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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 도슨트북 Sep 12. 2021

이건희 컬렉션, 유영국의 작품

유영국 Yoo Youngkuk


대구미술관 '이건희 컬렉션' 전시에 걸린 유영국 작품을 보고 있는 방탄소년단 멤버 RM./방탄소년단 트위터




유영국 Yoo Youngkuk

작품 Work

1974

캔버스에 유채

136x136.5cm 


이건희 컬렉션 23,181점의 작품 , 유영국의 작품이 187(회화 20, 판화 167)으로 작가  가장 많다 (이중섭 작품이 104, 유강열 68, 장욱진 60, 이응노 56, 박수근 33 ). 그의 나이  60세인 1975 11 14 - 11 22일에 현대화랑에서 그의 다섯 번째 개인전이 열리고, ‘ 그림은  살아 생전 팔리지 않는다 그의 작품에 인생  구매 고객이 나오는데 그가 바로 삼성  이병철 회장이다.  당시 이병철 회장이 미술관을 짓기 위해 여러 작품을  모을  미술사학자 최순우의 소개로 유영국의 작품을 보고, ‘추상화도  정도면 괜찮군이라고 말했다는 일화가 있다. 최근 2019 5 케이옥션 경매에서 유영국의 그림 ‘작품 Work’  7 7천만원에 낙찰되었다.  


2019년 5월 케이옥션에서 낙찰된 그림. 작품 Work, 1960, 유영국, 캔버스에 유채, 130.3×162.2cm






유영국 1916 -2002 (사진: 임응식)


유영국 1916 - 2002,

한국 추상 미술의 선구자로 손꼽히는 유영국은 ‘산’ 이라는 주제의 그림을 많이 그려 ‘산의 화가’로 불린다. 한국의 자연을 강렬한 컬러와 선과 면 중심의 기본 조형요소를 사용하여 과감히 추상 형태로 그려내 ‘색면 추상의 거장’이기도 하다. 같은 시기에 추상미술을 선보였던 김환기와 더불어 한국 추상미술의 양대산맥으로 손꼽히는 한국 서양미술 1세대 화가이다. 평생 동안 ‘산’의 아름다움을 화폭에 옮기는 작업에 전념하였던 그에게 왜 그렇게 산을 줄기차게 그리느냐는 물음에 그는 답한다.



산에는 뭐든지 있다.
봉우리의 삼각형, 능선의 곡선, 원근의 단면, 다채로운 색…

-유영국-


산, 1977, 유영국, 캔버스에 유화, 135 x 135cm


1916년 유영국은 산과 바다가 함께 어우러져 너무나 아름다운 경상북도 울진(당시에는 강원도 울진)에서 태어났다. 그의 작품 속에서 만나는 아름다운 자연을 유영국은 ‘떠난 지 오래된 고향 울진에 대한 사랑 때문이다’ 이라고 말한다. 이건희 컬렉션의 대구미술관 기증 작품 21점 중 유영국의 작품이 5점 포함된 것도 이러한 인연 때문이다.


2021 '웰컴 홈' 대구미술관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www.korea.kr
작품, 1973, 유영국, 캔버스에 유채, 133x133cm, 이건희컬렉션, 대구미술관


색을 어쩜 이렇게 이쁘게 쓸 수 있을까? 너무나 감각적이다. 빨강, 노랑, 파랑, 거기에 변형된 빨강, 변형된 보라, 변형된 오렌지, 그의 색을 다루는 마력에 푹 빠지게 된다. 추상이라고 하지만 산이 보인다. 우뚝 솟은 두 봉우리가 장엄하기까지 하다. 큰 산에 빙~ 둘러져 있는 빨간 부메랑의 둥근 무게감이 산의 무게 중심을 잡아 주고 있는 듯하다. 산세의 라인에 퍼져 있는 황금색 라인은 해가 비친 산의 모습으로 빛난다. 햇살을 머금은 산을 이렇게 표현한 게 아닐까? 큰 두 산 너머로 펼쳐져 있는 보라색 조각은 멀리 중첩되어 보이는 산의 모습이기도 하고, 하늘이 내려앉아 산과 함께 어우러져 있는 모습이기도 하다. 산에서 느끼는 감정을 이렇게 시각적으로 담아낼 줄 몰랐다. 이처럼 아름다운 컬러와 도형의 추상으로 너무나 아름답게 우리의 산을 표현해 내다니, 고맙다.

