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낭만이 별빛처럼 반짝이는

문광저수지

by 어린왕자



늦가을 저녁은 일찍 저문다. 환한 빛으로 가득했던 한낮의 쏟아지던 햇살은 구름을 몰고 와 어느새 꿈틀거리는 용의 꼬리처럼 스러지듯 서녘 고개를 넘어가고 있다. 집을 나설 때 비만 오지 않으면 좋겠다 했던 그 마음을 바람은 기억하고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수업을 마치고 문광저수지로 첫걸음을 옮기려 나서는데 창가에 빗방울이 툭 툭 떨어진다. 하긴 내리는 비마저도 낭만으로 여기지 못할 것도 없다.


문광 저수지는 몇 년째 한 번 가 보리라 마음만 충만했던 곳이다. 무봉의 비단을 두른 곡선의 아름다운 은행나무길과 몽환적 물안개의 절묘한 어울림을 만나려면 그야말로 적정한 타이밍이 필요했던 것이다. 은행나무의 멋스러움이 절경일 때는 밥벌이가 발을 묶어 다녀올 수 없었고 그저 볼 만했다는 감상을 남기려 마음 편하게 다녀오기엔 거리가 가까운 곳도 아니었음을 상기시킨다. 그래서 언젠가 한 번은, 한 번은 ㆍㆍㆍ가 보리라 마음으로 벼르고 벼르던 곳이다.




인터넷이나 별스타에 쉼 없이 자랑하며 예쁜 자태를 뽐내는 문광의 조그만 저수지가 보낸 유혹의 눈길을 내 이번엔 기꺼이 받아주리라 했다. 친구야, 서둘러 가 보자, 우리도 어쩌면 그들의 흥겨움에 함께 춤이라도 춰야 하지 않겠니?


늦은 밤 청주 친구집에 도착했다. 걱정 반 기다림 반으로 반갑게 맞아주는 친구 부부가 세상 부러울 것 없는 하루의 평온함을 즐기다 별빛보다 더 빠르게 우리의 밤길을 밝히려고 서 있다. 고맙기 이를 데 없다.


따뜻한 저녁 성찬을 마주하고 어제 보았던 친구와의 끊어진 수다를 이어가듯 오랜 시간 방언을 터트리며 가을밤을 뒤흔들었다. 젓가락질하기 좋아라고 날씬하게 일렬로 세워놓은 미스코리아를 닮은 파김치의 몸매를 보고 결국 웃음보가 터지고 말았지만 그건 감히 오래도록 잊을 수가 없게 되었다. 어찌 그런 가느다랗고 얄팍한 생각을 했을까. 두고두고 회자될 우리의 또 하나의 추억거리다.



여명은 물안개를 타고 흘러들었다. 새벽 6시에 도착한 문경 저수지의 모습은 포근하다. 가냘프면서 멋스럽고 아련하면서도 따뜻한 운치가 함께 한다. 이미 먼저 와 최고의 한 컷을 남기려는 사람들로 명당자리를 차지하고 선 사람들 틈으로도 한 줄기 따사로운 햇살이 스며든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좋은 것을 차지한다는 옛말처럼 부지런해서 얻는 게 많다는 것도 깨닫게 되는 삶의 지혜다. 비가 내리지 않아 다행이었고 춥지 않아 다행이었다.



인생에도 가장 화려했던 시기가 있듯 자연의 모습도 가장 아름답고 황홀한 황금기가 지금이 아닐까 문광저수지의 빛나는 가을을 보며 생각한다. 가장 화려할 때를 지나야 만 가장 초라할 때를 맞이하는 그것 또한 모든 살아가는 인생의 법칙임을 안다. 그 어떤 자연이, 인간의 삶이 아름답지 않은 순간이 있을까마는 가장 아름답다고 느끼는 절정의 이 가을을, 오랜 친구들과 함께 하는 이 황홀한 순간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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