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곗바늘이 정오를 향해 가던 무렵,
거실에 있던 아저씨가 내 방 쪽으로 걸어왔다.
그러더니 고개를 빼꼼 내밀며 말했다.
“수육 어떠노?”
“좋지. 맛있겠다. ”
K도, 아들도, 나도 모두 대찬성이었다.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금세 현관문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장을 한가득 보고 돌아온 아저씨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주방으로 향했다.
“보소. 냄비 뭐로 해야 되노? “
집에서 제일 큰 냄비로 꺼내 줬다.
”보소. 그거는 어디 있노? “
”그기 뭔데? “
”와. 그거 있잖아. 그거. “
그게 뭔지 내가 알리가 없었다.
떠오르지 않으면 다 ‘그거’라고 통칭하는 아저씨였다.
몇 번의 호출 뒤 이제 다 되었다는 듯.
”이제 나가. 내 요리할 거라. “
그제야 주방문을 닫고 아저씨는 돼지고기를 삶기 시작했다.
딸그락딸그락 소리와 함께
본인이 좋아하는 음악을 틀었는지 연신 팝송이 울려 퍼졌다.
나와는 전혀 다른 취향의, 그루브 넘치는 그의 음악이었다.
주방 문은 닫혀 있었지만, 그 사이로 구수한 고기 냄새가 집안 곳곳에 퍼졌다.
오랜만에 맡아보는 그 냄새가 우리를 잠시 한국에 데려다 놓은 것만 같았다.
얼마 후 문이 열리고, 아저씨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들렸다.
“야들아. 다 됐다. ”
우리 셋은 각자의 방에서 그 부름을 받고 거실로 향했다.
식탁 위 차려진 상차림은 한국 그 자체였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뽀얀 수육에 싱싱한 쌈채소. 빠질 수 없는 편마늘과 고소한 쌈짱.
주방은 그야말로 난장판이었지만, 문제 될 건 없었다.
”오! 맛있겠네. 대박! “
휴대폰을 가져와 여러 각도로 사진을 찍었다.
“이기 쫌 그렇네. 한국이 아니다 보니 그 맛이 날랑가 모르겠네. 내 요리 실력이 예전 같지 않은 거 같애여… 혼자 있다 보니 요리할 일이 있어야 말이지. ”
무엇을 만들어도 늘 맛있는 그이지만,
그 말이 못내 마음에 남았다.
“우와! 대박! 수육이 우째 이래 보들보들하노? 요리 실력 하나도 안 죽었구먼. 여기서 우째 이런 걸 만들었노? 완전 맛있는데. 맞제? ”
나는 아들과 K를 동시에 바라봤다.
“응. 아빠. 진짜 맛있데이. “
아들은 아빠를 향해 안 그래도 큰 눈을 더 크게 뜨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맛있어요. It’s so good. 고마워. “
K는 본인의 가슴 앞에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았다.
아저씨를 향해 기도를 하는 건지,
합장을 하는 건지 모를 행동이었다.
“다행이다. 다 좋아해 주니 좋네. 맛있게 묵으래이. ”
그제야 활짝 웃는 아저씨였다.
젓가락들이 바쁘게 식탁을 종횡무진하는 동안
서로의 눈이 마주칠 때마다 우리는 웃어 보였다.
그렇게 디저트까지 배 부르게 먹고는 각자의 자유시간을 가지러 떠났고, 아저씨와 나만 발코니에 나란히 앉았다.
그의 직장 고민이 시작되었다.
아저씨의 사회생활 요모조모를 듣는 시간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실컷 풀어놓더니, 아저씨는 끝에 이렇게 말했다.
“니도 불쌍해여. 여기서 이래 고생하고.”
“내가 뭣을. 그래도 나는 여기서 아들이 우째 커가는지 볼 수 있잖아. 그러니 좋지. “
“맞나? 그리 생각하면 또 그라네. ”
밤이 깊어지자, 아저씨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도 오늘은 잘 묵었다. ”
그가 들어간 뒤,
나는 조금 더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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