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둔 상처를 마주할 용기를 주는 이야기
소설을 읽는 즐거움은 마치 낯선 곳을 여행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글자 속에서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공감하며, 때론 그걸 기반으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기도 합니다.
김금희 작가의 <대온실 수리 보고서>는 그런 특별한 소설입니다. 이 책은 단순히 오래된 건물을 수리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마음속 깊이 묻어둔 기억과 상처를 보듬고 치유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창경궁 대온실의 숨겨진 이야기
이 소설의 주인공인 '영두'는 창경궁 대온실의 보수공사 기록을 남기는 일을 맡게 됩니다. 창경궁 대온실은 한국 최초의 유리온실로, 일제강점기 시절 만들어진 건축물입니다.
그러나 그 속에는 우리가 몰랐던 많은 이야기가 숨겨져 있습니다. 30대 여성인 주인공 영두는 이 장소의 보수공사를 진행하며, 오래된 유리온실 아래 묻혀 있던 비밀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한 건축물의 역사가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숨겨졌던 사람들의 아픔과도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소설은 현재를 살아가는 영두의 이야기와 함께, 과거 대온실을 지었던 일본인 후쿠다 노보루의 삶이 교차되며 전개됩니다. 자신의 인생을 바쳐 온실을 지었던 후쿠다, 그곳에서 그는 무엇을 꿈꾸었을까요? 또한, 영두가 학창시절을 보냈던 '낙원하숙'에서의 기억은 왜 그녀를 불안하게 만드는 걸까요?
이야기는 단순히 한 건축물의 역사를 밝히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건물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영두는 자신의 과거와 마주해야 하고, 그 속에서 상처를 회복해 나갑니다. 누군가를 용서한다는 것, 아픈 기억을 떠올리는 용기를 낸다는 것, 그리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게 합니다.
살아남은 것들의 의미
소설 속에서 영두는 한 가지 질문을 받습니다.
"대온실이 국가등록문화재이긴 한데 좋은 마음으로 안 보게 되잖아요. 일제 잔재라고. 창경궁 복원공사 때 다른 시설 다 철거되는데 겨우 살아남았죠. 생존 건물인 셈이에요."
우리는 때때로 아픈 과거를 지우려 합니다. 하지만 그 상처를 마주하고 다시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회복이 아닐까요?
살아남은 대온실처럼, 사람들도 아픈 기억을 품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 기억을 외면한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우리는 한 걸음 더 성장할 수 있습니다.
마음을 수리하는 과정
소설 속에서 영두가 남기는 '수리 보고서'는 단순히 건축 공사의 기록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이며, 아픈 순간들을 치유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작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어떤 시절을 통째로 버리고 싶어하는 마음들을 이해한다."
이 말처럼, 우리는 힘든 기억을 잊고 싶어 하지만, 결국 그것도 우리 삶의 일부입니다. 그 시간들을 지나왔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는 것이죠.
이 책은 단순한 역사소설이 아닙니다. 오랜 시간을 품고 있는 공간과 그곳을 지켜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어우러져, 과거와 현재, 그리고 우리 자신의 이야기를 돌아보게 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마음속에 숨겨둔 상처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알게 됩니다. 상처도 결국 우리의 일부이며, 그것을 인정하고 나아갈 때 우리는 더 단단해진다는 것을. 책 <대온실 수리 보고서>는 우리에게 상처를 마주할 용기를 주는 아름다운 소설입니다.
책장을 덮을 때쯤, 당신은 조금 더 따뜻한 사람이 되어 있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