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함께 걷는 인연인지도 모르지
새로 딛고 일어서자
마알간 하늘가를 따라온
까마귀들
검은 날개 감추며 소리 없이 날고 있다
내 시선은 둘 데 없어
가을바람 속으로 붉음이 스며드는데
캐캐한 담뱃재를 비벼대는
늙은이의 손길에서 매캐함이 묻어나고
까마귀는 목이 아프다 고개를 쳐든다
어디로 날아가야 할까
붉은 꽃씨 앞서 왔는데
어쩌면 우리는
굽은 고갯길을 함께 건너는 사이인가 봐
이지러진 꽃대 사이를
나비 한 마리 콜록거리며 숨을 내뱉는다
까마귀는 나를 따라오다
무슨 말인지도 모를 그만의 언어로
멈칫 괴성을 질러대고는
머리 위를 힘겹게 회오리치며 돈다
돌다 돌다 또 돌다
제자리로 돌아와 긴 나무 끝에 내려앉는다
나는 꽃무릇길을 걷고 있다
날갯짓하는 나비는 꽃대에 내려앉고
까마귀는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
그의 길을 알려준 적 없으니
우리는 모두
이른 아침 피어나고 있는 하나의 꽃씨다
저는 저대로
우리는 우리대로
함께 걸어가는 인연인지도 모르지
아무렴 어때
각자의 길에서 걷다
어느 모퉁이 꽃길에서 또 만날지도
포기하지 않고 날고 있다
우리 삶도 그러하듯
날다 보면 각자가 닿고 싶은 곳에
안착할 수 있겠지
부지런히 움직이는 아침길에
꽃씨 하나 뿌려진다면
우리는 또 딛고 일어서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