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의 텃밭 풍경은 더 이상 낭만이 아니다

내년엔 하지 말자

by 어린왕자


힘이 든다고 느껴지는 노동은

사람을 피폐하게 만들고도 남는다

땀에 절이고 절인 얼굴은 사람이 아니라

무거운 몸뚱이를 털고 일어나 포효하는

덩치 큰 한 마리 검은 곰이다




하루 온종일을 서서 강의하고

쌀 한 톨조차 목구멍으로 넘기지 못한 날

배와 창자는 고꾸라져 뒤엉킨 듯한데

텃밭에서 물을 갈구하고 있을 녀석들이

또한 나처럼 안타깝게 자빠져 있을까 봐

허기진 배를 틀어 안고 토마토를 본 순간

녀석들은 토실토실하다


아이쿠나 밥부터 먹어야겠다

이미 땡볕 아래서

허리 구부리고 일하는 친구를 손짓해

막국수 한 그릇 앞에 놓고 허리를 편다

그늘이 그리운 건 맞다

쉼이 필요한 것도 맞다


비는 언제쯤 오려나

말라비틀어진 오이 줄기가 꼬나본다

뜨거운 태양은 언제쯤 넘어가려나

훌쩍 자란 상추대가 메마른 땅을 향해 고개 처박고 있다

태양을 등지고도

막국수 한 그릇에 뜨거운 짠물을 더해낸다

새카만 모기는 다리 안쪽까지 파고들어

물어뜯다 뜯다 불어 터진 배를 부여 앉고

내 팔뚝에 납작 엎드렸다

불러 처진 배를 그도 어찌할 수 없나 보다

온갖 생각이 든다

내년에 하지 말까, 그냥 땅을 묵혀놓을까

풀이 너무 자라면 어쩌나

꽃을 심을까, 아냐 더 부지런해야 돼

친구의 의향을 묻는다

하자, 놀리면 뭐 할래?

그래서 더 한 건데

그래서 이렇게 힘들다 푸념하는데


한낮의 노동은 땀에 지치고 더위에 지치고

엄청난 수확량에 지치고

지칠 대로 지쳐 눕고 싶을 때쯤

석양은 저 멀리 어둠을 남기고

소리 없이 살포시 사라진다




#텃밭 #어린왕자의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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