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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 농사를 시작하며

by 어린왕자


봄날이 여름날인가 했더니

봄날이 겨울날이다

더워 죽겠다 소리 지르며 반팔을 꺼냈는데

추워 죽겠다 따뜻함으로 온몸을 휘감는다

웅크렸던 땅을 뒤집고

새알모이처럼 가녀린 씨앗을 심는다

일주일 만에 싹을 틔운 상추는

어느새 한 끼 먹을 만큼 자라나 있다

토요일 저녁부터

바람 불고 폭풍이 몰아친다기에

잔뜩 긴장한 모종들을 쑥쑥

깊숙이 밀어 넣고

행여 페이지 않도록

꾹꾹 눌러 다져놓는다

비바람에도 끄떡없도록


농사를 짓는다는 건

얼마나 크냐의 문제도 있지만

내가 먹을 만큼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내 손이 간다는 의미만큼

그것만큼

벅찬 감격스러움은 없다


살아가면서

함께이면서

즐거울 수 있는 일

소중한 터전을 돌보는 일

발걸음을 돌리면서도

또 일주일을 기다려야 하는

즐거운 기다림을 기억한다


ㅡㅡㅡ미국을 다녀오느라 텃밭을 돌보지 않아 땅이 메말라 있었다. 2주 만에 찾은 텃밭에 옹곳이 앉은 강낭콩은 가지를 뻗어 푸르름을 더했고 시금치는 노랗게 떠 내 키만큼 자라나 있다. 돌보지 않으면 생명을 주지 않은 진실한 가르침이다.


비닐을 덮어 모종을 심어 놓고 폭풍이 몰아친다는 일기예보에 잔뜩 긴장을 했다. 뽑혀버리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함에도 그래도 혹여 버텨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긍정을 심어 놓았다. 비바람이 거세지 않아 다행이다. 이제부터 농사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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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