  

작품, 1974, 유영국, 캔버스에 유채, 133x133cm, 이건희컬렉션, 대구미술관. 아스라이 서서히 멀어져 보이는 산의 모습을 너무나 감각적으로 표현한 작품.



1931년 경성 제2고등보통학교(현 경복고등학교)에 입학한 유영국은 자유주의적 인간관과 예술관을 소유한 미술교사인 사토 쿠니오를 만나 그림을 배운다. 같은 입학 동기생이 ‘나룻배’, ‘공기놀이’ 등 작은 그림을 주로 그렸던 장욱진이다. 1935년 일본의 도쿄문화학원(東京文化學院) 유화과로 유학하여 미술공부를 이어나갔으며, 이 시기에 이중섭, 김환기, 장욱진 등과 교류한다.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의 문화학원에서 그 당시 도쿄에서도 새로운 미술인 ‘추상’을 처음부터 시도하였다. 이것이 김환기의 추상과 구별되는 점이다. 김환기는 구상에서 반추상을 거쳐 전면점화(全面點畵, 화폭 전체를 점으로 가득 메운 추상)의 완전추상으로 변형해 왔는데, 유영국은 아예 처음부터 추상화로 시작한다. 그 당시의 유영국 작품을 한 번 보자.


작품 R3, 1938(유리지 재제작 1979), 유영국, 유영국미술문화재단

유영국의 나이 22세인 1938년, 일본 도쿄의 문화학원을 졸업한 해에 제2회 자유미술가협회전에 출품한 작품이다. 이 작품으로 유영국은 한국인 최초로 자유미술가협회상을 수상하고 작가로 추대되었다. 이 작품의 원본은 6.25 전쟁을 거치면서 분실되고 기념엽서만 남아 있었는데, 이를 근거로 1979년 유영국이 생존했을 때 그의 맏딸인 금속공예가 유리지에 의해 재제작되었다. 작품명 ‘R3’는 ‘Relief, 부조’ 라는 뜻의 세 번째 작품이라는 의미이다. 하얀 나무판 위에 유연한 기하학 곡선 모양의 흰색, 검은색 나무판을 위에 붙였다. 이 당시 유영국의 관심은 ‘내용’이 배제된 형상(Form) 이었다고 한다. 독일의 작가 ‘장 아르프 Jean Arp (1866-1966)’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지만 붓이 아닌 나무판을 가지고, 2차원이 아닌 3차원의 부조로 그림자까지 작품의 한 부분으로 표현해 냈다는 것이 새롭다.


1940년 유영국은 그림 뿐만 아니라, 오리엔탈 사진학교도 졸업한다. 사진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유영국은 라이카 사진기를 구입하여 경주 등 문화유적을 즐겨 찍었다. 말년에도 여행을 다닐 때는 항상 카메라에 자연 풍경 등을 많이 담아 찍었다. 이러한 카메라 렌즈로 담아냈던 우리의 자연이 이후 붓으로 담아낸 유영국 작품의 원천이 아니었을까 싶다.

 

카메라를 메고 있는 유영국. 국립현대미술관


1943년 더욱더 격렬해진 태평양전쟁 속에서 일본에서 귀국 후 고향 울진으로 돌아와, 붓을 접고 부친이 운영하던 고기잡이배를 탄다. 다음 해인 1944년 서울 YMCA에서 김기순(1920-)과 결혼식도 올리고, 이듬해 장녀인 유리지(1945-2013, 현재 ‘유리지공예관’ 설립자)도 낳는다. 


김환기를 통해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응용미술과 교수직을 제안받아 근무한 것도 1948년 이 즈음이다. 이 시기에 유영국, 김환기, 이규상과 함께 추상작가가 모여 대한민국 최초로 조형에 기초한 그룹으로 평가받는 ‘신사실파’ 를 만들어 활동한다. ‘신사실파’라는 이름은 김환기가 지은 이름으로 ‘추상을 하더라도 추상은 사실이다. 새로운 것을 추구하라’ 라는 의미로, 다양한 새로운 주제들을 추상으로 표현해 보자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래서 산, 별, 한국의 미 등 다양한 주제의 추상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이었을까? 이후에 장욱진, 이중섭, 백영수 등이 함께한다.


