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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 정의로운 굽힘

by 기담



프롤로그

조선 영조 28년, 한양.
한성부에서 한 사내가 곤장을 맞으며 절규했다.

“대감, 저는 결백합니다! 억울합니다!”

하지만 포졸들은 그에게 채찍질을 가할 뿐이었다. 그가 처벌받는 이유는 단 한 가지, 관가의 실수였다.

그러나 누구도 그 실수를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오직 한 사람, 막 부임한 젊은 어사(御史)만이 이 사건에 관심을 가졌다.

1장 - 억울한 백성

남쪽 변방에서 장사를 하던 **강복선(姜福善)**은 어머니의 병환으로 인해 한양으로 올라왔다. 그러나 마을 원님이 그를 불러 세웠다.

“강복선! 네가 바로 도적떼의 수괴라 하지 않느냐?”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는 장사치일 뿐이옵니다.”

하지만 관아의 형리(刑吏)가 내민 서찰에는 그의 이름이 도적질에 연루된 죄인 명부에 올라가 있었다.

“너의 죄상이 분명하니, 곤장 삼십 대를 치고 옥에 가두노라!”

복선은 억울했지만 변명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형리는 그의 죄를 단죄하며 이미 사형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곤장을 맞던 중, 그는 문서에 적힌 자신의 죄목이 낯설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건 나의 죄가 아니다! 다른 이의 죄를 잘못 적은 것이로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2장 - 어사의 방문

며칠 뒤, 한양으로 새로 부임한 젊은 어사 **이도현(李道鉉)**이 관아를 방문했다.

그는 학문에 뛰어나고, 백성을 먼저 생각하는 인물이었으나, 원리원칙을 중요시하는 자들에게는 그저 고리타분한 이상주의자에 불과했다.

한성부에서 강복선의 사건을 듣게 된 그는 곧장 문서를 검토했다.

“이것이 피고의 죄명인가?”

“그렇사옵니다, 어사 나리.”

하지만 이도현은 문서의 글자를 유심히 살폈다.

한 글자가 잘못 기재되어 있었다.

강복선이 아니라 강보선(姜保善), 전라도에서 도적질을 하다 사형당한 자의 이름이었다.

“이 어찌된 일인가? 이 자의 죄가 아닌 것을 왜 이렇게 기록했느냐?”

포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입을 다물었다. 누구의 실수인지, 아니면 고의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이도현은 생각에 잠겼다. 죄인을 살리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그가 옥중에서 본 강복선의 눈빛은 결백을 담고 있었다.

3장 - 사과의 무게

이도현은 **사또(使道, 원님)**에게 직접 사건을 보고했다.

“강복선의 죄는 사실이 아니옵니다. 이는 관가의 실수로, 즉각 풀어주어야 하옵니다.”

그러나 사또는 얼굴을 붉혔다.

“그런 일을 어찌 인정한단 말이냐? 우리가 실수했다고 하면, 한양 관아의 체면은 어디에 두란 말이냐!”

이도현은 조용히 말했다.

“체면보다 백성의 목숨이 중요하옵니다.”

“어사 나리, 부디 다른 방법을 생각하시오. 우리가 실수를 인정하면, 관청의 권위가 무너질 것이오.”

이도현은 그 자리를 조용히 떠났다.

그리고 곧장 감옥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곤장으로 만신창이가 된 강복선을 마주했다.

“강복선.”

“…나리?”

“이 모든 것은 관가의 실수였다.”

강복선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하지만 그 눈물은 분노가 아니라, 마치 묵은 응어리가 풀리는 듯한 눈물이었다.

그때였다.

이도현은 갑자기 허리를 굽혔다.

그리고 조용하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조선의 어사로서, 백성 앞에 사죄하노라.”

강복선뿐만 아니라 감옥 안의 모든 죄수들이 숨을 죽였다.

어사가 백성에게 사죄한 것은 조선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 순간, 강복선은 모든 응어리가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렇다면, 저는 이제 모든 원한을 내려놓겠습니다.”

그리고 곧장 죄수를 풀어주겠다는 사또의 결정이 내려졌다.

4장 - 진정한 권위

며칠 후, 이도현이 남긴 말은 한양 전체에 퍼졌다.

"관청의 권위는 실수를 인정하지 않는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관청의 권위란, 백성이 신뢰할 수 있는 곳에서 나온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조선의 법률 기록에 한 줄의 기록이 추가되었다.

“영조 28년, 어사 이도현, 백성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하다.”

이는 후대까지 전해지며, 조선에서 관리의 올바른 자세를 논할 때마다 예시로 사용되었다.

그의 사과 한 마디가 조선을 바꾼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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