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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잊혀진 목소리, 멈추지 않는 이야기”

박주영 부장판사 <법정의 얼굴들>

by 기담


세상은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면, 그 이야기는 조용히 사라질 것이고, 한 사람이라도 들어주는 이가 있다면 그 이야기는 영원히 이어질 것이다. 『법정의 얼굴들』의 한 구절,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지상에 단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그런 믿음을 그에게 심어줄 수만 있다면, 그는 살아갈 수 있을 겁니다.”(p.32~33)는 이 책이 전달하고자 하는 근본적인 메시지를 여실히 드러낸다. 이 문장은 우리 사회가 간과하기 쉬운, 그러나 결코 경시해서는 안 될 ‘들어줌’의 힘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이 서평은 본문에 담긴 여러 인용문을 중심으로, 문학적 서사와 사회적 현실의 교차점을 탐구하고,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인간 내면의 목소리와 그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가기 위한 필수 조건들을 고찰한다. 작가는 판결문, 부고, 그리고 법정의 무게 속에 숨은 이야기들을 통해 ‘잊혀진 서사’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Ⅰ. 잊혀진 목소리, 살아남기 위한 믿음

“사람이 사람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한 일은, 혼잣말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입니다.”(p.32~33)
이 문장은 단순한 경고를 넘어, 한 인간의 생존과 존엄에 대한 근본적인 진실을 담고 있다.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혹은 그 이야기에 공감해 줄 단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그 사람은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품고 살아갈 수 있다. 현대 사회는 빠르게 변화하는 정보와 경쟁 속에서 개인의 목소리가 쉽게 묻히곤 한다. 그러나 작가는 오히려 그 ‘묵묵한 외침’이 인간의 근본적인 구원임을 강조한다. 이 글귀를 접할 때마다 나는, 외로움에 잠식된 이들이 단 한 사람의 관심과 공감을 통해 얼마나 큰 힘을 얻을 수 있는지, 그 진실에 깊이 공감하게 된다. 이 문장은 우리 각자가 타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할 책임을 상기시키며, 동시에 사회적 연대와 따뜻한 관심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Ⅱ. 법정의 서사, 시간 속에 갇힌 증언들

“판결문 표지에 기재되는 죄명에는 실제 사건의 100분의 1도 담기지 않는다. 피해자의 눈물도, 고통도, 부서진 일상과 미래도, 더는 흐르지 않는 시간도 생략돼 있다.”(p.66)
이 구절은 법정이라는 권위의 장치가 얼마나 냉혹하게 현실을 단편화하는지를 보여준다. 판결문이라는 공식 문서는 단지 법률적 판단의 결과물을 담고 있을 뿐, 사건의 전체적인 서사와 인간의 아픔, 슬픔을 온전히 반영하지 못한다. 나는 이 문장을 통해, 우리가 법과 정의를 논할 때 잊어서는 안 될 것은 바로 ‘인간의 삶’ 그 자체임을 느낀다. 사건의 진실은 숫자와 단어로 환원될 수 없는 복잡하고도 섬세한 감정과 기억의 집합체이며, 그러한 서사가 모두 누락되어 버린 현실은 매우 안타깝다.

또 다른 구절, “사람이 죽은 일로 재판을 하고, 그 사람을 떠올리며 판결문을 쓸 때면, 판결문이 부고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p.123)에서는 법정의 무거운 분위기와 함께, 인간의 삶이 얼마나 쉽게 무시되고 잊혀지는지를 암시한다. 이러한 표현은 독자로 하여금 법정이라는 제도가 단순히 기계적인 판단이 아니라, 인간의 운명을 다루는 비극적 드라마임을 상기시키며, 진정한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깊은 성찰을 요구한다.


Ⅲ. 서사의 힘, 한 사람의 변화를 넘어 세상을 바꾸다

“단 한 사람도 놓쳐선 안 된다. 모든 명제는 딱 한 개의 반증으로 깨진다. 펭귄이 날지 못한다는 명제는, 하늘을 나는 펭귄 한 마리만으로 깰 수 있다.”(p.195)
이 구절은 한 사람의 힘이 전체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강하게 표출한다. 작가는 단 한 사람의 변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원동력임을 역설하면서, 우리 사회가 소외되고 잊혀진 이들에게 한 줄기 빛과 같은 관심을 가져야 함을 주장한다. 이 글을 읽으며 나는, 한 개인의 목소리가 어떻게 사회 전반의 변화를 이끌 수 있는지에 대해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문학적 서사는 그저 감정의 나열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중요한 성찰임을 깨닫게 한다.

