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이게 뭐야?! 누가 토토 집을 이렇게 해놨어?! 나나 녀석이 장난친 게 분명해!"
집에 오자마자 거실 풍경을 보고 화가 난 휘곤은 토토의 집 앞에 놓인 아코디언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리고 엄마를 향해 호소했다.
"엄마! 나나가 한 짓 좀 봐! 이번 기회에 따끔하게 혼 좀 내줘!”
“제길! 빨리 결혼해서 토토를 데리고 나가든지 해야지!!”
휘곤은 아코디언을 들어내고 갇혀있던 토토를 꺼내 황급히 품에 안아 든다. 그리고 조심스러운 손길로 토토를 쓰다듬으며 다친 곳이 없는지 살핀다. 그렇게 작은 소동을 치른 후 나나가 외출했다고 생각한 가족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평소처럼 일상 속에서 자기 할 일을 시작했다.
그 모든 상황을 지켜보게 된 나나는 뭐가 뭔지 모를 의아함도 있었지만 아슬아슬한 상황으로부터 도피한 듯한 안도감이 들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처음 느껴보는 신경계 감각들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가족들이 걸어 다닐 때마다 마치 나나의 몸 위를 돌아다는 것처럼 그들의 족적이 감각을 통해 전달됐고 엄마가 주방 벽을 행주로 닦자 간지러움이 느껴졌다. 가구가 있는 부분은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지고 욕실에서는 축축함이 느껴진다.
"뭐야?! 이럴 수가! 내가 집이 된 거야!?”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 상황을 이렇게 밖에 해석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러는 중에도 가족들의 일거수일투족은 감각을 통해 꾸준하고 충실하게 전달되고 있었다.
“말도 안 돼!! 내가 원한 건 이딴 게 아니었다고!!”
나나는 억울하다는 생각에 온 힘을 다해 외쳤다. 그 순간 거실 소파에 앉아있던 아빠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엄마에게 물었다.
“음? 여보 방금 어디서 나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지 않았어?”
“글쎄요, 자기 방에도 없는걸 보니 나간 것 같은데요? 나는 왠지 집이 흔들리는 것처럼 조금 어지러운데 오늘 상견례 때문에 당신도 나도 신경이 예민해졌나 봐요.”
"아냐 엄마! 나 진짜로 여기 있다고!!"
나나는 한 가닥의 희망을 품고 다시 한번 외쳐봤지만 어째서인지 더 이상 나나의 목소리 전해지지 않았다. 그리고 희망은 이내 좌절과 두려움으로 변했다.
어느덧 해가 지고 어둑한 저녁이 찾아왔다. 나나에겐 여전히 방도가 없었지만 상황은 나나가 가만히 절망에만 빠져있을 여유도 허락하지 않았다. 나나의 감각 어디에선가 좋지 않은 냄새와 함께 뜨끈한 무언가가 느껴져 왔기 때문이다. 정신을 차려보니 토토가 평소 자신이 화장실로 애용하는 베란다 한쪽 구석에서 시원하게도 볼일을 보고 있었다.
“꺄악!! 더럽고 뜨거워!! 내 몸에 무슨 짓을 하는 거야!!”
소스라친 나나는 펄쩍 뛸 지경이었지만 베란다 바닥에 미미한 진동이 일어났을 뿐. 그 외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볼일을 끝낸 토토는 한층 가벼워 보이는 발걸음으로 특유의 타닥거리는 발톱 소리와 함께 총총걸음으로 당연하다는 듯이 나나의 방으로 들어간다.
“뭐.. 뭐야!? 토토 녀석 내가 없을 땐 저런 식으로 내 방에 맘대로 들어가는 거였어?!”
토토는 나나의 방 곳곳을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더니 빼꼼히 열린 옷장에 시선을 고정한다.
“아.. 안돼!! 거긴 지난주에 새로 산 내 핑크색 맨투맨이 걸려있단 말이야!!”
나나의 말 없는 만류를 무시한 채 토토는 옷장에 다가갔고 반 뼘 정도 열린 옷장 문틈 사이에 코를 들이밀어서 틈을 넓히고 안으로 들어간다. 새 옷 특유의 냄새가 토토의 호기심을 자극한 걸까. 토토는 킁킁거리며 맨투맨의 냄새 맡는가 싶더니 이내 소매를 잘근잘근 씹기 시작했다. 얼마 안 가 맨투맨의 소매는 토토의 침으로 금세 흠뻑 젖고 말았다.
“히익!! 더러워!! 게다 방금 볼일 본 엉덩이를 내 코트 밑단에 비비고 있잖아!!”
불행인지 다행인지 토토는 더 이상 나나의 방에서 볼 용무가 없는지 다시 가벼운 총총걸음으로 거실로 나갔다.
“휴우 다행이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찰나 화장실에서 아빠의 가래 끌어모으는 소리가 들린다.
“카아앍~~!!”
이것은 나나의 아빠가 욕실에서 양치 도중 내는 소리로 평소 나나가 귀를 틀어막을 정도로 싫어하는 소리라고 할 수 있다.
