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가면 그를 만날 수 있을까

자갈치 그곳, 부산

by 어린왕자
1980년대 자갈치 시장ㅡ네이버



나에게 부산 자갈치 시장은.

부산을 떠올리면 그의 얼굴이 떠오르고 그리움이 밀려온다. 대학입시를 치르고 원서를 쓸 때쯤 그는 내게 부산 남포동 자갈치 시장으로 오라 했다. 그는 그곳이 생활의 터전이었고 나는 자갈치 시장이 처음이었다. 한 시간을 넘게 버스를 타고 이름 모를 곳에 내려 이름 모를 간판 앞에서 그를 기다렸다. 공중전화 옆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내게 무표정했고 인사를 나누었고 앞장서서 걸었다. 그를 따라 걷는 그 길은 낯선 곳 중에서도 낯설었고 아무리 걷고 걸어도 썩은 생선 냄새가 진동하는 길이었다. 코를 비틀어 막고 소매로 문질러도 썩은 생선 냄새는 가시지 않았다. 길바닥은 질퍽질퍽 흥건하게 젖어 있었고 아끼고 아끼던 하얀 까발로 운동화는 이미 찌린내에 젖어 있었다. 사람 사는 곳이 아니었다. 그때의 어린 대가 맞이한 그곳은 썩은 냄새나는 생선대가리들이 즐비한 생선들의 천국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내게 대학 들어갈 때 입으라며 청바지를 선물했다. 뭔가 선물 하나를 기대하고 먼 길을 갔지만 그것이 청바지가 될 줄은 몰랐다. 내가 제일 필요로 하고 제일 원하는 것이 무엇인 줄 알았을 텐데 청바지 하나가 전부는 아닌 줄 알았다. 잡다한 생선의 썩은 냄새가 더 역하게 올라왔다. 내게는 분명 값비싸고 좋은 명품이나 다름없었지만 내가 원하는 건 청바지보다 용돈이었다. 그가 내게 용돈을 주지 않아서 나는 심하게 토라졌던 것이다.



그는 원양어선을 탔다. 원양어선을 타면서 그 당시는 꽤 큰돈을 벌었지만 정주하지 못했고 가정을 꾸리지 못했고 그가 번 돈을 위 누이에게 맡기면서 인생의 빛을 보지 못했다. 어쩌다 한국을 들어오는 날이면 그는 그의 형을 찾았고 형의 자식들을 찾아 얼마간의 용돈을 주었고 건강히 잘 지내라 당부하기도 했다. 나도 그의 눈에 애처롭게 들어온 형의 자식이었다. 늘 그가 우리 집으로 찾아와 형에게 미안하다 말했고 내 아버지의 임종을 지켰다. 우리도 그의 임종을 옆에서 지켜주었고 그가 죽기 전까지 딱 한 번 그와 나는 부산 자갈치 시장에서 데이트를 했던 것이다. 그 데이트가 자갈치 시장의 곰장어 가게에서 비릿한 생선 썩어가는 냄새를 맡으며 하루 반나절을 보냈던 것이다. 그 당시의 자갈치 시장, 질서 없고 냄새났고 어둡게 다가온, 그때는 그랬다.



훗날 부산 남포동엘 자주 갔다. 랜드마크인 용두산 공원에서 내려다보이는 자갈치 시장의 앞바다는 평화로웠고 아름다웠고 신비로웠다. 자갈치는 옛날의 자갈치 시장이 아니었다. 깔끔하게 상가가 정비되어 있었고 곰장어를 파는 가게도 예쁘게 정비되어 구경하는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했다. 그와 내가 이곳에서 신물나게 퍼올렸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의 기억엔 그 하루가 어떻게 각인되어 있었을까. 그렇게 많이 건져올린 삶 중에서 그의 조카들을 가족으로 여기며 살았던 예순의 짧았던 인생이 슬픔으로 짓눌린다.



나에게 부산 자갈치 시장은 그와의 딱 하루 추억이 떠오르는 곳이다. 그가 내게 건넨 그 청바지가 아픈 기억으로 돌아오는 곳, 나의 철없음이 켜켜이 쌓여간 곳이다.






부산에 가면

부산에 가면 다시 너를 볼 수 있을까
고운 머릿결을 흩날리며 나를 반겼던
그 부산역 앞은 참 많이도 변했구나
어디로 가면은
너도 이제는 없는데

무작정 올라가는 달맞이 고개에
오래된 바다만 오래된 우리만
시간이 멈춰버린 듯
이대로 손을 꼭 잡고
그때처럼 걸어보자

아무 생각 없이 찾아간 광안리
그때 그 미소가 그때 그 향기가
빛바랜 바다에 비춰
너와 내가 파도에 부서져
깨진 조각들을 마주 본다

부산에 가면

ㅡㅡㅡ최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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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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