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2147년, 네오 서울. 모든 것은 데이터베이스 속에 존재했다. 학생들의 신분증조차 이제 물리적 형태를 벗어나 생체인식 칩으로 대체되었고, 돈이 필요하면 단순히 신경신호로 요청하면 되는 시대였다. 그러나 A 서점은 여전히 과거의 흔적을 붙잡고 있었다.
A 서점은 디지털화된 세상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아날로그 공간이었다. 주인은 불필요한 종이 책을 보관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는 이유로 폐쇄 명령을 받았지만, 그는 이를 거부했다. 서점의 구석에는 특이한 유물 하나가 남아 있었다. 바로 '기억의 데이터 장부'. 학생들이 필요할 때 작은 금액을 대출받을 수 있는 오래된 방식이었다. 그들은 생체인식으로 기록을 남길 필요 없이 단순히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돈을 빌릴 수 있었다. 기한도 없었고, 이자도 없었다. 다만, 시간이 지나면 어떤 학생들은 돌아와 갚았고, 어떤 학생들은 사라졌다.
몇십 년 후, 정부 관리들이 A 서점의 폐쇄를 논의하기 위해 찾아왔다. "이제는 모두가 개인 금융 시스템을 이용합니다. 굳이 이런 비효율적인 방식을 유지할 필요가 있을까요?" 관리들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완벽한 예측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그러나 주인은 조용히 말했다. "기억의 가치가 데이터의 가치보다 더 클 때가 있습니다."
한편, 네오 서울의 어느 술집에도 또 다른 기억의 저장소가 있었다. 오래된 카운터 서랍 속에는 100년간 보관된 학생증 데이터 칩들이 남아 있었다. 그것들은 단순한 ID가 아니라 한 시대의 흔적이었다. 그 기록을 지우려던 관리들은 뜻밖의 제안을 받았다. "한 번이라도 이 데이터를 가진 사람들에게 연락을 해보는 건 어떨까요?" 그리고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왔다. 과거의 졸업생들이 연락을 받자, 그들은 추억을 되새기듯 네오 서울로 다시 돌아왔다. 단순한 기록이었던 학생증 데이터는 인간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열쇠가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학생들이 더 이상 서점에서 돈을 빌리지도 않고, 술집에서 학생증을 남기지도 않는다. 대신 그들은 인공지능이 제공하는 예측 금융 시스템을 사용하며, 철저하게 개인주의적인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주인은 여전히 A 서점의 문을 열어두고 있었다. "언젠가 누군가가 다시 돌아올지도 모른다. 데이터는 모든 것을 기억하지만, 기억의 의미는 인간이 만든다."
나는 마지막으로 A 서점을 찾았다. 주인은 여전히 그곳에 있었고, 책장을 정리하고 있었다. "요즘은 학생들이 돈을 빌리러 오지 않죠?" 내가 묻자, 그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기다리고는 있는데 말이야." 그는 장부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이제 빈 페이지가 더 많았다.
우리는 변하고 있다. 더 정밀하고, 더 논리적으로. 하지만 때로는 누군가에게 작은 빚을 지고, 그것을 갚기 위해 다시 돌아오는 과정이 우리를 더 인간적으로 만드는 것은 아닐까. 나는 오래된 책방을 나서며 생각했다. 학생증을 맡기던 시절은 끝났지만, 어딘가에는 아직도 오래된 기억을 붙잡고 있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