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 깊고 정이 많았던
20년을 넘게 한 일만 했으니 얼마나 많은 다양한 아이들을 만났을까. 만나고 헤어지고 하는 일이 일상 다반사라 해도 오래도록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 아이도 있고 이름조차 기억에 가물가물한 아이들도 많다. 잘해서 기억에 남기도하고 아니면 이래저래 애를 태우기도 해서 기억에 남는 아이도 있다.
오늘 동료들과 점심을 함께 하면서 건강상의 이유로 일을 그만두기로 한다는 선생님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우리들을 거쳐간 아이들을 떠올렸다. 이미 장성해 가정을 꾸린 아이들도 있고 번듯한 직장을 가지고 감사하다며 인사를 건네오는 녀석도 있고 군대 휴가 나왔다며 안부를 물어오는 아이들도 있고 혹시? 아직도 수업을 하고 계시냐며 대학 논문을 준비하는데 생각이 났다며 톡으로 연락해 오는 아이도 있다. 그저 반갑고 고맙고 감사하고 사랑스럽다.
그중에서도 지금은 결혼을 해서 한 아이의 아빠가 된 녀석? 이 기억에 남는 아이 중 한 명이다. 대학을 간다고 연락이 왔었고 군대를 간다고 연락이 왔었고 제대 후엔 내가 먼저 연락을 해서 커피 한 잔 했던 적도 있다. 그땐 오히려 내가 참으로 어색해했던 게 기억난다. 말을 놓기도 애매하고 반존대를 하기에도 어색하다 했더니, 샘 그냥 놔요, 하며 쿨하게 어색하지 않게 다가와주었다.
그 아이가 6학년 때였다. 나도 20년 전 일을 시작한 지 3~4년쯤 되었을 때다. 한창 젊었고 한창 열정적이고 한창 일이 재미있을 때였다. 늦은 저녁 수업을 하러 들렀는데 책 읽기가 귀찮았던지 수업할 책은 제쳐두고 세계의 역사를 읽고 있었던 아이다. 온갖 것에 관심이 많은 아이였으며 특히 언어에는 남다를 소질이 있는 아이였다. 발음도 또박또박 확실했고 자기주장이 강한 아이였다.
그런데 책 읽기를 게으르게 한 날이 여러 날이 되어갔다. 어머니도 나도 편독이 심해서 그런 것이리라, 조금 지나면 나아지리라 조금만 더 두고 보자 하던 날이 제법 길었다. 이러다간 안 되겠다 싶어 세계사 수업을 권하게 되었다. 아직 학교에서 배우기엔 이른 시기이지만 좋아하는 과목이고 수업을 해도 못 따라가지는 않으니 역사책은 읽어오겠다 싶었다. 적중했다.
아이는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그때의 나보다 아는 것이 더 많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어쭙잖은 지식으로 역사를 외워대기 바빴고 세계의 역사 흐름을 이해하기 급급했다. 그날 하루 분량을 외워가도 아이는 전혀 다른 문제로 의견을 내기 좋아했다. 내가 너무 많이 부족한다는 걸 느꼈고 대답을 못 하는 선생님이 되기 싫어 부족한 부분을 참 많이도 읽어나갔다.
수업이 활기찼고 아이는 여러 권의 책을 집어다 비교하며 읽어댔다. 수업을 기피하던 아이가 나를 기다리기 시작했고 나의 수업을 즐기기 시작했다. 내가 아는 만큼보다 더 그 아이는 나를 알게 했다. 조금씩 안정을 찾아갔고 꿈도 정하기 시작했다. 한창 사춘기였을 때도 눈을 흘기며 흠칫 째려도 보지만 살살 건드리면 또 살살 녹아드는 아이였다. 겉으론 틱틱해도 속은 깊고 여린 아이였다.
그 속 깊던 아이가 나를 일으켜 세웠다.