“제! 제발!! 그건 안돼!! 뱉지 말란 말이야!!”
"퉤!"
하지만 그 마음이 전달될리는 없었고 아빠는 한결 개운해진 목으로 콧노래를 부르며 땀에 절은 양말자국을 바닥에 남기며 안방으로 들어갔다.
“히이익!!!” 이건 지옥이야!! 이렇게 집에 갇힐 순 없어!!”
거기에 오빠 휘곤의 방에서 발생하는 자극적이고 눈부신 게임 화면과 시끄러운 소리에 나나의 오감은 철저히 고문당하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고통의 저녁시간을 보내고 자정이 가까워진다.
“여보, 나나는 아직 안 들어온 건가?”
자정이 가까워진 시간에 염려 어린 목소리로 아빠가 엄마에게 묻는다.
“그렇네요. 요즘 할 일도 없을 텐데 무슨 밖에 이렇게 오래 있는지. 엊그제 한소리 했더니 할 일이 없이 자유로우니까 오래 있는 거라나 뭐라나 참내 기가 막혀서!”
“기다려봤자 좋은 소리도 못 들으니 우리 먼저 들어가 자도록 해요. 때 되면 알아서 들어오겠죠 뭐.”
그렇게 거실에 불이 꺼지고 휘곤도 게임하다 지쳤는지 형광등을 켜놓은 채 의자에서 잠이 들어있었다. 휘곤 옆을 지키던 토토 녀석도 의자 밑에 몸을 누이고 졸린 듯 실눈을 감았다 떴다 반복한다.
“휴우.. 이제 좀 편안해졌네. 그나저나 난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겨우 찾아온 차분하고 고요한 시간 속에 이런저런 궁리를 해봤지만 해결책은 없었고 불안, 외로움, 서러움 등이 마음 곳곳에 번져온다.
"원래 대로라면 지금쯤 내 눈에선 눈물이 흐르고 있었겠지?"
말할 수도, 움직일 수도, 울 수도 없는 처지가 된 나나. 그렇게 밤의 고요함 속에 묻혀 마치 잠에라도 들 것처럼 의식이 희미해졌다.
그리고 시간은 어느덧 새벽의 한가운데. 가볍고 분주한 마찰음이 몽롱해진 나나의 의식을 깨운다.
“바스락바스락.. 사삭!”
나나는 이 벽지를 가볍고 경쾌하게 스치는 마찰음은 듣는 순간 세상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어느 존재를 떠올렸다. 그리고 예감은 소름 끼치게도 적중했다.
“히이익!! 꺄아아아악!!”
그렇다 새벽이 깊어지자 집안 곳곳 보이지 않는 틈 속에 숨어있던 바퀴벌레들이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바퀴들은 이제야 제 세상을 만난 듯 너도나도 모습을 드러냈고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가로등 빛을 번들거리는 키틴질에 반사시키며 온 집안을 누벼댔다.
온몸이 까끌거리는 이 미칠듯한 느낌은 이미 소름이나 공포 같은 말로는 표현이 불가능했다. 천장을 타던 한 녀석이 바닥에 떨어져 갈라지고 번들거리는 배를 실룩이며 버둥거리는 광경을 목격한 순간 나나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의식이 끊어지고 말았다.
“툭툭!”
“얘! 나나 그만 일어나 밥 먹어라.”
“으음.. 아?! 꺄악!!"
나나는 원초적인 비명을 지르며 소파 밑으로 굴러떨어졌다. 그리고 몸 여기저기에서 느껴지는 감각과 통증을 느끼고는 벌떡 일어나서 거울 앞으로 달려간다.
“우와!! 돌아왔어!! 엄마!! 내가 돌아왔다구!!!
“얘는 자다 깨서 무슨 헛소리니? 제발 철 좀 들었으면 쯧쯧.”
나나의 이산가족 상봉이라도 한듯한 이 뭉클한 심정을 엄마는 알 리가 없었다.
“엄마! 그게 아니고 말로 설명하기 힘든 이상한 경험을 했단 말이야!”
“나 참. 얘가 점점.. 매일 밤늦게 읽어대는 그 이상한 소설이 꿈에 나온 건 아니고?”
엄마는 더 이상 나나를 상대해 주지 않고 주방으로 가버린다.
“꿈이라.. 아냐 그건 꿈일 수 없어 그 감각들은 다 실제와 같았다구!”
나나는 한동안 멍하니 서 있다가 자기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걸터앉는다.
“그 일들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그건 정말 현실이었을까? 아니면 엄마 말처럼 생생한 꿈이었을까?”
잠에서 깨어나면 의식이 점점 또렷해지면서 꿈의 기억은 점점 희미해져 가듯이 나나는 점점 방금 전까지 현실처럼 겪었던 일들을 장담할 수 없는 기분이 되어간다.
나나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빼꼼히 열린 옷장 문 틈새로 삐져나온 핑크색 맨투맨의 소매를 만지작거리는 것 정도가 고작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