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플 땐 왜 엄마가 그리울까

엄마의 새알 미역국

by 어린왕자



간절기가 시작되고 가을로 접어드는 길목에 서면 내 몸이 제일 먼저 바람의 차이를 느낀다. 바람의 노래를 아는 건지 바람의 온도를 아는 건지 내 몸은 바람의 무게를 분명 느끼고 있다. 한낮의 기온은 아직 무더위에 젖어 있고 아침저녁으로 선선하게 불어주는 바람에 넋을 놓고 가을을 느끼기엔 감기 들기 십상이다.

토요일 늦은 수업을 마친 후에 여느 때처럼 텃밭을 둘러보고 하루 일과를 마무리할 때쯤 몸에 으슬으슬 한기가 돌기 시작했다. 긴 옷으로 갈아입고 이불도 가을 이불로 갈아치우고 가을 준비를 한다고 해도 그날 밤 불어온 가을바람은 이미 가을바람이 아니었지 싶다. 앞뒤 베란다 문을 걸어 잠그고도 어딘지 모르게 소슬한 바람이 자꾸만 몸을 휘감아 나를 어지럽게 만들어버렸다.

일요일 아침 자고 났더니 목이 잠겨 목소리가 갈라졌다. 오후에 잡아놓은 약속을 취소할 수 없어 병원을 찾았다. 단순한 목감기에 몸살 기운이 있어 주사 한 대 맞으면 괜찮겠다 싶었다. 그날 밤이 문제였다. 친구 생일 겸 맛있는 저녁을 먹고는 바닷바람을 쐬러 갔다. 태풍이 오는 것처럼 한바탕 바람이 휘몰아쳤고 바닷바람을 맞으며 오들오들 떨면서 차를 마셨더니 집에 온 이후 따뜻한 국물이 먹고 싶어졌다.

냉장고를 아무리 뒤져도 당기는 음식이 없었다. 따끈한 국물이 그리웠건만 남아 있는 건 냉동된 밥뿐, 다시 냉장고 문을 닫으면서 주저앉고 싶었다. 왜 하필 그때 엄마의 미역국이 떠올랐을까. 새알이 동동 뜨고 참기름이 좌르르 미역을 감싸는 그 따뜻한 국물이 눈앞을 스치며 아른거렸다. 당장에 끓일 수도 없는 노릇, 누구에게 시키지도 못하는 처지에서 엄마가 더욱 그리워졌다.

아플 때면 왜 엄마가 떠오를까. 따끈한 미역국 한 그릇이면 감기 몸살이 씻은 듯 나을 것 같은데 왜 그 따뜻한 미역국 한 그릇을 먹지 못할까. 여러 번 끓였어도 그 맛은 나질 않았다. 어떤 미역국을 먹어봐도 엄마의 미역국만큼 맛있는 것은 없었다.




코로나 백신을 의무적으로 접종을 해야 했을 때가 있었다. 자의 반 타의 반인 반강제적으로 백신을 맞아야 했고 백신을 맞지 않을 경우 카페든 독서실이든 음식점이든 어느 곳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없던 시절. 국가를 믿고 백신을 믿었건만 사고가 나거나 불편함이 있을 때는 보상받을 수 있는 절차도 까다로웠지만 대부분 국가의 도움이 외면되었다. 지신의 몸은 자신이 지켜내야 했던 그야말로 백신으로부터 암울했던 시기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했겠지만 많은 시간을 고민하고 고민하다 백신 접종을 했을 것이다. 실제로 백신 접종 후 불편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오롯이 그 고통들을 스스로 감내하고 있었다.

나도 1차 접종을 하고 난 후는 괜찮았었다. 옆에서는 아프다 하기도 했고 또 어떤 이는 심한 몸살로 몸져눕기도 했었고 또 어떤 이는 고열로 죽어가는 모습도 봤었다. 불편함을 이겨내기도 하면서 힘든 상황을 겪어내야 했던 모든 이들의 아픔을 대변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음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모면하고 싶었기는 매한가지인데 왜 하필 주변의 사람이어야 하는지 억울함도 많았다.

2차를 접종하고 난 후 몸살을 했다.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고 한기에 오들오들 떨면서 긴긴밤을 지샜다. 기침은 멎을 줄을 몰랐고 물 한 방울도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근거 있는 의심이 들기도 했다. 정신이 혼미해지다가도 정신이 들 때는 멍청한 바보가 되었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지속되었다.

그때도 엄마의 미역국이 떠올랐다. 무겁고 아픈 몸을 일으키며 엄마의 미역국 맛을 느끼려 손수 끓였었다. 그러나 부드럽고 따뜻한 그 맛은 나지 않았다. 짠내 나는 간장맛에 진저리를 치고 말았지만 두고두고 엄마의 미역국이 더 깊이 그리워진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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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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