결혼 직후인 1945년 김기순 여사의 모습.
1940년대 함께 거리를 걷고 있는 유영국(왼쪽)과 김환기(오른쪽). 국립현대미술관


6.25 전쟁으로 서울에서 다시 고향 울진으로 피난 내려와 양조장을 수리하여 운영하며 유영국은 사업적으로도 성공을 거둔다. 예술가와 양조장, 아 술을 그렇게 좋아했던 반 고흐 Vincent van Gogh 도 이 생각은 못했으리라. 그의 성실함과 신뢰가 성공의 바탕이 되었지만, 여기서도 화가로서의 그의 능력이 유감없이 발휘된다. 전쟁통에 피난민들이 넘쳐나던 시절, 고향을 두고 떠나온 피난민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며 마시는 술 한잔이라는 의미로 소주 이름을 ‘망향(望鄕)’ 이라고 짓고, 포장도 모던하게 디자인해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마셔보고 싶다, 그 술 망향.



나는 금산도 싫고 금논도 싫고,
나는 그림을 그릴 것이오.

-유영국-



양조장 한 모퉁이의 작은방을 화실로 사용하여 그림을 간간히 그렸지만 아쉬움이 많았던 유영국은 1955년 양조장을 직접 경영하는 일을 접고, 서울 약수동으로 옮겨와 본격적으로 그림 그리기를 시작한다. 일본에서 돌아온 뒤 10년의 공백기가 유영국을 조급하게 만들었다. 모던아트협회, 현대작가초대전, 신상회 등의 미술 단체 활동도 활발히 펼치지만, 1964년 미술운동 차원의 그룹 활동을 전면 중단하고, 자신의 작업에만 몰입하기 시작한다.



기계처럼 그림을 그렸어요.
오전 7시 반에 깨어 8시에 아침 식사를 하고
8시 반에 화실로 건너가 그리다가 11시 40분쯤 나와 손 씻고,
12시 땡 치면 점심이 차려져 있어야 했어요.
오후 1시쯤 화실로 돌아가 6시에 저녁 식사하러 나오고,
그 뒤엔 낮에 낭비한 시간만큼을 다시 화실에서 벌충했어요.

-유영국 아내 김기순-



1964년 11월 14일, 유영국의 나이 49세에 100호가 넘는 대작 15점으로 구성된 첫 개인전을 연다. 일반 동료 화가들에 비해 매우 늦었지만, 이 전시를 기점으로  자신의 작품세계에 몰입하여 매 2년 주기로 개인전을 열었다. 1966년부터 맡았던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교수직도 주 3일에서 주 6일로 근무 일수가 늘어남에 따라 1970년 사임한다.


작품, 1964, 유영국, 캔버스에 유채, 130 x 194 cm. 첫 개인전 브로슈어 표지 작품. 현대화랑

하나의 커다란 숲 덩어리를 보는 듯하다. 왼쪽의 빼곡히 들어선 나무들 사이로 깊이 빨려 들어가는 것만 같다. 숲을 휘감은 바람이 스르륵- 지나간다. 그 거대한 숲에서 보여지는 빨간 생명력, 노란 한줄기 빛, 노란빛의 강렬함이 숲을 찢고 나오고 있다.



내 그림은 주로 '산'이라는 제목이 많은데,
그것은 산이 너무 많은 고장에서 자란 탓일 게다.
‘숲’ 이라는 그림도 내가 어렸을 때 마을 앞에 놀러 다니던 숲이 생각나서 그린 것이다.
무성한 잎과 나뭇가지 사이로
잔디밭에 쏟아지는 광선은 참 깨끗하고 생기를 주는 듯 아름답다.

항상 나는 내가 잘 알고, 또 언제든지 달려갈 수 있는 곳에서 느낀 것을
소재로 하여 즐겨 그림을 그린다.

