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이 되는 녀석에게
올해 고3을 졸업하는 녀석이 사범대학에 붙었다며 전화가 왔다. 책 읽기를 좋아하고 역사를 좋아하고 그래서 자기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 말하던 녀석이었다. 엄마의 큰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서, 인정받지 못해서 수업시간에 나에게 불만을 토해냈던 녀석, 엄마 마음에는 들지 않지만 그래도 잘하는 녀석이라 인서울을 할 것이라 나도 내심 기대한 녀석이다.
수능을 치르기 이 주일 전쯤 수능 잘 치라는 격려와 초콜릿 선물과 함께 손 편지를 써 주었고 부담을 주는 언행은 하지 않았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엄마가 원하는 것보다 제일 힘들고 제일 불편하고 제일 부담스러운 것이 자기일 테니 안 봐도 뻔한 일이다.
돌아보면 길지 않은 세월을 녀석과 함께 했다. 수업시간에 머리 맞대고 앉아 글도 쓰고 토론도 했지만 그보다 더 기억에 남는 건 한두 시간을 녀석의 넋두리를 받아준 것이다. 엄마에게 꺼내지 못한 이야기들을 유독 내게만 꺼내 놓았다. 모르지, 학원 선생님께도 편안함을 느꼈으리라 생각한다. 여러모로 어울리기 좋아하는 녀석이니까.
초콜릿을 건네주던 날 마스크 쓴 나를 멀리서 알아보고 뛰어와 안기던 그때를 떠올리면 흐뭇하다. 내 아들 안아보는 것도 어려운데 남의 아이를, 그것도 다 큰 녀석을 안아본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그 녀석이 냅다 뛰어와 반가이 안아준다. 옆에서 그걸 쳐다보는 녀석의 동생이 싱긋이 묘하게 웃어넘긴다. 아름다운 만남이다.
시험을 치르고도 한동안 내가 먼저 연락하지 않았다. 녀석에 대한 배려였다. 먼저 연락이 올 때를 기다린 것이다. 그러면서도 내심 걱정도 되고 기대도 되었다.
지금쯤 발표가 났을 텐데, 궁금하긴 했다.
톡톡톡
전화기를 흔드는 소리가 반갑다.
선생님, 저 영어교육과에 갑니다.
그러니? 축하한다.
감사합니다, 술 한 잔 해요.
짜식, 커피가 아니라 술 한 잔 하잔다.
어른이 되었구나.
그래! 조만간 술 한 잔 하자!
책과 함께 4,5년을 함께 하면서 깊은 정이 든 녀석이다. 나의 이십 년이 부끄럽지 않게 먼저 연락을 해 주는, 내 자존심을 세워주는 녀석, 예쁘다.
#이십년도더넘게일하고싶어 #너를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