우는 여자가 낫겠네. ”


“맞제? “


내 모자 하나, 아저씨 것도 하나 챙겼다.

K는 그 사이에 씻었다.


그렇게 셋은 커피숍으로 향했다.


블랙커피 두 잔, 카푸치노 한 잔.

크로와상 세 개.


커피잔을 다 비워갈 즈음 아저씨에게 물었다.


“보소. 있다 한국마트 같이 갈래? 쌀이 다 떨어져 가여. 애 먹을 과자도 좀 사고. ”


“그라자. 같이 가자. ”


K를 다시 집에 내려다 주고 마트로 달렸다.


카트를 끌고 장을 보던 도중에

그날따라 이상하게 비빔밥이 눈에 들어왔다.


”아. 이거 맛있긴 하겠는데 너무 비싸네. “


”그냥 사 묵어라. 사람이 묵고 싶은 건 묵어야지. “


”그래도 너무 비싸다 아이가? “


”무라. 쫌 묵어. 사라. “


카트에 무심히 툭 넣어 주는 아저씨였다.


계산을 마치고,

장 본 것들을 차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같이 오니 좋네. 묵을 거 많이 사니까 꼭 부자 된 거 같다. “


“맞제? 묵고 싶은 건 사 묵어라. 참지만 말고. ”


“내 안 참는다. 잘 사 묵고 있다. 걱정 마라. ”


집으로 돌아오고, 아저씨는 짐을 챙겼다.


흩어져 있던 옷가지들을 챙겨 넣는 아저씨에게 물었다.


”어머니 아부지 드릴 거 잘 챙기 넣었나? “


”넣었다. “


”잘 확인해 봐라. 또 까묵고 그라지 말고. 어찌 써야 되는지 잘 설명해 드리래이. 다정다정하게. 알겠제? “


“아 몰라. 내 그런 거 잘 못하는 거 알잖애. 그냥 드리면 알아서 잘 쓰시겠지. ”


“뭐라카노. 우째 알아서 잘 쓰시노. 독일말인데. “


보다 못한 내가 상자마다 간단히 메모를 써드렸다.


“그래도 잘 설명 드리거래이.

그러나 저러나 더 샀어야 됐는데…“


“뭘 더 산단 말이고.

안 사도 된다니까. 사다 줘도 좋아하지도 않으실 거라. 니 고생한다고 애랑 맛있는 거 사묵으라고 하시지. “


”보소. 그래도 그거는 아니지. 더 좋은 거 사다 드리야 되는데. 지금까지 뭐 보내드리지도 못하고…그리고 말씀은 그리 하셔도 좋아하실지도 몰라여. 그나저나 아무리 봐도 너무 적다. 우짜노. ”


“적기는 뭐가 적어. 많기만 하구만.

내 짐 생기는 거 딱 질색인데.

올 때는 무겁게. 갈 때는 가볍게.

니 모르나? “


가방을 탁 잠그는 아저씨였다.


”가자. “


올 때는 트렁크 두 개.

갈 때는 작은 트렁크는 항상 큰 트렁크 안에 넣어 하나로 만드는 아저씨였다.


공항으로 가는 차 안에서도 우리는 쉴 새 없이 떠들었다.


어느덧 공항.


”아들. 아빠 또 올게. 쪼매만 기다리래이.

보소. 내 간데이.

K. Thank you.

또 보재이. ”


아저씨는 그렇게 말하고

캐리어를 끌고 돌아섰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우리는 아무 말이 없었다.


창밖으로 공항 도로가 길게 이어졌다.

아저씨가 앉아 있던 자리엔

햇빛만 들어와 있었다.


라디오를 켤까 하다가

그냥 두었다.


집에 거의 다 와서야

아이 가방에서 지퍼 소리가 났다.


그제야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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