-유영국-



‘예순 살 까지는 기초 공부를 좀 해 보고’ 라고 말하던 유영국은 1967년, 68년부터 좀 더 단순화된 형태, 기하학적인 도형의 모습으로 그림이 변해간다. 형태를 단순화시키고 컬러의 조화와 변화에 집중하게 되는데, 이는 유영국이 ‘산’이라는 ‘주제 표현’에서 더 나가 ‘형태와 색채의 표현’으로 발전했음을 의미한다. 이는, 폴 세잔의 ‘산의 본질’ 과 마크 로스코의 ‘감정의 색’ 이 유영국의 ‘작품’으로 완성된 건 아닐까 싶어 너무나 놀랍다.  


Montagne Sainte-Victoire and the Black Château, 1905, Paul Cezanne 폴 세잔, Artizon Museum, Tokyo
No. 5/No. 22, 1950, Mark Rothko 마크 로스코, 297 x 272 cm, 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작품, 1968, 유영국, 캔버스에 유화, 136 x 136 cm






작품, 1974, 유영국, 캔버스에 유채, 136x136.5 cm, 이건희컬렉션, 국립현대미술관


스르륵 나의 마음 속으로 들어오는 산을 안으려고 하니 스르륵 나에게서 멀어져 가는 산이 된다. 단순한 형태의 아름다움을 절제하여 표현한 산의 모습이 웅장함을 더해 주는 듯하다. 웅장한 산세가 온 세상을 빨갛게 물들였다. 빨간 산의 힘이 하늘까지 오렌지로 물들였다. 빨간 계열의 색만으로 이루어져 있는 작품이 자칫 단조로울 수 있음을 더 밝은 빨강, 더 어두운 빨강, 더 짙은 빨강, 더 옅은 빨강, 더 깊이감 있는 빨강 등 색의 변형으로 작품에 긴장감을 주고 있다. 컬러가 다양한 변주로 산에서 연주를 시작한 듯하다. 산세의 황금색 라인이 작품의 절정을 이룬다. 햇빛을 과하지 않게 라인 만큼만 머금고 있는 산이라 더 아름다워 보이는 건가? 황금색 라인이 없는 작품은 생각하고 쉽지 않다. 어쩜 이렇게 절제된 컬러로 절묘한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작품을 그릴 수 있을까?



색채란 써보면 참 재미있는 거요.
옆에 어떤 색을 가져와야 이 색도 살고, 또 이 색도 살고…
또 그림이라는 게 그래요.
음악의 경우에 심포니 같은 걸 들으면,
멜로디가 흐르다가 갑자기 ‘자자자 잔-’ 하지요.
그림도 이렇게 보는 사람에게 자극을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림은 시각 예술이니까 입하고 귀하고는 상관 없고, 그러니까 색은 필요한 겁니다.
 
그리고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색채는 균형과 하모니를 이루도록 구성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아주 세밀하게 계산을 해낼 수는 없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유영국-



‘색의 절제미와 아름다운 균형과 강렬한 연주’ 가 있는 유영국의 색, 그의 또 다른 연주를 보자.


작품, 1972, 유영국, 캔버스에 유채, 133x133 cm, 이건희컬렉션, 국립현대미술관


거대한 산이 스르륵- 하늘에 닿았다. 그렇게 햇살 머금은 산이 결국 해에 닿았다. 햇살까지 초록으로 물들였다. 종이를 붙이 듯이, 색을 오려 한 장씩 햇빛으로 붙여 놓았다. 해 또한 우리가 알고 있는 빨간 해, 노란 해가 아니라 변주된 보라색 해라 더 빨려 들어간다. 얼마나 큰 해인지 다 드러나지 못하고 살짝 인사만 한다. 산을 품은 해이다. 내가 산이다. 해가 나를 품고 있다.



산은 내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것이다.

-유영국-


여덟 번의 뇌출혈, 서른일곱 번의 입원, 25년간 기나긴 투병과 작업. 2002년, 그는 우리에게 산이 되었다. 유영국미술문화재단



미술관 하지 말아라. 그건 가족이 아니라 기관에서 할 문제다.
내 이름 딴 미술상 만들지 말라

-유영국-



유영국의 미지막 작품. 작품, 1999, 유영국. 산이 되어 하늘로 올라간 유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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