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발머리

내 머리 돌려달라 악을 썼던 때

by 어린왕자

열세 살 적 친구들ㆍ삼릉에서

열세 살의 겨울이었다. 중학교를 가기 전에 머리를 잘라야 했다. 긴 머리를 싹둑 자른다는 건 어린 시절의 놀이와 헤어져야 했고 가장 친하게 지내던 친구와 헤어져야 했다. 그 아이는 엄마가 있는 인천으로 가야 했다.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나 어릴 적 그 아이는 외삼촌이 있는 이곳에 내려와 나와 놀았고 동고동락했다. 중학교를 가기 위해 그냥 엄마가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는 것만 알았다. 그러나 그것이 나에겐 머리를 자르는 일보다 더 중요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 아이가 살았던 외삼촌 집에 전직 이발사가 살고 있었다. 외삼촌 집은 제법 잘 살아서 세를 들이고 있었고 이발사 아저씨도 그곳에 세 들어 살았다. 중학교를 가기 위해 머리를 잘라야 했기에 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이발사 아저씨한테 갔다. 무엇이든 아버지에게 싫다 할 수 없었고 싫다 말할 줄도 몰랐다. 붙들려가야 하는 그것이 어찌 되었든 최선의 방법이었으니까.


이발사 아저씨는 셋방에서도 젤 왼쪽 끝집에 살았다. 대문을 들어서면 주인집을 거치지 않고도 바로 들어갈 수 있는 집이었다. 간판도 없었고 전직 이발사라는 표시는 없지만 동네 사람들은 그 집에서 머리를 깎았다. 나는 그 친구네 집에 놀면서 한 번도 그 아저씨가 남의 머리를 자르는 걸 본 적이 없었는데도 말이다. 어린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아버지를 따라 머리를 자르러 갔을 뿐이다. 그 후가 문제였다.


아버지 앞에서는 한마디 불평도 하지 않았던 내가 집으로 와서는 다짜고짜 엄마에게 불평을 던졌다. 내 머리 바로 해 놓으라고, 물어내라고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 바닥을 발로 차고 벽을 두드리고 난리를 피웠던 것이다. 엄마가 그렇게 잘란 것도 아닌데 왜 엄마에게 내 머리 물어내라고 다그쳤을까? 내가 우째라고! 엄마도 악을 쓰며 내게 소리쳤지만 나는 더 큰소리로 목놓아 울었다. 미친년이 지랄도 유분수지. 엄마는 그렇게 대문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엄마는 잘못이 없다. 그렇다고 전직 이발사에게 데려간 아버지도 잘못은 없다. 다만 그 긴 머리를 싹둑 잘라내고 이상하게 서 있는 어떤 여자 아이를 거울로 멀뚱히 바라보던 철없던 그 아이에게 잘못이 있다면 있는 것이다. 엄마가 나가버려도 한참을 울었지만 나는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몰랐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도 몰랐다. 그저 사흘 밤낮을 머리 때문에 미친년처럼 날궂이를 했던 것 같다.


엊그제 인천으로 이사를 간 그 아이와 동네 친구들이 오랜만에 만났다. 일 년에 두세 번 만날 때마다 한 편의 글을 쓰듯 지난날을 읊어대면서 웃고 떠든다. 이번엔 머리 얘기가 나왔다. 아마 그 친구가 인천으로 떠나기 전에 내가 머리를 깎았나 보다. 그 친구는 내가 머리 때문에 울고불고했다는 걸 기억하고 있었다. 엄마가 대문을 박차고 나가 이발사 아저씨한테 갔던 모양이다. 아니 어떻게 딸내미 머리를 그렇게 잘랐냐고 한마디 한 모양이었다.


그 친구가 알려주지 않았어도 나는 지금도 그때의 일을 또렷이 기억한다. 밤톨같이 못생겼던 열세 살의 조그만 아이가 지가 얼마나 이뻤으면 머리 못생기게 잘랐다고 우왁스레 발악을 했을까 싶다. 지금은 하얗게 변해가는 머리를 보면서 그런 때도 있었지 그리워해 본다. 문득 그때가 아프게 떠오른다.


문디 같은 년, 지랄을 해라! 어디선가 익숙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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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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