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내가 동갑이라면 좋겠다. 내가 엄마 나이 되는 건 억울하니까, 엄마를 내 나이에 맞춘다. 엄마는 마흔이다. 엄마는 숙이 된다. 숙은 남편이 없고, 아들이 없고, 딸이 없다. 숙은 부정맥이 없고, 불안장애가 없고, 손목이 시큰거리지 않고, 안경 없이 신문을 볼 수 있다. 숙은 피부가 매끈하고, 아랫배가 안 나왔고, 흰머리가 없다. 숙은 자유롭다. 대충 치우고 산다. 밥은 사 먹는다. 숙은 바쁘다. 쉬지 않고 연애를 한다. 동창들과 전국을 여행한다. 자기가 번 돈으로 본인에게만 돈을 쓴다. 숙과 나는 많이 닮았다. 굳이 말하자면 내가 더 예쁘다. 우리는 같이 살지만 데면데면하다. 싸울 만큼 싸웠기 때문에 더 이상 싸우지 않는다. 아파도 아프다 말하지 않고, 잔소리도 하지 않는다. 이 집은 숙의 명의로 되어 있다. 나는 사십 년 동안 월세도 안 내면서 무전취식하고 있다. 과거에 숙이 나를 내쫓으려고 할 때가 몇 번 있었으나 끝까지 개겼다. 그럴 때마다 숙은 원통해하며 “느그 엄마는 너 놔두고 어디 가셨냐”라고 묻는다. 나는 “우리 엄마는 잘 있다. 내가 잠깐 꿈의 나라로 보냈다.”라고 한다. 나는 숙에게 물어본다. 지금 인생이 마음에 드냐고. 숙은 이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말한다. 나는 만족한다. 우리는 같이 여행을 간다. 비행기를 타고 일본에 도착한다. 온천을 좋아하는 숙은 뜨거워서 탕 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나를 보며 깔깔 웃는다. 숙은 “좋다, 좋다” 연발한다. 우리는 장어덮밥을 먹고, 도쿄타워에서 야경을 보고, 미술관도 가본다. 3박 4일이 지나고 나리타 공항에서 출국 수속을 밟는다. 여행사의 예약 실수로 서로 다른 비행기를 타게 된다. 나는 숙을 먼저 보내고, 다음 비행기로 김해공항에 도착한다. 집에 오니 쪼글쪼글한 엄마가 있다. 엄마에게 숙은 어디 갔냐고 묻는다. 엄마는 숙이 누구냐고 묻는다. 엄마는 낮잠을 자다가 어떤 꿈을 꿨다고 한다. 옛날 나이로 돌아가 아프지도 않고, 사람도 많이 만나고, 여기저기 놀러 다녀서 즐거웠다고 한다. 그렇게 좋으면 계속 거기 있지, 내가 말한다. 엄마는 “혼자서 잘 먹고 잘 사는 인생은 부럽지 않다, 남편이 없으니 심심하고, 자식이 없으니 허전하다”라고 한다. 식탁에 약봉지가 나뒹군다. 엄마는 손목보호대를 차고 밥상을 차린다. 아빠와 오빠가 나타나 밥을 먹는다. 나는 숙을 찾는다. 숙!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