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제곱미터의 여름

by 아포드


일조량이 적어지는 겨울에는 정신건강이 불량해지기 쉽다. 각종 호르몬의 변수와 맞물려 기쁨의 이율은 하락세로 접어들고 불행의 이율은 호재를 만난 주가처럼 오른다.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과거의 감정 그래프를 참고하고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며 기다리는 것들 뿐이다.


햇빛을 보는 것도 좋고 산책도 좋다. 그런데 겨울 산책이라는 것이 결국 피부의 대부분을 가린 채 하게 되는 것이라 햇빛이 닿는 부위가 너무 작다. 햇빛에 닿는 피부 면적을 확보했으면 좋겠는데 그렇다고 옷을 벗고 산책을 하는 것은 추위는 둘째치고 행인들에게 민폐가 될 수 있다.



그러다 문득 아침마다 방바닥을 비추는 네모난 빛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딱히 쓸모없는 조그만 빛 조각이라고 생각했지만 사람 몸통 정도를 커버하기에는 충분했다. 찬바람이 들어오겠지만 직사광선을 확보하기 위해 창문 연다. 그리고 상의 탈의로 창문 앞에 앉는다. 여유로운 일광욕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어느 햇빛 거지의 꽤 절실한 구걸이기도 하다.


오.. 강렬하다. 견디기 부담스러울 정도로 뜨거웠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겨울바람 따위는 느껴지지 않는다. 이렇게 이 방에는 나도 몰랐던 0.3제곱미터 여름이 늘 찾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피부가 희다면 적은 시간으로도 하루 일조량을 충족할 수 있다고 한다. 나는 피부가 희지만 그래도 모처럼의 햇빛에 욕심을 좀 더 내본다. 직사광선에 노출된 피부에 아지랑이가 그려지기 시작한다. 차가운 공기와 뜨거운 빛이 만나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마치 X-MEN에 나오는 미스틱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앉아 있다 보니 이 틈에 책을 좀 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 근처에 놓인 아무 책이나 편다. 그런데 책에도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마치 햇빛에 책이 불타는 것 같기도 했다. 혹은 책이 살아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 모습이 인상적이어서 결국 책은 안 읽고 글자가 없는 페이지를 찾아 아지랑이에 심취했다.





그렇게 오늘도 찾아온 0.3제곱미터의 여름이 진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