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시간의 고뇌
한동안 멍한 채로 텃밭을 바라보다 집어치울까 싶은 생각이 언뜻 스쳐 지나간다. 작년에 텃밭을 일군 후로 매주 한두 번 다녀가 물도 주고 여문 오이도 따고 가지도 따고 익은 토마토도 그 자리에서 따먹던 일은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너무나 큰 감격이었고 너무나 큰 즐거움이었다. 토요일 강의를 마치고 5 30쯤 텃밭에 도착해 상추를 따면서 우리가 늙어가면서 이런 일도 해 본다며, 옛날 우리 엄마들은 매일 일상이었던 일을 우리는 취미 삼아한다며 웃으며 일했다. 집에 돌아오면 두고 온 작물들이 떠올라 자꾸 보고 싶어지기도 했다.
노을이 예뻤다. 그때는.
더운 여름도 힘든 줄 몰랐다. 이른 아침 모자를 눌러쓰고 물을 주러 가야 했을 때도 잠시면 되니까 괜찮았다. 자식을 키우듯 어르고 쓰다듬고 솎을 때도 다칠까 살살 건드리며 툭 떨어질 땐 가슴 아프기도 했다.
농사도 처음이라 재밌었다.
두 해로 접어들면서 지난해 묵혀두었던 터에 상추 씨를 더 뿌렸다. 그곳은 그늘이 일찍 들어 비워두었던 곳이라 다른 곳의 상추보단 늦게 나왔다. 안 될 것 같았는데 그래도 제 모습을 갖추고 쑤욱 올라와 감탄을 연발하게 했다.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알고 보면 그리 넓지도 않은데 첫날 상추를 수확하고 나니 온몸이 아팠다. 작년보다 수확 시간이 두 배나 걸렸던 것이다. 허리를 펼 새가 없었고 다리 펼 새가 없이 쪼그리고 앉아 지는 해를 바라봐야 했다. 탄식이 절로 나왔다. 와! 너무 많다. 저걸 다 어찌하리. 검은 봉지가 터져라 눌러 담아두고 허리 한 번 폈더니 땀은 어느새 말라버렸다. 하루 온종일을 수업하느라 두 다리 버티고 서 있다가 텃밭에 와서 쪼그리고 앉아 또 세 시간을 일하고 나니 미칠 것 같았다.
낭만으로 다가왔던 텃밭 농사가 그저 낭만은 아니었다.
수확물도 넘쳐났고 그에 따른 노동시간도 길어졌다. 노동 시간을 줄이려면 있는 상추를 뿌리째 뽑아내야 하는데 또 자식 같은 아이라 그럴 수도 없다. 함부로 내쳐서도 안 되었다. 그러다 익어가는 토마토를 바라보면 또 고단함이 사라지는 마법의 순간도 있다. 익은 토마토 두 개를 따 옷소매에 쓰윽 문질러 입 속으로 넣으면 꿀맛이 따로 없다. 이 맛에 산다고 하듯 이 맛에 텃밭 농사를 짓나 싶은 생각이 세 시간의 고뇌를 한 방에 무너뜨리고 말았다.
해 지는 저녁 하늘에 토마토가 붉은 노을처럼 익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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