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녀린 꽃대 하나 우뚝 섰다
한 발짝 뒤로 물러서는 강아지의 헛발길질에도
보란 듯 끄떡없이 지키고 섰다
하얀 털을 날리는 강아지는
그새 얌전히
내가 바라보는 눈길을 포개며
꼬리만 흔들흔들 그러고 섰다
꽃대 하나 피우기 위해
한여름 진한 녹색의 풀들을 헤집고
고개만 우뚝 내밀어
한방에 훅 갈지도 모르는
기계의 굉음을 애써 외면하고 섰다
이미 낙엽길은 가을길
바스락거리는 낙엽 아래로
가을은 짙어가는데
꽃무릇 너는 지금 홀로
꽃대를 세우며 몸부림치고 있다
그렇게 나는 한참을 바라보고 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잡초 속에서도
살충제 속에서도 굳건히 살아나길
강아지똥이 그리운 건 아니다
강아지가 밟지 않았으면 한다
낙엽에 덮여
이름 모를 잡초에 뒤덮여
한 철 쾌락을 즐기지도 못하면 어쩌리
가만히 보면 네가 없는 줄 알겠다
이미 가을에 묻혀
헤집고 발버둥 치며 피어오르는 너를 보고
강아지도 웃었다
뒤따르는 나도 웃고 섰다
이제 피고 있구나
솜털처럼 보드라운 꽃대롱 달고
가을을 뽐내려 돋아난다
이제 시작이야 힘내자
강아지야, 발길질은 잠시 멈추렴
꽃무릇이 예쁘게 피려 한단다
그때 함께 바라보자
ㅡㅡㅡ가을을 맞이하는 자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