또한 “배심제에서도 만장일치를 수정한 다수결은 10대2, 11대1 정도면 합리적 의심을 넘어선 것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법정 밖 다수결은 그렇지 않다.”(p.289)는 사회의 다수결 논리가 때로는 극단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경고한다. 이 구절은 법정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정의의 실현과, 사회 전반에서 발생하는 무수한 불평등과 고통 사이의 괴리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법정의 판결은 단순한 숫자와 비율로 환원될 수 없는, 인간의 아픔과 역사를 담아내야 한다는 작가의 깊은 성찰이 느껴진다.


Ⅳ. 사회적 서사와 문학적 기록의 필요성

“모든 명제는 딱 한 개의 반증으로 깨진다. … 한 사람이 바뀌면 세상이 바뀐다.”(p.289, p.195)
이 부분은 사회적 서사가 왜 중요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사회의 한 구석에 묻혀버린 작은 진실, 잊혀진 한 사람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알리는 것이 바로 우리 모두가 가져야 할 책임이다. 저자는 피해자의 상실과 아픔, 그리고 그들의 서사가 단순히 수치나 짧은 문구로는 설명될 수 없음을 강조하며, 우리가 먼저 그들을 기억하고 기록함으로써 사회의 불의를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현대 사회는 빠르게 변화하지만, 그 속에서 개인의 서사는 여전히 중요한 자산이다. 우리가 단 한 사람이라도 잊지 않고 그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 기록할 때, 비로소 사회는 점차 정의와 공감의 가치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그 과정에서 우리에게 꼭 필요한 ‘기억의 힘’을 일깨워준다.


Ⅴ. 개인적 소감과 서평의 결론

이 책을 읽으며 가장 크게 와닿은 것은 바로 ‘기억의 힘’이다. 우리는 종종 수많은 사건과 인간의 아픔을 눈감아 버리지만, 작가는 단 한 사람의 목소리, 단 한 사람의 이야기가 사회의 큰 변화를 이끌 수 있다는 믿음을 담아내고 있다. 법정이라는 공간에서 펼쳐지는 생명의 이야기와 판결문에 담기지 못한 아픔을 기록하는 이 서사는, 단순히 법률적 판단을 넘어 인간에 대한 깊은 공감과 연대를 호소한다.

특히, “사람을 살리는 이념과 정의”에 대한 작가의 성찰은 나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자리에서 잊혀진 목소리를 들여다보고, 그 이야기를 기록할 책임이 있다. 이 책은 나에게 단순한 문학 작품을 넘어, 사회적 현실과 개인의 내면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선사하였다.

또한, 판결문이 부고와 같이 느껴진다는 묘사는 법정의 냉정함 속에서 숨은 인간의 감정을 섬세하게 드러내며, 우리 사회가 잊고 있던 ‘사람 대 사람’의 진정한 소통과 공감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읽는 내내 눈시울이 붉어지고, 한편으론 무거운 슬픔과 함께 한 줄기 희망의 메시지를 느낄 수 있었다.

이처럼 <법정의 얼굴들>은 단순한 법률 서술을 넘어, 인간의 아픔과 기억, 그리고 사회적 정의를 담아내는 서사적 작품이다. 각 인용구마다 작가의 깊은 통찰과 사회에 대한 비판, 그리고 한 사람의 이야기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강한 신념이 느껴진다. 나는 이 책이 앞으로도 오랜 시간 우리 사회에 깊은 영향을 미치며, 잊혀진 서사를 발굴하고 기록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리라 확신한다.


맺음말

세월이 흘러도 인간의 아픔과 그 서사는 결코 잊혀져서는 안 된다. 한 사람의 목소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 아래, 우리는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세상을 위해 그 이야기를 기록하고 공유해야 한다. 이 책은 그러한 우리의 책임을 상기시키며, 법정과 사회의 불의를 넘어서 인간 본연의 소통과 공감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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